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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기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공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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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도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보도록 이끕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부조리하고 불공정하며 정의롭지 않습니다. 아픔이 넘쳐납니다. 신앙인은 아픔에 공감하기에 그리하여 무엇이 옳은지 알기 위해 예수님을 공부합니다. 하느님 곁에 머물려는 우리의 기도는 우리를 배움으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고통을 ‘참으라’고 덮기보다, 고통의 원인을 묻게 합니다. 무엇이 사람을 살리고 무엇이 사람을 다치게 하는지 식별하는 배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공부는 경청과 동행입니다. 루카복음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24,13-35 참조) 제자들과 예수님은 함께 길을 걷습니다. 예수님은 앞서 가르치지 않으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으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토록 침통한지 제자들은 말합니다. 그제야 예수님은 제자들의 상처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성경을 풀어 주십니다. 공부는 설명의 전달이 아니라 동행 안에서 자라나는 이해입니다. 이해는 누군가의 설명보다, 함께 걸으며 나눈 대화와 침묵과 질문 속에서 자라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공부는 시선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누가 제 이웃입니까?”라는 질문 앞에서 예수님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으십니다.(루카 10,29-37 참조) 대신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안전한 판단의 자리에서 끌어내어, 길가에 쓰러진 사람 곁으로 이끄십니다. 공부는 경계를 그어 구분하는 일이 아니라, 경계를 건너는 감각을 배우는 연습입니다.


예수님은 공부를 몸으로 보여 주십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요한 13,1-15 참조) 위계가 분명한 자리에서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십니다. 그리고 “너희도 서로 이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공부는 이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반복되는 실천, 즉 관계의 습관으로 이어집니다. 공부는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몸의 태도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이 공부의 방향을 더 분명히 밝히십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 예수님이 가르치신 공부란 사람을 통제하는 교육이 아니라, 위계를 떠나 친구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여정입니다. 공부는 함께 나누는 관계 안에서 자라납니다.


마르코복음은 이 관계의 언어가 가족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전합니다.(3,31-35 참조) 사람들이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고 있다고 전하자,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나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혈연을 부정하기보다, 가족을 혈연의 형태에 가두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관계로 넓히는 초대로 읽힙니다.


그래서 기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공부하게 됩니다. 가족 안에서 하는 공부는 가족 곁에서 세상을 함께 읽는 연습입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가르치기 전에, 무엇이 아픈지를 함께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공부’의 길을 조금 더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공부는 무엇이었는지, 그 배움이 우리의 관계와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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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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