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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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보호가 필요한 여성에게 엄마의 품이 되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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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가톨릭푸름터는 위기에 처한 임산부와 아기를 위해 365일 24시간 문이 열려 있는 집이다.

1950년 6·25전쟁 이후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희생의 삶을 살았던 우리 언니와 누이가 있었다. 1962년 박경원 경북도지사는 배움이 부족해 착취당하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집안을 위해 희생하는 많은 여성을 보고, 가톨릭교회에서 이 여성들을 보호하고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기술교육을 해주면 좋겠다고 청했다. 이에 당시 대구대교구장이셨던 서정길 대주교님은 ‘함께 기뻐하자’라는 의미를 담아 ‘동희료’라는 시설을 설립하셨다.

이에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던 여성들은 집이 생기고 친구가 생겼으며, 재봉·수예·미용 등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1962년 7월 시작된 ‘동희료’는 가톨릭여자기술학원(1962년 12월), 가톨릭여자기술원(1989년 1월)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설립 26년 만인 1988년 8월, 법인으로 거듭났다.

2000년 대희년, 새로운 천 년의 시작인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보호가 필요한 여성들의 유형이 바뀌었다. 가톨릭여자기술원도 시대 흐름과 변화에 응답해 1996년 청소년선도보호시설로 바뀌었다. 그리고 2005년 해체된 가정의 증가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가톨릭푸름터’가 되었다.

꼭 10년 뒤, 가톨릭푸름터는 급격한 시대의 변화로, 청소년지원시설에서 예기치 않은 임신과 준비되지 않은 출산으로 어려움에 처한 미혼모를 위한 집이 되었다. 엄마와 아기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부모가족복지시설이 된 것이다.

가톨릭푸름터는 엄마들이 직업훈련으로 사회 적응력을 키우고, 자립을 위한 발판과 꿈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엄마와 아이가 가난을 딛고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살았던 53년의 역사가 지금 가톨릭푸름터의 디딤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962년 도움이 필요했던 여성들에게, 지금은 급속한 발전의 그늘 아래서 시대 요구에 응답하며 위기 임산부와 아기들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보금자리가 되고자 애쓰고 있다. 가톨릭푸름터는 단순한 시설이 아닌 ‘집’으로서 어린 엄마와 아기들에게 엄마의 품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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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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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1장 17절
당신 얼굴을 당신 종 위에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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