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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성모님께 촛불을 켜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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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쳤고, 대학교 때는 클래식 기타 모둠에서 연마했기에 제법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청년 미사 때 연주할 정도였으니까. 나는 한때 ‘성당 오빠’로 불렸다. 중학생들부터 대학생까지 함께 모아놓고 공부도 했고, 캠핑을 주도하기도 했다. 밤을 지새우며 노래를 불렀다. 당시에는 누구나 세상의 모든 노래를 다 외우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노래의 시작은 생활성가로 성령을 가득 채웠다. 교인이 아닐지라도 모두 함께 부를 수 있었던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와 ‘영원한 사랑’이란 히트곡은 빠지지 않았다. 밤을 지새우려면 광고 CM송부터 세상의 모든 노래를 동원해야만 했다. 물론 동요도 빠지진 않았다.

난 지금 동요 짓는 일을 한다.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작곡법을 배운 것도 아니지만 동요를 짓고 있다. 아동문학가이기에 노랫말은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일이다. 난 언젠가부터 ‘동요 운동’을 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아들이 유치원 행사 때 가요에 맞춰 춤을 추었다. 난 너무나 화가 났고 어이가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가사가 나오는데도 학부모들은 장단을 맞췄고 환호성을 질렀다. 집·단·최·면! 나만 외계인이 된 듯 낯설어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시골에서 홀로 ‘동요 운동’을 한다. ‘동요 부르는 어른’과 ‘노래깨비아이들’이란 노래패를 결성해 함께 노래했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음반이 16개나 되었고, 동시나 그림책으로 노래를 지어 보급하기도 한다. 영향력이 너무 미미해서 힘겨워진 2024년,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내가 지은 동요 ‘숲으로 가자!’가 실리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동요 운동’을 계속하라는 소명을 주신 거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도한다. ‘동요 도서관’을 지어주세요.

나의 동화와 동요가 초등 교과서에 실린 까닭에 전국의 학교로 강의하러 다닐 기회가 종종 주어진다. 대구로 강의를 갔다. 난 강의 장소가 결정되면 가장 먼저 주변의 성지를 살펴본다. 대구의 성모당은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동굴과 똑같이 조성해 놓은 곳으로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에 의해 1918년 건립된 곳이다.

성모당은 아픈 사람들이 많이 찾아든다. 성모님께서 간절한 소망을 잘 들어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나도 성모님께 ‘동요 도서관’을 지어달라고 떼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모두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겉으로 봐도 몸이 아파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마음을 다잡고 성모님께 촛불을 켜 올렸지만, 차마 내 소원을 빌 수가 없었다. 저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데, 나 때문에 어느 사람의 몫이 없어질 것만 같았다. 성모님 저 아픈 이들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저는 성모님 뒷전에서 스스로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해놓고 나니 찔끔찔끔 눈물이 났다.

오늘도 난 동요 부르는 어른들 모임인 ‘동그랑’에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번 주는 성당 사람들만이라도 어린이들을 위해서, 아무도 로또를 안 샀으면 좋겠다. 난 지금 로또 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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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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