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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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불운이라 여겼던 순간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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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가을 어느 날, 나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 그날따라 유독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생겼다. 가족 중 한 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진행 중이던 작품의 출판 과정에도 문제가 생겼다. 무거운 마음으로 차를 운전하는데, 편집부에서 계속 전화가 걸려 왔다.

평소에는 운전할 때 매우 조심하는 편이라 전화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벨 소리에 잠깐 멍해진 사이 차선을 놓쳤다. 우회전 구간이 보여 급히 차선을 바꾸는 순간, 옆 차선에서 달려오던 차와 부딪쳤다. 차선 변경 전에 사이드미러로 흘깃 확인했지만, 그 차는 사각지대에 있어 미처 안 보였던 모양이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에어백이 터졌다.

‘왜 자꾸 나한테 나쁜 일이 생기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귀에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닌데? 보호해준 건데?” 나는 곧바로 ‘정말 그러네!’ 하고 수긍하며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차는 망가졌지만, 나도 상대방도 다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옆 차선에 큰 차가 달려올 수도 있고, 사고가 연쇄 추돌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가벼운 충돌이라도 크게 다칠 수 있었고.

나는 차에서 내려 먼저 상대방의 안전을 확인했다. “바로 병원에 가셔서 검사하시고 조금이라도 아픈 데가 있으면 치료받으시라”고 말했다.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상대방도 언성을 높이지 않고 보험사에 연락한 덕에 사고는 원만히 처리되었다.

한숨 돌리고 나니 사고 직후 들었던 그 목소리가 새삼 신기했다. 머릿속 생각이라기에는 청각적으로 너무 생생했다. 이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을 누군가 알려 줬고, 그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상황을 차분히 수습할 수 있었다.

다음 날 한 동화작가 후배와의 전화를 통해서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제 사고 때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언니, 그건 성령께서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신실한 천주교 신자인 후배가 말했다. “정말? 어머, 그런가 봐!” 무지에서 번쩍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자연 만물 안에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자주 느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우연처럼 보이는 오묘한 섭리에 감탄할 때도 많다. 그러나 ‘성령 체험’이라는 말은 어딘가 낯설었는데, 후배의 설명이 명쾌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교통사고는 분명 좋지 않은 일이다. 보험료가 올라 경제적 손실도 생겼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좋고 나쁘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됨을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했다.

작년 연말에는 넘어져 오른팔이 부러졌다. 아프고 불편했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생길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다니며 많은 환자를 만났다. 산업재해로 치료받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았다. 그때부터 내 기도는 자연스럽게 환자들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졌다.

오른팔에 깁스해 운동을 못 하니 겨우내 아파트 계단 걷기를 했다. 날마다 묵주기도를 하며 25층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기도 근육도 그만큼 더 생긴 것 같다. 꺾이고 아픈 만큼 겸손과 감사를 새로 배우는 시간. 올해 사순 시기가 내게는 그런 은혜의 시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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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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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5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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