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작가와의 만남과 인형극을 하기로 약속한 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어린이들이 정해박해 소설인 「천주의 아이들」을 읽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호기롭게 약속했던 인형극이 문제였다.
정해박해를 배경으로 한 그림책 「옹기에 그린 십자가」로 인형극 극본을 오래전에 써놨으니, 쉽게 무대에 올리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성당 사람들로만 새롭게 단원을 구성해보고 싶었던 내 생각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처음에 물어볼 때는 인형극에 흥미를 느끼기도, 참여해 보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시간이 다가오면서 하나둘 포기해 버렸다. 무대에 오른다는 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공연을 해야 할 시간은 한 달도 남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앞뒤 볼 것 없이 모이라는 전통을 넣었다. 조당에 걸려 성당 구경만 다니는 프란체스카, 하느님을 혼자서 짝사랑하고 있는 시몬, 도깨비 마을의 율리아나와 요아킴, 내게 가장 만만한 열혈 신자 가브리엘라, 그리고 비신자인 인형극 단원까지 모였다. 급하게 배경음악을 찾아내고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인형극에 문외한인 사람들부터 최고 수준의 단원들까지 영화에서 등장하는 좌충우돌 특공대 같았다.
나는 영화처럼 특공 단원들을 종용하는 임무를 맡았다. 성당 외곽을 맴돌고 있는 간헐적 신자들도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줘 보자고, 성당 밖에서도 하느님을 공경하고 큰사랑의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 보자고 종용했다.
사무실에 둘러앉아 극본을 읽기 시작하자 뜻밖에도 모두 프로 단원처럼 참여했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비신자 단원은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더니만, 읽은 뒤에는 자신도 울컥거리는 마음이 생기는데 성당 신자들은 어떤 마음일까? 간증까지 해줬다. 혼자서 하느님을 몰래 사랑하고 있던 시몬은 자기는 눈물이 많아서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더니, 복식호흡까지 갖춰진 태생적인 소리꾼이었다. 우리는 이번 인형극이 무사히 끝나고 두 번째 인형극인 ‘마르첼리노의 기적’에서는 시몬이 예수님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결정해 버렸다. 이렇게 첫 번째 모임이 시작되자, 인형극의 소품들부터 음향까지 서로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냈다. 이제 대사를 외우는 것만 남았다.
나는 이번 인형극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신자 단원의 마음을 움직였던 사례를 보니 조금 더 기대된다. 인형극이 끝나고 어린이들과 하느님 이야기와 조선 천주교 박해 이야기까지 소통해 보려는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옹기에 그린 십자가’ 인형극이 곡성성당 사람들에게도 정해박해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은 곡성 정해박해 200주년과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함께 맞이한다. 곡성 자치단체에서도 정해박해를 기념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정작 성당 사람들은 관심 밖처럼 보인다. 정해박해로 커다란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인데, 눈만 끔벅거린다. 성당의 종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신자가 아니라, 깨어있는 생각으로 하느님을 맞이하길 바란다. 예수님께서 ‘정해박해’의 손을 잡고 한마디 해주시면 좋겠다. “탈리타 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