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의 어느 목장 귀퉁이. 수령 100년이 넘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못했던 하논본당 터를 품고 70년을 버텨 온 나무다. 2010년, 제주교구 서귀포본당 110주년 ‘뿌리 찾기’ 사업을 추진하던 신자들이 38만 평 하논분화구를 며칠째 헤매다 이 나무와 마주쳤다. 하논본당 제3대 주임이었던 에밀 타케 신부가 1910년경 성당 소유지임을 표시하려 심었다는 바로 그 나무였다. 설립 당시 지번도 없고 상황을 아는 사람도 없던 터. 70년간 묻혀 있던 성당 자리가 은행나무 한 그루로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잊혔던 제주 산남지역 신앙의 출발점이 다시 확인됐고, ‘하논성당길’이 시작됐다.
하논성당길 순례는 서귀포성당을 기점으로 한 바퀴 원을 그리듯 도는 코스다. 천지연 산책로를 지나 하논성당 터와 하논분화구를 거쳐, 솜반천과 흙담소나무길을 지나 홍로성당 터 면형의 집에 닿는다. 여기까지는 에밀 타케 신부가 성당을 옮기며 걸었던 길이다. 이어 서귀복자성당과 이중섭거리를 지나 다시 서귀포성당으로 돌아온다. 시작과 끝이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 ‘성찰’의 뜻이 깃들어 있다. 이번에는 역사의 시간순으로, 하논성당 터에서 출발해 각 장소를 짚었다.
산남지역 신앙의 못자리
제주 서귀포시 일주동로 하논분화구 가장자리에 먼저 섰다. 한반도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 38만 평 너른 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 10여 분 걷자, 하논성당 터에 다다랐다. 목장 귀퉁이, 잎을 모두 떨군 그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당시 제주에는 은행나무가 거의 없어 목포에서 묘목을 들여왔다고 전해진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는 은행잎을 보러 비신자들도 많이 찾는다. 은행나무 앞에서, 초기 본당 공동체와의 만남을 이끈 섭리를 생각했다.
1899년 제주본당(현 주교좌중앙본당)에 이어 1900년 6월 12일 세워진 하논본당은 한라산의 남쪽, 즉 산남 지역 최초의 본당이었다. 오늘날 한라산 남쪽 아홉 개 성당, 신자 3만 명이 모두 이 한자리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듬해 신축교안, ‘이재수의 난’으로 공동체는 큰 피해를 입었다. 희생된 신자 309명 중 216명, 70가 본당 관할 신자였다. 1902년 타케 신부가 홍로(烘爐) 마을로 본당을 이전한 뒤 빈터로 남은 자리는, 4·3을 거치며 하논마을과 함께 불타 사라졌다.
하논성당길의 별칭 ‘환희의 길’은 잃어버렸던 성당 터를 되찾은 기쁨에서,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를 떠올리며 붙인 이름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이 길에서만큼은 세상사를 잠시 내려놓고 환희로 충만한 순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솜반천을 따라 - 타케 신부의 길
하논성당 터를 뒤로 하고 흙담소나무길과 솜반천을 따라 걸었다. 타케 신부가 홍로 마을로 갈 때 걸었던 옛길을 따라 조성됐기에 ‘에밀 타케의 길’로도 불린다. 홍로성당 터에는 한국 순교 복자 성 직수도회 제주분원이자 피정 시설인 ‘면형의 집’이 들어서 있다. 타케 신부가 13년간 선교한 장소다.
그는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하고 온주밀감을 제주에 들여왔으며, 1만여 점의 제주 식물을 채집해 유럽으로 보내며 제주를 식물의 보고로 세계에 알렸다. 식물 채집으로 선교 비용을 마련하면서도 어르신들에게 감귤밭을 무상으로 경작하게 하고, 지역 주민과의 화합으로 신축교안의 상처를 수습해 나갔다.
성당 입구에 전시된 홍로의 맥은 타케 신부가 심었던 온주밀감 나무 중 고사한 나무로 만든 조형물이다. 뒤틀린 마른 가지들이 당시 밀감나무를 직접 심고 돌봤을 그의 손길을 떠올리게 했다.
서귀포성당·서귀복자성당 터와 이중섭거리
면형의 집을 나와 서귀포성당에 닿았다. 1937년 현재 자리에 정착한 이후 산남지역 여섯 개 본당을 분가시킨 실질적인 모태 성당이다. 성당 한편의 ‘하논 카페&갤러리’에는 하논본당-홍로본당-서귀포본당으로 이어진 본당 역사와 타케 신부의 식물채집 기록, 옛 하논성당 복원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걸음은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입구 중앙공원으로 이어졌다. 1970년 서귀포성당에서 분가한 서귀복자성당이 있던 자리다. 1980년대 민주화 항쟁 당시 시민과 학생들이 경찰을 피해 성당 지하실로 몸을 피했고, 수녀가 두 팔 벌려 형사들의 진입을 막아섰다. 지금은 표지석과 항쟁 기념비가 남아 있다. 현 서귀복자성당에는 네 명의 성인 유해가 안치돼, 참배와 묵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성당 맞은편 이중섭거리에는 화가 이중섭의 옛 거주지가 남아 있다. 교회의 역사와 지역 문화, 서민의 삶이 맞닿는 구간이다. 순례의 발걸음이 어느새 일상의 한복판으로 스며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신자들이 찾아 나선 길
약 11㎞, 네 시간 남짓. 하논성당길은 제주 서귀포 천주교의 형성과 신축교안의 상처, 4·3의 기억, 하논분화구의 생태 환경, 타케 신부의 식물사, 지역의 민주화 역사까지 교회사와 생태·문화를 겹겹이 품고 있다. 무엇보다 이 길은 많은 순례길들이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 것과 달리, 신자들이 잊힌 서귀포 신앙의 뿌리를 찾아 나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는 의미가 크다.
하논성당 터와 면형의 집에서 기도와 묵상에 집중하고, 서귀복자성당 이후로는 시장과 이중섭거리에서 일상을 체험하는 흐름으로 걸으면 좋다. 신앙의 역사와 현재의 삶이 하나의 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걷는 내내 하논분화구의 생태 환경 보전 문제와 제주 지하수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