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는 자선과 절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러나 자선은 꼭 많이 가진 이들의 몫만은 아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발달장애인 보호작업장 ‘성모자애보호작업장’은 매년 수익의 일부를 바보의나눔을 통해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고, 사회 공헌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도움받는 이들이 다시 내어놓는 선택. 그 결단은 사순을 더욱 깊게 만들고, 우리가 맞이할 부활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그들의 일터를 찾았다.
서울 강남구 율현동 성모자애복지관. 이른 아침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출근한 발달장애 근로자들이 복지관 내 ‘성모자애보호작업장’(이하 작업장)으로 하나둘 들어섰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담소를 나누다 기자를 보자 “취재하러 오신 분이시죠?”라며 웃으며 맞이했다.
이들은 작업장에서 비누와 샴푸, 주방세제 등 세정 제품을 만든다. 발달장애인들은 제품을 용기에 담고 라벨을 붙이며 포장 작업을 맡는다. 한쪽에서는 제품을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각자의 역할은 분명했고, 작업장은 분주하지만 차분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스스로 일하며 얻은 결실을 다시 사회로
이곳은 단순한 생산 시설을 넘어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직업재활 공간이다. ‘해달별’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수익의 일부는 다시 사회로 환원된다. 스스로 일하며 얻은 결실을 또 다른 이웃과 나누는 구조가 이 작업장의 특징이다.
2021년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열린 이종석(알베르토) 작가의 전시를 계기로 이러한 나눔의 방향이 구체화됐다. 다운증후군을 지닌 작가는 작품 <무지개의 휘파람>을 통해 밝고 선명한 색채를 선보였고, 이를 본 작업장 이상철 원장은 새로 출시할 액상 비누 용기에 그의 그림을 담고 싶었다.
저작권 사용을 위해 작가의 어머니에게 문의했지만, 어머니는 “그림이 많은 사람에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며 저작권료를 사양했다. 그 말을 듣고, 이 원장은 장애를 지닌 문화예술인들을 돕는 기부를 결심했다.
개신교 신자인 그는 2022년부터 바보의나눔을 통해 알베르토 작가의 작품이 들어간 제품 수익의 5를 문화예술계 발달장애인 지원에 후원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고형 비누 수익의 2는 질병이나 장애로 치료가 필요한 이들의 진료비에 보태고 있다.
재난 현장에도 손을 보탰다. 2025년 3월 경남 산청 대형 산불 당시, 산청군 시천면사무소로 긴급히 사용할 수 있는 세정제를 이재민과 소방관에게 전달했다. 지난해 8월 안동 집중호우 피해 지역에도 세정제를 전달했고, 2023년 안동시 남선면 한 복지재단 화재 당시에도 물품을 지원했다. 단순한 후원을 넘어, 현장의 필요에 맞춘 대응이었다. 이러한 실천은 자연스럽게 다른 보호작업장으로도 확산됐다. 소식을 접한 서천군장애인보호작업장 역시 수해 복구 지원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사순, 무엇을 내어놓을 것인가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26년간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해 온 이 원장은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향상을 위해 힘써왔다. 그가 운영 철학으로 삼는 말씀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마태 19,19)이다. 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위해 무엇을 내어놓을 수 있을지,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부활의 가장 큰 의미”라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은 작업장의 운영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주변 이웃이 재해와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고민했고, 가능한 방식으로 도움을 보탰다. 재난 피해 지역에 물품을 지원하고, 장애와 질병으로 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수익 일부를 내어놓는 일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원장은 “저희가 아주 작은 점인지, 선인지, 면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중요하지 않다”며 “어떤 역할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우리가 도와주나요?”
이러한 정신은 발달장애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수익이 또 다른 장애인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장애인처럼 항상 그 사실을 인지할 수는 없지만,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도와줘야 해”라는 것은 누구보다 순수하게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일한 정우수(마르첼리노) 씨는 제품 포장과 배송을 맡고 있다. 재난 지역으로 물량이 늘어났던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며, 최근 설 연휴에 발생한 산불 소식을 듣자 “이번에도 우리가 도와주나요?”라고 먼저 물었다. 일이 많아지면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택배가 많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형 비누를 생산하는 이미영(로사) 씨와 전선화(안나) 씨도 마찬가지다. “TV에서 집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며 “우리가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전했다.
절제는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놓는 선택이 자선이다. 이곳에서 만난 나눔은 넉넉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족한 자리에서도 가능한 몫을 나누려는 실천이었다. 낮은 자리에서 낮은 이를 향해 건네는 손길이야말로 하느님을 더 닮은 모습에 가깝다. 그 손길이 모여 우리의 사순을 더욱 깊게 하고, 다가올 부활을 더욱 환하게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