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3년 성녀 클라라는 아시시의 성 루피노 대성당 근처에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1182년에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와 거의 띠동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클라라의 집안은 귀족파로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주인으로 섬기며 지지하고 있었고, 프란치스코는 중간 계급으로 아시시의 자치 도시제를 외치는 집안이었습니다.
1206년 프란치스코가 재판에서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 아버지에게 돌려주고 아시시를 떠난 사건은 당시 마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13세였던 클라라에게도 프란치스코의 회개 방법과 하느님을 향한 행동은 큰 충격과 함께 감명을 줬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211년,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감화된 클라라는 그처럼 살겠다는 의지를 밝히게 됩니다. 클라라는 1212년 성지주일인 3월 18일 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와 아시시 성에서 2km 떨어진 포르치운콜라(Porziuncola) 경당으로 내려가 성 프란치스코 앞에서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처럼,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며 회개의 표식으로 귀족의 옷을 벗고 누더기를 입었습니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자신의 큰딸이 지난밤 저지른 행동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클라라가 머물던 수녀원으로 찾아와 딸을 강제로라도 데려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클라라는 완강히 제대포를 붙잡고 잘린 머리카락을 보여주며 자신이 하느님의 사람임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딸을 포기하고 돌아갑니다.
성 다미아노 성당 제대 오른편에는 클라라와 수녀들이 기도했던 나무로 만들어진 가대가 있는 작은 기도소가 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나무로 만든 독서대와 기도소는 클라라가 살아 있을 당시의 시절로 우리를 안내하는 듯합니다. 수도원의 심장인 이 장소는 우리에게 기도란 하느님을 향한 찬미와 귀 기울임이며, 신랑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애독과 묵상임을 일러줍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자정, 클라라가 이곳에서 촛불을 밝히며 자매들을 초대했듯이, 이 장소는 우리를 스승이신 예수님께로 이끄는 기도의 시간으로 초대합니다.
성 다미아노 성당 2층으로 올라가면 클라라에게 봉헌된 경당이 있습니다. 클라라는 1224년부터 선종할 때까지 29년간 병상에 머물며 수도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클라라가 기도하고 미사드릴 수 있도록 잠자리 가까이에 경당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클라라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성체성사가 이루어지는 미사였기 때문입니다. 제대 앞 바닥에는 성 다미아노 성당 가대가 보이는 사각 나무로 된 덮개가 있습니다. 이 구멍의 용도는 등을 내려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아마도 성당까지 내려갈 수 없었던 클라라가 미사 소리를 들으며, 이 구멍을 통해 사제가 올려주는 성체를 영하였을 것입니다.
클라라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굳건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방이 막힌 수도원 안에서만 그 현존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1264년 볼세나의 성체 기적보다 앞서, 믿는 이들뿐 아니라 믿지 않는 이교도들에게까지 그 현존을 드러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 황제(Friedrich II, 1197~1250 재위)는 사라센인들을 시켜 수녀원과 아시시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그때마다 클라라는 방패처럼 성체를 모시고 나와 수녀원과 도시를 지켰고, 사라센 사람들은 성체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빛을 보고 놀라 달아났다고 전해집니다.
성체의 기적은 수도원의 공동 식당에서도 일어났습니다. 클라라와 자매들이 검소한 식사를 했던 이 장소에는 초창기에 사용했던 아무 장식 없는 투박한 나무 의자와 식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식탁 오른쪽 끝에 꽃이 놓여있는 자리가 클라라가 건강이 허락할 때 내려와 식사하였던 곳입니다. 1228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시성식 후 이 식당에서 클라라와 함께 자리했고, 성녀에게 식사 전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클라라가 십자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자, 그곳에 있던 빵 하나하나에 십자 표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빵의 기적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또 다른 드러내심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수녀원에 식사 시간이 다 되었지만, 빵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자매들은 걱정과 함께 오늘은 굶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클라라는 그 한 덩어리 빵마저 반은 잘라서 프란치스코 형제들에게 보냈고 나머지 반은 50조각으로 잘라 식탁에 앉아 있는 각 자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였습니다. 성녀의 강한 믿음과 하느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 속에서, 바구니에서 꺼낸 50조각의 빵은 온전한 빵처럼 풍성해졌습니다. 그 결과 모두가 충분히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성 다미아노 성당 지붕 아래에는 클라라와 자매들이 잠을 잤던 침실이 있습니다. 천장에 기와가 보이는 이 장소는 겨울엔 얼음이 얼 정도로 추웠을 것이고, 여름엔 뜨거운 열기가 한증막처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위 사이에서 잠을 청하던 성 프란치스코를 떠올리면, 병으로 고통받던 클라라에게는 이것조차 사치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29년이라는 시간을 병상에 머물며 수도 생활을 했지만, 클라라는 클라라회에 맞는 특별한 영성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하느님 체험 속에서 얻은 규칙서를 오랜 시간 동안 작성하며 끈기 있게 인준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선종하기 이틀 전 여자 수도회 최초로 인준된 규칙서를 받게 됩니다.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형제회와 도미니코 수도회를 인준한 인노첸시오 3세 교황(Innocentius III, 1198~1216 재위)이 1215년 제4차 라테란공의회에서 더 이상 새로운 수도회 인준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교회 안에서 탄생할 다양한 카리스마를 가진 여자 수도회를 위한 하느님 은총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선종 27년째인 1253년 8월 11일 저녁, 클라라는 “저를 창조하신 주님, 당신은 축복받으소서”라는 마지막 감사 기도를 드린 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시시의 작은 꽃이 된 클라라는 오늘도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예수님을 증거하며,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