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 기도로 ‘14’처의 ‘십자가의 길’을 빠뜨릴 수 없다. 사순 시기에 만나는 숫자 14는 우리 임금이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따라 걷는 14번의 머무름이다.
예수님께서 사형 판결을 받은 빌라도 관저에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신 골고타까지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은 불과 600m 남짓한 길이다. 그러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 보나벤투라(1217?~1274) 등의 성인들을 비롯해 수많은 신자가 수천 km의 거리를 마다치 않고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을 찾았다.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 여러 처를 따라가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5~16세기 무렵이다. 오스만제국이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지중해로 진출함에 따라 예루살렘을 향한 성지순례가 어려워지자 신자들은 유럽 각지에서 성지 모형을 만들어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초기 십자가의 길은 각 처의 수도, 기도의 형태도 일정하지 않았다. 1688년 복자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허용하면서 유럽 전역에 십자가의 길이 널리 퍼졌는데, 특히 레오나르도 성인의 활동으로 14처 십자가의 길이 크게 보급됐다. 마침내 클레멘스 12세 교황 때 십자가의 길이 14처로 통일됐고,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십자가의 길 14처는 다양한 십자가의 길 중 14처로 고정된 것이지만, 사실 ‘14’라는 숫자는 예수님과 깊은 연관이 있는 숫자다. 숫자 14가 다윗, 나아가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마태오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14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14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14대”라고 기술하고 있다. 히브리어 문자는 각각 숫자를 나타내는데, 다윗(DWD, ???)을 이루는 글자(D=4, W=6)들의 합이 14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나자렛 예수」를 통해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2사무 7,16)이라는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족보에 나타나는 역사는 열네 세대가 세 번 되풀이되는 식으로 전개된다”며 “이 사실은 바야흐로 다윗이 올 시간, 다윗 왕조의 시기가 하느님이 당신의 왕국을 세우실 시기로서 다가왔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십자가의 길 14처, 그리고 영원한 왕국의 약속을 받은 임금을 상징하는 14는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왕관이 아닌 가시관을 쓰셨음을 기억하게 한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죄에 물든 인간을 깨끗하게 하고, 죽음을 이기시며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14처는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한 걸음씩 따라가는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669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