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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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무병을 끊고 신앙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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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 제작

 


오래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일이다. 시골에 홀로 남은 엄마가 염려되어 날마다 전화했다. 처음에는 그냥 안부를 묻고 일상 얘기를 나누다가, 엄마 살아온 얘기를 어릴 때부터 죽 들려달라고 청했다. 이야기 치료랄까. 엄마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마음도 있고, 엄마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기도 했다.

그리하여 듣게 된 이야기는 놀라웠다. 외할아버지는 양반 가문의 자부심을 지닌 깐깐한 분이었고, 엄마는 예의범절 교육을 엄히 받았다. 국민학교(초등학교)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4학년 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왜? 집안이 어려웠어?”

“아니, 외할머니 때문에?. 무병(巫病)이 심해서, 내가 살림하고 동생을 돌봐야 했거든.”

하루 이틀 된 무병이 아니었다. 창자가 찢어지는 듯 아파서, 외할머니는 방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쩔 수 없이 항복하고 신을 모시다, 몸이 괜찮아지면 무속용품을 부수고 불태우길 반복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외할머니 대신, 어린 엄마가 동생 셋을 보살피고 살림을 꾸려가야 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외할머니는 건강하셨다. 방학이면 외가에 가곤 했지만, 무속과 연관된 그 무엇도 본 적이 없다. 십자고상과 성모상이 모셔져 있었을 뿐.

“외할머니는 그럼 괜찮아지신 거야? 어떻게 된 건데?”

“누가 ‘교회 다니면 낫는다’고 해서, 천주교 성당에 찾아갔지. 큰집이니까.”

“그래서 나으신 거야?”

“응. 그때부터 안 아팠어.”

외할머니 무병이 씻은 듯 낫자, 외할아버지와 온 가족도 세례를 받았다. 외할머니는 자발적 전교에 나섰는데, 근동 백 리 안팎 외할머니 발길이 닿지 않은 마을이 없을 정도였다. 엄마와 아버지도 성당 교우 집안끼리 맺어진 혼사였다고.

할아버지는 공소 회장이셨고 대가족 구성원 모두 신자였다. 공소가 있을 때는 공소 미사에 참여했고, 없어진 뒤에는 집에서 식구끼리 공소예절을 드렸다.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했으나 외가 신앙 내력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양가 어른들 덕분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유아 세례를 받고 그 뜰에서 자랄 수 있었던 거다.

큰 은총을 받고도 은총인 줄 모르고,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여 죄를 많이 지었다. 이사할 때마다 성당 위치부터 찾아보고 집을 정하긴 했으나 신실한 신자라 자부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거듭 예수님께 용서와 자비를 청해야 한다는 건 안다. 성모 마리아님 옷자락을 꽉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신앙인으로서 점이나 사주 같은 걸 절대 안 본다. 내 일을 내가 하고,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는 게 최고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의 딸인 엄마도 그랬고, 나 역시 가끔 예지력이 있다. 예컨대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늘 예지몽을 꾸었다. 무서운 한기에 소스라쳤지만, 그게 뭔지는 돌아가신 후에야 해몽할 수 있었다. 알아본들 막을 수 없었으리라.

운명을 알고 싶을 때 사람에게 물을 게 아니라 주님께 기도를 더 곡진히 하는 게 좋다. 나의 체험적 믿음의 한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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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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