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은 라틴어로 ‘Quadragesima(콰드라게시마)’라고 한다. ‘40’을 뜻하는 ‘quadraginta’에 최종을 나타내는 어미 ‘–ima’가 붙은 말로, 문자 그대로는 “마흔 번째 날”이라는 의미다. 사순 시기는 라틴어로 ‘Tempus Quadragesimae’라 하며, 이 어원은 독일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 등 대부분의 유럽 언어에서 그대로 이어져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영어는 예외다. 사순 시기를 뜻하는 영어 ‘Lent’는 40과 전혀 다른 어원을 지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리튼(현재의 영국)에 원정을 감행했을 때가 사실상 최초의 대규모 외세 침략이었을 만큼 영국은 오랫동안 고립된 섬이었다.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뒤에도 고유한 언어와 사고 체계를 상당 부분 유지했다. Lent는 고대 영어 lencten에서 유래한 말로, 그 본래 의미는 ‘봄’이다. 즉 날이 길어지는 시기라는 뜻이며, lengthen(길어지다)과도 어원을 공유한다.
이 ‘길어짐’에서 비롯된 또 하나의 음악 용어가 바로 ‘Lento’다. 라틴어 ‘lentus’에서 온 이 말은 시간이 느려지고 늘어진다는 뜻을 지닌다. 전문 음악가들조차 이 템포 표시가 지니는 미세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간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가 ‘느리게’ 연주하라고 말할 때 흔히 사용하는 용어는 아다지오(Adagio)·렌토(Lento)·라르고(Largo)다. 아다지오는 노래하듯이 느리게 연주하라는 감각에 가깝다. 편안하고 여유 있게 선율을 운용하라는 뜻이다. 라르고는 느림 속에 장중함과 엄숙함이 깃들어 있다. 소리의 폭과 공간감을 강조하는 템포며, 렌토는 이보다 한층 더 철학적이고 명상적이다. 느리되 그 느림 속에서 내적 긴장을 응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작곡가들은 이러한 템포 표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연주하길 바라는지에 대해 최소한, 그러나 결정적인 지침을 남긴다.
현대 미국 작곡가 사무엘 바버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로 아다지오 음악의 정점을 찍었다. 슬프고 애잔한 선율이 자연스럽게 흐르며 듣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 20세기 클래식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다.
두다멜과 비엔나 필하모닉 연주
//youtu.be/WAoLJ8GbA4Y?si=XOZEB7bGEEmZjDmE
헨델이 작곡한 이른바 ‘라르고’는 그의 오페라 ‘크세르크세스’에 등장하는 아리아다. 원래 제목은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였지만, 후대에 이 곡의 템포 성격을 따서 ‘라르고’로 통칭하게 되었다.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로 시작하는 가사는 조용히 우리를 어루만진다.
프랑코 파지올리가 부르는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youtu.be/FD8eL-1a0As?si=NBeUosOs4AhnqcsD
렌토의 내적인 영성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으로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렌토’를 들고 싶다. 조금씩 쌓여가는 음들은 전쟁에 대한 불안과 상처를 상징하며, 음과 음 사이에 놓인 공간은 영적인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피아노와 현악기의 대화는 심오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온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연주
//youtu.be/G8WzsEiRGRo?si=8_HYuVZldVvEGlzW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