크리스마스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부활절을 향한 준비가 시작된다. 재의 수요일은 가톨릭 전례에서 사순 시기(Lent)가 시작되는 날로, 주님 부활 대축일을 향해 40일간 회개와 내적 정화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문턱이다.
‘재(Ash)’는 인간의 유한함을 상징한다. 죽음 이후 모든 존재가 결국 재로 돌아간다는 인식은 인생의 허무함을 말할 때 흔히 쓰는 “먼지로 와서 먼지로 돌아간다”라는 표현에 집약되어 있다. 이 사유는 특정 종교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동서고금을 관통해 반복되어 왔다.
창세기 3장 19절에는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선언이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죽음의 통보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완결된 존재가 아님을 일깨우는 말이다. 욥기에서 욥은 “저는 흙과 재 위에 앉아 회개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재가 곧 회개의 자리임을 분명히 한다. 재는 끝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는 출발점이다.
이와는 다른 결을 지니지만,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 역시 “모든 것은 흙으로 돌아가며, 다시 흙에서 생겨난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교의 직선적 역사관과 달리, 그들은 세계를 순환으로 이해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자연 질서로의 환원이었다. 동양에서는 노자의 사상이 이를 대표한다. 노자는 “만물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며, 우리가 보는 모든 형상은 본래 실체가 아니라 잠시 드러난 상태일 뿐이라고 보았다. 장자 또한 삶을 ‘기(氣)의 모임’으로 이해하여, 기가 흩어지면 자연스럽게 먼지로 돌아가는 과정이 곧 죽음이라고 설명한다. 유교의 ‘예기’에서도 “삶은 기를 받아 이루어지고, 죽음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한편 「논어」에서 공자가 재의 처리와 형벌을 논하는 대목은 형이상보다 현실의 질서와 다스림을 중시한 유학의 실천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처럼 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상함과 겸손의 상징이었고, 음악 역시 이 주제에 깊이 반응해왔다. 재를 직접적으로 떠올리는 대표적 음악은 ‘예레미야의 애가(Lamentationes Jeremiae)’다. 애가 3장에는 “그는 먼지에 입을 대고 엎드린다”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 텍스트에 기반한 대표적 작품이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와 올란도 디 라소(Orlando di Lasso)의 애가이다.
탈리스의 ‘예레미야의 애가’는 장중하고 깊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한때 번성했던 문명이 재로 돌아가버린 허무, 그리고 결국 자신 또한 재로 돌아갈 존재임을 자각하는 인간의 공포와 절망이 음악 전반에 스며있다. 그러나 그 절망은 침묵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하느님께 매달리는 간절한 기도가 느린 화성과 긴 호흡 속에 절절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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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라소의 ‘예레미야의 애가’는 훨씬 정갈하고 투명하다. 그는 재로 변한 예루살렘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그 모든 파괴조차 신의 섭리 안에 있음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나 상승하려는 소프라노 선율과 이를 붙잡아 아래로 끌어내리는 베이스의 긴장은 구원을 향한 인간의 갈망과 다시 허무로 가라앉는 실존의 싸움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youtu.be/_Wn8DAOKT5w?si=dVgTawHiaRpR8-Vz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