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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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길목에서 천상과 지상을 잇는 노이슈티프트 수도원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64. 이탈리아 노이슈티프트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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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2년에 브릭센/브레사노네의 하르트만 제후 주교가 브레너 고개 남쪽 계곡에 세운 노이슈티프트/노바첼라 수도원. 현재 볼차노-브레사노네교구 소속으로 14명의 아우구스티노회 의전 사제단이 전례와 사목을 중심에 두고 교육관·기숙사·포도주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으로 알프스는 다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돌로미티 설원 위에서 펼쳐진 경기는 찰나의 집중과 극한의 성취를 요구하며, 그 긴장감은 관중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습니다. 우리 선수가 메달을 딴 순간은 희열을 자아냈습니다. 그러나 경기장을 벗어나 북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전혀 다른 시간의 리듬이 지배하는 길과 마주하게 됩니다.

흔히 중세에 알프스는 넘기 어려운 자연의 장벽이었을 거로 생각할 겁니다. 그렇긴 했습니다만, 알프스는 단절의 경계라기보다 꾸준히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통로였습니다. 그 길의 한복판에 오늘 가볼 노이슈티프트 수도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천 년 넘게 이어진 생활과 신앙의 시간을 품은 공간으로, 올림픽의 기록과는 다른 의미로 인간의 선택과 지속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노이슈티프트 수도원 성당 주 제대. 성모님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1734~1738년 요제프 델라이가 독일 남부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내부 리모델링을 주도했다. 천장 프레스코화는 마테우스 귄터 작품으로 성모 마리아와 성 아우구스티노 도상을 포함하고 있다. 후기 고딕 양식의 가대석은 1470/1480년 제작된 것으로 바로크 양식의 내부와 대비를 이룬다.


알프스 교역로의 교두보에 세운 수도원

노이슈티프트 수도원은 ‘새로운 수도원’이란 뜻으로, 1142년에 브레사노네의 하르트만 주교가 설립했습니다. 알프스 산맥을 통과하는 브레너 고개의 남쪽 계곡 초입, 이탈리아 북부 브레사노네에서 차로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습니다. 국도 안내판에는 노이슈티프트·노바첼라라고 독일어·이탈리아어 지명이 함께 쓰여 있는 걸 보게 되는데요, 이곳이 속한 티롤 지역이 오랫동안 독일어 문화권에 속해 있어서 독일어가 더 친숙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대는 중세 신성로마제국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어권 지역을 잇는 중요한 교역로였습니다. 수도원이 세워질 무렵,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와 베네토의 도시들은 상업과 금융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황제는 이 경제권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12세기는 서임권을 두고 교황권과 황제권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황제는 자기 권위가 군사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질서 안에서 정당화되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프스 넘어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을 직접 다스리기보다는 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려 했습니다. 그 중심에 브레사노네 주교가 있었고, 그 상징적 공간이 노이슈티프트 수도원이었습니다.

노이슈티프트 수도원의 엥겔스부르크. 12세기말 미카엘 대천사에게 봉헌된 소성당으로, 16각 평면과 상층 원형 기도실을 갖춘 로마네스크 건축이다. 이후 방어 기능과 순례자 보호 역할을 겸했으며, 현재는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의전 사제단이 세운 천상과 세상의 질서

수도원에 도착하면, 방어시설과 성벽이 먼저 눈에 띕니다. 원형 건물인 엥겔스부르크는 미카엘 대천사에게 봉헌된 소성당으로 지역 방어와 순례자와 여행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겸한 건물이지요.

브레사노네의 제후 주교는 영적 권위와 더불어 행정·사법 권한까지 행사하며 이 지역의 통치 질서를 책임졌습니다. 특히 브레너 고개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제후 주교령뿐 아니라 제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문제와 직결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르트만 주교는 황제의 보호 아래 이곳에 수도원을 세웠던 것이죠.

아우구스티노회 의전 사제단을 이곳에 정착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이들은 수도 생활 못지않게 교구 사목도 중시하는 성직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세상 한가운데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신앙을 실천하는 공동체였기에 황제와 주교 모두에게 유용했습니다. 수도원은 전례를 통해 교회 권위를 드러내는 기도의 공간인 동시에, 알프스를 넘는 일이 여전히 위험한 시대에 길 위의 이들에게 안전을 제공하며 세상의 질서를 체감하게 하던 장소였던 겁니다.

정문을 지나 안뜰에 들어서면 12세기 중엽 수도원 설립과 함께 세워진 수도원 성당에 다다릅니다. 밖에서 보면 절제된 로마네스크 균형을 느낄 수 있지만, 내부는 18세기 중엽 바로크 개장을 거치며 전혀 다른 분위기를 드러냅니다.

창으로 스며든 빛이 천장 회화와 부드러운 장식 사이를 흐르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위로 끌어올립니다. 여러 장면으로 나뉜 천장화에 성모 마리아와 성 아우구스티노가 등장해 이 성당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바로크 특유의 회화와 장식은 천국을 보여주는 효과를 내는데, 화려하지만 산만하지 않고 질서가 유지되는 듯합니다.

비틀린 기둥과 금빛 장식 사이에 주 제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가운데의 감실은 작지만 단단한 축을 이루고, 양옆의 촛대와 조각 장식이 그 중심을 받쳐 전례의 초점이 어디인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후진의 후기 고딕 양식 가대석은 공동 전례를 중시한 의전 사제단의 삶을 증언합니다.

노이슈티프트 수도원 ‘기적의 우물’. 1669년 세워진 팔각형 구조의 석조 우물 정자로 17세기 남티롤 바로크 양식을 반영하며, 각 면에는 고대 세계 제7대 불가사의와 12세기 공동체 정착 이후 안정적인 물 공급이 가능하게 된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초자연적 사건보다 수도원의 지속과 은총의 상징으로 이해되는 장소다.

노이슈티프트 수도원 도서관.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조성된 공간으로, 화려한 스투코와 천장 회화가 특징이다. 신학·전례·철학 관련 고서와 필사본을 소장하며,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들의 학문과 교육 활동을 상징하는 장소다. 현재 가이드 투어를 통해 둘러볼 수 있다.


수도원을 지속시킨 기적

성당에서 나오면 수도원 담장 너머로 펼쳐진 포도밭이 보입니다. 중세 후기 다른 수도원이 쇠락하는 환경에서 노이슈티프트 수도원이 오늘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이 풍경에 있을 겁니다. 포도 재배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수도 공동체의 지속을 가능케 했습니다.

브레너 고개 길목의 수도원은 순례자와 여행자를 맞이하며 자연스레 지역 경제와 맞물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와인은 환대의 상징이자 교류의 매개였습니다. 알프스의 기후와 토양에 알맞게 재배한 포도밭으로 신앙과 경제, 환대와 수도 규칙을 하나의 생활 질서로 묶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죠. 지금도 수도원 와인은 이곳의 특산품입니다.

성당 안뜰에는 세계 제8의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기적의 우물’이 있습니다. 이 계곡에서 물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천 년의 삶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진 것 자체가 하느님의 섭리이고 은총이라고 여겼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겁니다. 기적이란 어느 한 번 특별하게 드러난 사건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은총임을 생각해 봅니다.

 

<순례 팁>

※ 인스부르크나 볼차노에서 브레사노네까지 기차로 이동 후 시티버스·지역버스 이용( Neustift/Novacella 하차. 10~15분 소요)

※ 미사 전례: 주일 및 대축일 09:00, 평일 07:00(월·화·목·토)·18:00(수), 하루 3번 시간 전례가 있다. 바로크 도서관을 포함한 수도원 투어(11:00·14:30, 60분), 수도원에서 생산한 와인·리큐어·꿀·허브차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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