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뒤른 구시가지의 장크트 게오르크 성혈 순례 성당. 붉은 사암 외벽과 두 개의 탑이 도시의 지붕선을 압도하며, 바로크 양식의 장중한 규모를 드러낸다. 15세기 순례자가 늘면서 17~18세기에 현재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1962년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으며, 현재 프라이부르크대교구의 발뒤른본당으로 성혈 순례 사목을 같이 맡고 있다.
살면서 우리 자세와 마음의 방향을 점검할 시기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사순시기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나에게 마실 것을 다오”라고 청하십니다. 이 한 문장이 사순 여정의 방향을 잘 가리키는 듯합니다. 우리 갈증이 어디로 향하느냐가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가볼 순례지는 내가 정말 목마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기 고백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독일 남서부 발뒤른(Walldürn)의 성혈 순례 성당으로 매년 약 8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아옵니다.
발뒤른은 ‘오덴 숲’(Odenwald)이 펼쳐진 라인-네카르강 권역에 자리한 소도시입니다. 유명한 대도시의 랜드마크는 아니지만, 어딘가로 가는 길목에서 잠시 하느님을 향해 돌아서서 멈출 수 있는 순례지가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슈투트가르트·뷔르츠부르크를 잇는 아우토반 축과도 가깝고, 주요 도시로 이어지는 철도 노선이 있어서 일정 사이에 끼워 넣기도 좋습니다. 우리 마음이 늘 향하던 방향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기를 배우려 할 때 안성맞춤 순례지가 아닐까 합니다.
1330년 성혈 기적의 성작보를 적외선으로 촬영한 사진(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베로니카 수건에 나타났던 얼굴상이 희미하게 식별된다. 이를 형상화한 부조 기념물(우)이 성당 마당 야외 제대에 세워져 있다.
성작보에 일어난 성혈 기적
발뒤른 일대에는 로마 제국의 국경 방어선인 리메스 유적이 있습니다. 2세기 중반에 세워진 요새 유적·목욕탕 터·리메스를 따라 남아 있는 망루들로 이곳이 유서 깊은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대는 프랑크 왕국 시기에 복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8세기 말에 이미 교회가 있었습니다. 중세 독일 남서부에서 널리 공경하던 성 제오르지오를 성당의 수호 성인로 삼은 것은 이곳 사람들이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믿길 바랐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곳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5세기에 들어서였습니다.
1330년 무렵,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하인리히 오토 신부는 성체 성혈 축성 후 부주의하게 성작을 넘어뜨리고 맙니다. 성혈은 성작보에 붉게 물들었고, 흘러내린 곳마다 놀라운 형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한가운데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 베로니카의 수건에 찍힌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의 얼굴 모습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제는 공포에 질려 그 성작보를 몰래 제대 아래 돌을 빼내어 감추고는 오랜 세월 침묵합니다. 임종을 맞이해서야 그때 체험과 성작보를 숨겨놓은 곳을 공동체에 고백하지요.
성혈 기적 소식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알려졌고, 1445년에 성작보를 교황청으로 가져가게 됐습니다. 에우제니오 4세 교황은 공식적으로 기적을 인정하고 대사를 허락하며 발뒤른 순례를 장려하지요. 그 기적의 성혈 성작보가 성당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빛바랬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구세주의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 있지요.
발뒤른 순례 성당의 주 제대. 슈바벤 출신 예술가 크리스티안 마이어가 설계했고, 수호 성인인 성 제오르지오·성 마르티노의 조각상은 파울루스 형제가 제작했다. 제단화(1728)는 최후의 만찬으로 예수 수난을 상징하는 성혈 제대로 주제가 이어진다.
600년 이어온 그리스도 수난 신심의 순례지
발뒤른 역에서 나서 주택가를 따라 10~15분 걸어가면 구시가지 언덕에 장크트 게오르크 성혈 순례 성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순례 성당은 1698~1728년에 완성된 바로크 양식 건물이지만, 외벽에 붉은 사암의 결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첫인상은 화려함보다 단단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1728년 새 성당 봉헌 당시 11만 6000명이 영성체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이미 발뒤른은 그 시대에 널리 알려진 순례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주 제대로 향합니다.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제단화 양옆으로 수호 성인인 성 제오르지오가 말을 타고 용을 무찌르는 모습과 마찬가지로 로마 군인이었던 또 다른 수호 성인 성 마르티노가 보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보여주신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익랑에 자리한 성혈 제대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성혈 제대의 성광 안에 모셔진 기적의 성작보. 삼위일체 대축일부터 4주간 이어지는 대순례 기간에 공개적으로 현시한다.
발뒤른 순례 성당의 성혈 제대. 1626년 차하리아스 융커가 제작한 바로크 제대로, 석재 구조 위에 알라바스터 부조를 배치했다. 중앙에는 성작보를 모신 은 성광이 자리하고, 제단화 날개와 상부의 조각 군상·기둥 장식은 1330년 성혈 기적 전승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주님의 얼굴을 뵙고 싶은 열망
성혈 제대는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날개 제단화에는 이곳에서 일어난 기적, 숨김, 임종 시 고백, 공동체의 발견이 한 편의 서사시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제단화 안에 성작보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당시 성작보에는 예수님의 얼굴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점이 발뒤른 기적 전승에서 흥미로운 부분일 겁니다. 중세 후기에 ‘주님의 얼굴’을 뵙고 싶어 하는 열망은 아주 컸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이었던 시대에, 성화와 조각은 교리서를 대신하는 책이었고, 동시에 침묵의 기도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영혼을 움직였고, 우리를 위해 수난을 겪은 그분의 눈빛에 전부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반복해 나타난 기적의 얼굴들은 중세인의 신심과 갈망에 대한 응답이었을 겁니다.
사순은 마음을 깨끗이 비우는 시기인 동시에, 평소 그분의 수난을 보고도 외면하려 했던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그분을 다시 찾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은총의 성혈 제대 앞에서 발뒤른 순례자 기도로 그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이 경이로운 자리에서, 주님께서는 당신 사랑의 표지를 우리에게 새겨 두셨나이다.
그 표지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당신의 성혈로 드러나나이다.
이 표지가 세상 끝나는 날까지 우리 가운데 사랑으로 머무시는 당신 현존에 대한 변함없는 희망을 우리 안에 굳건히 하게 하소서. 아멘.”
<순례 팁>
※ 프랑크푸르트 방면(A3)에서 1시간, 슈투트가르트·뷔르츠부르크(A81)에서 각각 45분·1시간 15분 소요. 기차로는 발뒤른 역까지 이동 후 도보 또는 버스 이용.(1㎞, Basilika 하차)
※ 미사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8:00·9:00, 평일 18:30. 대순례 기간(삼위일체 대축일부터 4주간)에는 목요일 8시 성혈 제대 미사가 있으며, 성체 성혈 대축일에 성체 및 성작보 거동 행렬이 있다.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