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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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딛고 100년 신앙 숨결 이어온 도화담공소

[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13. 대전교구 보령동대동본당 도화담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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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보령동대동본당 도화담공소 전경. 단아하고 차분한 공소의 풍광이 이곳 신자들의 신앙 전통을 느끼게 한다.

대전교구 보령동대동본당 도화담공소는 1920년 설립돼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보령 지역 신앙 공동체다. 하부 내포 지역인 충남 보령시 미산면 판미로 1485-2에 자리하고 있다. 오랜 세월 이어오던 공소는 2017년 국도로 편입돼 지금의 자리로 이전, 2019년 새 공소를 지어 봉헌했다.

미산면(嵋山面)은 조선 시대 남포현(藍浦縣)에 속한 지역이다. 도화담은 보령시와 부여군 외산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서해안과 내륙을 가로지르는 차령산맥 줄기에 감싸안겨 봄이 되면 마을 주변 냇가에 복숭아꽃이 흐드러져 마치 한 폭 수묵화 같아 ‘복숭아꽃에 물든 못(도화담·桃花潭)’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여졌다.

남포는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사목 방문한 곳이다. 주 신부는 1795년 4월과 1796년 봄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와 전라도, 충청도 내포 지역을 사목 방문했다. 남포 방문은 아마도 1796년 봄 주 신부가 체포령을 피해 이 지역 여기저기로 피신할 때 들른 듯하다.
도화담공소 표지석.

한 폭 수묵화 같이 ‘복숭아꽃에 물든 못’

남포 지역 교우촌은 1839년 기해박해를 시작으로 1866년 병인박해까지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이들 순교자 가운데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이가 임영백(베드로)·이소사(마리아 막달레나)·박윤서(바오로)·전춘서(안드레아)·유문보(바오로)·최군문(베드로) 등 45명이다.

병인박해 전후 남포 지역 교우촌으로는 간재(간티, 보령시 주산면 금암리), 서지골(서짓골, 보령시 미산면 평라리), 판숫굴(미삼면 삼계리), 울타리골(미산면 평라리), 자라실(자라곡, 미산면 평라리), 도화담(미산면 도화담리), 삼계동(보령시 삼계리), 산죽(보령시 신흥리), 평밭골(신흥리), 골룡바위, 도장리, 고읍면 한천, 남면 은고개 등이 있었다. 이 지역은 조선 보부상들이 모시 유통을 활발히 하던 ‘저산팔구’(苧山八區)에 속한다.

교회 행정 구역상 하부 내포 지역인 보령 남포 미산면, 서천 비인면 판교면, 부여 내산면과 외산면 홍산면 옥산면에는 산으로 경계를 이루는 옛 교우촌들의 흔적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도화담공소는 박해를 피해 서천 작은재 띠안말 교우촌을 일구어 살던 교우 일부가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1890년 전후로 도화담과 아미산 북당골로 내려와 정착했다.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에 위치한 작은재 띠안말 교우촌은 1850년 이전에 형성됐다. 띠안말과 1㎞ 남짓한 거리의 산막골에서 1850년 황석두(루카) 성인이 이곳으로 와서 신앙 모임에 참여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황석두 성인은 이후 산막골에 큰 교우촌을 형성했다. 작은재 띠안말 교우촌 교우 중 김 펠릭스·임 바오로·박 시몬 치릴로가 병인박해 때 순교했다.
제대와 십자가만으로 꾸며진 제단이 소박하면서도 단출하다.
 
도화담공소 내부. 개방감과 채광이 좋아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1920년 금사리본당 관할 공소로 설립

대전교구 「금사리본당 100년사」에 따르면 도화담공소는 1920년에 금사리본당 주임 줄리앙 공베르 신부에 의해 설립됐다. 설립 당시 교우 수는 49명이었다. 줄리앙 공베르 신부는 당시 안성본당 주임 안토니 공베르 신부의 동생으로 형제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조선에서 사목하고 있었다.

그는 1900년 8월 1일에 사제품을 받고 10월 9일 조선에 입국, 초대 금사리본당 주임으로 부임했다. 1915년 프랑스 공병대대에 징병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1919년 11월 종전과 함께 조선에 재입국해 1923년 5월 논산본당 주임으로 전임할 때까지 금사리에서 사목했다. 줄리앙 공베르 신부는 6·25전쟁 때 북한 인민군에 체포돼 1950년 11월 13일 순교했다.

줄리앙 공베르 신부가 금사리본당에서 대목구장 뮈텔 주교에게 해마다 쓴 연말 보고서에는 본당뿐 아니라 공소 교우 상당수가 신앙에 무관심하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외교인에게 전교하는 것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외교인들은 무감각합니다. 천주교가 그들에게 아무런 물질적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다만 그들이 원하지 않는 상태로 끌어들이려는 목적밖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물질주의와 나태 풍조 때문입니다. 저의 마을의 영세자 모두가 냉담자가 되었습니다. 완전히 무감각해진 것입니다. 심지어 아이들마저도 최소한 그중 일부는 문답을 외지 못할 때 꾸중 듣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 그래도 공소 교우들의 행실은 대체로 양호합니다. (?) 예전의 열의는 이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말로 외교인 문화는 종교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지역의 프로테스탄티즘도 천주교보다 더 많은 개종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고약합니다.”(공베르 신부가 1920년 6월 24일 뮈텔 주교에게 보낸 보고서 중)

하지만 제2대 금사리본당 주임 박동헌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보낸 1924년 연말 보고서에는 “도화담공소 교우는 교회 계명을 비교적 잘 지키는 좋은 교우들”이라고 평가했다. 도화담공소는 1936년 서천본당, 1941년 장항본당, 1962년 대천본당, 2002년 보령동대동본당 관할로 이관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도화담공소 회합실.
2017년까지 옛 공소에서 사용했던 종.

2019년 장방형 강당식 새 공소 봉헌

현 도화담공소는 2019년 10월 26일 지어져 당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대지면적 658㎡에 건축면적 173.76㎡ 규모의 벽돌조 건물로 단아하다. 장방형 강당식 공소와 회합실과 부엌·화장실 등 부속건물을 갖추고 있다.

도로변 공소 입구에 성모상을 모셔놓고, ‘도화담공소’라는 커다란 표지석과 지붕에 십자가를 설치해 이곳이 가톨릭교회임을 잘 드러낸다. 공소 바로 앞에 개울과 산을 끼고 있어 도화담이라는 이름이 참 어울린다.

공소 내부는 흰색 벽 아랫면을 원목으로 마감했고, 양쪽 벽에 큼지막한 창들을 설치해 개방감과 풍부한 채광으로 온기를 더해준다. 4개 벽면 모두에 십자가의 길 14처가 설치돼 있는 게 이색적이다. 공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회중석 왼편에 이전에 사용하던 종이 놓여있다. 제단은 좁고 단출하다. 나무 제대와 십자가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도록 꾸며져 있다.

보령동대동본당 도화담공소는 차분하고 단아한 내공이 느껴진다. “계명을 잘 지키는 좋은 교우들”이라는 옛 사목자의 칭찬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만큼 직감적으로 훅 다가온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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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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