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비앙손 강변의 파레르모니알 예수 성심 바실리카. 길이 63.5m·폭 22.35m, 본랑 높이 22m 규모로 ‘작은 클뤼니’라는 별칭에 걸맞게 12세기 세워진 클뤼니 계열의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의 정수로 꼽힌다. 187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현재 오탱-샬롱-마콩교구 소속 본당으로 성심 성지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일상에서 기도는 타성에 젖고, 마음이 무뎌져만 갑니다. 참혹한 전쟁에 잠시 얼굴을 찌푸릴 뿐, 우리 앞가림에 급급한 요즘입니다. 그런 나약한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밝혀주는 장소가 있습니다. 예수 성심 순례지인 프랑스의 작은 도시 파레르모니알(Paray-le-Monial)로 고통의 기억이 머무는 곳인 동시에 사랑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클뤼니 개혁의 도시 파레르모니알
파레르모니알은 프랑스 동부 손에루아르주의 소도시입니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풍경이 서서히 바뀝니다. 바로 와인 산지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방에 접어듭니다. 부르고뉴는 완만한 구릉과 포도밭, 강이 어우러진 내륙 지역으로, 센강·손강·루아르강 상류가 이 일대를 흐르며 중세부터 교통과 상업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부르고뉴는 ‘수도원의 땅’이기도 합니다. 중세 서유럽 정치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부르고뉴 공국의 배경 아래 중세 초 수도원 개혁의 중심지였던 클뤼니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엄한 전례와 엄격한 규칙 준수로 수도원을 개혁하려던 클뤼니의 숨결은 파레르모니알을 포함해 부르고뉴 곳곳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클뤼니의 대표적 양식을 보여주는 예수 성심 바실리카
역에서 작은 운하를 건너 중심가 쪽으로 10분쯤 걸으면 부르비앙손 강변으로 시선이 트이며 예수 성심(聖心) 바실리카의 실루엣이 나타납니다. 옛 다리에서 바라보는 바실리카가 압권입니다. 둥근 후진의 곡선과 로마네스크의 묵중한 무게 위로 낮고 두꺼운 탑들이 안정감 있게 솟아 있는데, 푸르른 강변과 회색빛 돌벽이 맞물리며 성당은 오래전부터 강과 함께 그곳에 있었던 듯합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로마네스크 성당답게 입구부터 가대석과 후진까지 축이 명료합니다. 반복되는 아치와 기둥이 시선을 옆으로 흩뜨리지 않고 주 제대로 모읍니다. 주 제대의 천장으로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그린 14세기의 프레스코화가 보입니다. 그런데 성당 이름과 달리 예수 성심을 주제로 한 이미지가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건 이곳이 처음부터 클뤼니 수도원 전통의 노트르담 수도원 성당으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방문 봉쇄수녀회 수녀원과 발현 소성당. 이곳 수녀원 소성당에서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는 예수 성심 신심의 메시지를 받았다. 마르가리타 마리아 수녀는 1671년 24세 나이에 입회하여 1690년 임종할 때까지 이곳에서 생활했다. 소성당은 1633년에 건립됐으며, 1854년 대성당의 장식 양식을 반영해 개축됐다.
콜롱비에르 소성당의 주 제단화 모자이크. 예수회 사제 성 클로드 라 콜롱비에르의 성해가 모셔져 있다. 제단화는 불꽃 속 성심을 드러낸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천사들·방문 봉쇄수녀회의 수녀들이 둘러선 장면은 예수 성심 신심의 확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방문 봉쇄수녀회 소성당에 발현하신 예수님
17세기에 도심의 성모 마리아 방문 봉쇄수녀회 수녀원 소성당에서 예수님이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에게 여러 차례 발현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성심을 공경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셨고, 이후로 파레르모니알은 예수 성심의 도시로 자리 잡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당도 예수 성심에 봉헌되며 준 대성전으로 승격되지요.
예수님이 발현하신 수녀원과 수녀원 소성당은 바실리카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잠시 걸으면, 성모상 너머에 펜스로 둘러싸인 아담한 발현 소성당이 보입니다.
바실리카가 ‘시간의 집’이라면, 소성당은 ‘기억의 방’입니다. 소성당에서 예수님은 26세의 마르가리타 마리아 수녀에게 네 차례에 걸쳐 발현하십니다. 가대석 오른편에 1864년 시복식 때 만들어진 성인의 밀랍 모형이 보이는데, 그 안에 성인의 성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마르가리타 마리아 수녀는 1673년 12월 27일 처음으로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이후 1년 반 동안 이어진 환시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성심을 보여주시며, 성심 공경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매월 첫 금요일에 영성체하면서 특별히 봉헌하고, 매주 목요일 밤 성시간을 지내며, 성체 성혈 대축일 뒤 둘째 금요일을 예수 성심을 기리는 날로 삼아 달라고 하셨죠.
그러나 마르가리타 마리아 수녀의 길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계시를 장상과 동료들에게 전하고 함께 실천하고자 했지만, 공동체는 이를 믿지 않았고 신학자들도 수녀가 환영에 시달린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럼에도 성녀는 체험을 과장하거나 고집하지 않고 순명과 인내로 견뎠습니다. 1675년, 수녀원의 고해 사제로 온 예수회의 클로드 라 콜롱비에르 신부의 지지를 받은 뒤에야 차츰 수도 공동체의 실천으로 옮겨 가지요.
발현 소성당 주 제대. 주 제대의 프레스코화는 1966~ 1973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방문수녀회 발현을 배경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수난의 상처를 드러내시는 모습을 그렸다. 그림에는 성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와 고해 사제 성 클로드 라 콜롱비에르·사도 성 요한·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성 요한 에우데스 등 예수 성심 신심과 깊이 연결된 성인들이 함께 묘사되어 있다.
파레르모니알 바실리카의 주 제대와 후진. 로마네스크 특유의 반원 아치와 56m 천장을 받치는 기둥 열주가 제대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천장의 판토크라토르 프레스코화는 14~15세기 작품으로 20세기에 복원했다.
예수 성심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는 곳
주 제대 프레스코화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발현에서 수난의 상처를 드러내시는 모습과 예수 성심과 관련된 여러 성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 성심 신심의 씨앗은 이미 중세에 뿌려져 있었습니다. 중세 신자들은 특히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와 수난 상처들을 바라보며, 그 고통을 구원의 사랑이 드러난 표징으로 묵상했습니다. 예수 성심은 사랑과 자비가 흘러나오는 영적 중심으로 이해되었지요. 성 제르투르다는 성심 관상을 중시하며 옆구리 상처와 심장의 상징을 결합해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파레르모니알의 발현을 계기로 예수 성심 신심은 공적으로 널리 퍼집니다. 역대 교황들은 성심 신심을 승인하고 권장했으며, 1856년 교황 비오 9세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제정해 전 세계 교회가 성심 신심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도록 이끄셨습니다.
제대의 벽화를 바라보면 하느님의 사랑이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상처와 고통까지 감내하는 만큼 구체적임을 느낍니다. 예수님은 상처를 감추지 않으시고, 그 상처가 다시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당신 성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고통이 사라져 기쁜 게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사랑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지금 현실의 희망이 아닌가 합니다.
<순례 팁>
※ 파리에서 자동차로 3시간 30분, 리용에서 1시간 40분, 클뤼니에서 40분. 리용 파르디외 역 ↔ 파레르모니알 역 직행 기차. 발현 소성당에서 콜롱비에르 소성당도 가깝다.
※ 미사 전례: 예수 성심 바실리카 주일 및 대축일 11:00, 평일 18:30(화~금) / 발현 소성당 주일 및 대축일 9:00, 평일 11:00.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