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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돋보기] 생명을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박예슬 헬레나(신문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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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을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 오병이어의 기적이 가능한가요?”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에 달하는 군중을 먹여 살리신 기적.(마태 14,13-21 참조) 우리는 이를 ‘오병이어의 기적’이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현실성 없다는 이유로 성경의 기적을 외면되곤 한다. 교회 가르침 역시 종교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폄하되기 일쑤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 조동원 신부가 강연자로 나선 제4회 ‘WYD 수퍼클래스’에서도 같은 질문이 나왔다.

조 신부는 답했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질량보존의 법칙에 위배돼 불가능합니다.” 다만 이렇게 덧붙였다. “과학은 반복 가능한 것을 측정합니다. 기적은 반복할 수 없습니다. 기적은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일은 쉽지 않다. 과학은 과학으로, 기적은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일. 나아가 생명은 생명으로 바라보는 일 말이다. 하물며 자식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불과 얼마 전까지 의료진이 태아의 성별도 부모에게 알리지 못했던 현실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임신 36주에 태어난 아기를 살해한 사건을 ‘후기 임신중지’라는 표현으로 포장하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최근 한 기사에 달린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화재로 보금자리를 잃은 수녀들에게 본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를 통해 성금을 전달하는 기사였다. “5만 원밖에 기부하지 못했지만, 많은 마음이 모이는 것 같아 좋습니다.” 이어 이런 답글이 달렸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생각나네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른다 한들, 태아 생명도 분명 생명이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생명을 생명이라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의 기적은 언제나 생명을 향해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먼 옛날 이야기만이 아니라면, 오늘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가치 역시 생명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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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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