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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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눈물이 우리 상처를 어루만지는 곳, 비스 성당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67. 독일 비스 순례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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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오버바이에른의 슈타인가덴에 자리한 비스 순례 성당. 1745년에 착공해 1754년에 완공되었으며, 성당 내외부를 맡은 치머만 형제의 협업이 가장 완숙한 경지에 이른 작품으로 평가된다.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재 아우크스부르크 교구에서 순례 사목을 맡고 있다.

대자연 앞의 기도실

우리는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 종종 말을 잃곤 합니다. 장엄한 대자연 앞에 섰을 때나, 유럽의 오랜 성당에 들어섰을 때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침묵의 결이 늘 같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벅찬 경이로움과 경외심이 입을 다물게 하고, 때로는 깊은 위로가 밀려와 굳이 말이 필요 없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찾아갈 순례지는 이 두 가지 침묵이 동시에 밀려드는 곳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상이 눈물을 흘리는 기적이 일어났던 비스 순례 성당(Wieskirche)입니다. 독일 남부 알프스 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매년 100만 명 안팎의 방문객이 찾아와 감탄하고, 또 침묵 속에 위로를 얻어가는 장소입니다.

비스 성당을 찾아가는 건 도심의 순례와 사뭇 다릅니다. 독일어로 ‘비스(Wies)’는 초원을 뜻합니다. 구도심의 붐비는 거리를 지나는 대신, 이곳으로 향하는 길은 갈수록 한적해집니다. 소음은 멀어지고, 길 양옆으로는 초지와 농가, 이따금 숲이 나타날 뿐입니다. 이런 곳에 정말 세계적으로 알려진 성당이 있을까 싶을 무렵 암머가우 알프스 자락의 푸른 들판 너머로 집 몇 채와 큰 성당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흰색과 분홍빛 벽면, 부드럽게 굽은 정면. 비스 성당의 외관은 우아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습니다. 큰 성당조차 알프스 대자연 앞에서는 마치 조용한 기도실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다시 한번 말을 잃게 합니다.

성당 내부는 타원형 중심 공간과 반원형의 제단부가 결합한 구조입니다. 바깥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밝습니다. 조개껍데기와 덩굴을 본뜬 로코코 특유의 곡선 장식이 곳곳에 이어져, 실내 전체가 부드럽고 화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성당 중앙에는 쇠사슬에 묶인 채 채찍질 당하신 예수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아름다움 한가운데 고통이 자리하고 있는 겁니다.
주 제대 중앙 감실에 모셔진 사슬에 묶여 채찍질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상. 주님 수난 성금요일 행렬에 쓰이던 목각상으로 1738년 눈물의 기적으로 비스 순례의 발단이 되었다.

눈물을 흘리신 예수 수난상

1738년 6월 14일 한 농가에서 살던 마리아 로리 가족은 예수상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이 목각상은 프레몽트레회 슈타인가덴 수도원이 보관하던 것으로, 1723년부터 1724년까지 주님 수난 성금요일 행렬에 쓰였습니다. 이후로는 더 이상 쓰지 않고 다락방에 치워져 있었는데, 1738년 5월 4일 마리아 로리가 발견해 집으로 모셔 온 것이었죠.

기적의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1740년경 이미 들판에 작은 소성당이 세워졌고, 1744년에는 그곳에서 첫미사가 봉헌될 정도로 순례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1745년 슈타인가덴 수도원장은 제대로 된 순례 성당을 짓기 시작해 1754년에 완공합니다.
요한 밥티스트 치머만이 그린 천장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을 자비와 화해의 희망으로 구현했다. 무지개 위에 앉은 그리스도와 비어 있는 심판의 자리는, 수난의 상처가 단죄보다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성당의 신학을 하늘처럼 열려 있는 화면 안에 펼쳐 보인다.

수난의 기억을 천국에 대한 희망으로

비스 순례 성당의 천장을 올려다보면, 천장화가 공간 자체를 열어젖히는 듯 보입니다. 이 건축의 주역은 도미니쿠스 치머만과 요한 밥티스트 치머만 형제였습니다. 형 도미니쿠스는 건축과 스투코를 맡았고, 동생 요한 밥티스트는 천장 프레스코화를 그렸습니다.

천장화의 주제는 최후의 심판과 그리스도의 구원입니다만, 분위기는 무겁기보다 밝고 상승하는 듯합니다. 시간의 끝을 상징하는 도상과 최후의 심판 자리를 볼 수 있는데, 심판보다 구원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밝은 색채, 구름 위로 상승하는 인물들의 흐름이 예수님 수난의 기억을 천국에 대한 희망으로 승화시킵니다. 눈물의 기적에서 출발해 눈물 너머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죠.
비스 순례 성당 내부. 타원형의 중심 공간과 제단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족을 그린 제단화는 뮌헨 궁정화가 발타자르 아우구스트 알브레히트의 작품이며, 장식 전체는 치머만 형제 예술가들의 종합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교부들의 조각상은 티롤 조각가 안톤 슈투름의 작품이다.

슈타인가덴 수도원과 순례자들이 맺은 로코코 열매

외딴 초원에 이토록 크고 화려한 성당이 들어설 수 있었던 건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의 정성과 이 지역이 지닌 오랜 역사적 분위기 덕분이었습니다. 이곳은 알프스 산록의 변두리처럼 보이지만, ‘파펜빈켈(Pfaffenwinkel)’이란 이름처럼 수많은 수도원과 성당이 모여있는 종교적 전통이 깊은 지역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이 지역은 바이에른 공국 형성과 벨프 가문의 세력 확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147년 벨프 6세에 의해 설립된 슈타인가덴 수도원도 지역의 유력한 프레몽트레회 수도원 중 하나였습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수도원의 정치·경제적 역량은 이런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행정적·사회적 기반이 되었죠. 물론 성당 건립은 수도원에 큰 재정 부담을 안겼지만, 수도원은 이를 감수하고 당대 최고의 장인들을 동원했고, 마침내 결국 황량한 들판 위에 18세기 로코코의 꽃을 피워냈습니다.
비스 성당의 주 제대. 한국 순례자들이 주 제단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아름다움이 수난을 감싸는 곳

오늘날 오지의 성당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데에는 가까운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성도 한몫했을 겁니다. 루트비히 2세의 성을 보러 온 김에 근처의 ‘아름다운 성당’도 들러보려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순례지인지 모르고 온 이들에게도 뜻하지 않은 은총이 내립니다.

비스 성당의 화려함은 현실의 아픔을 지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교는 수난을 단순한 비극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상처 입은 그리스도를 응시하며 연민과 회심에 이르는 일은 오랜 신심의 전통이었습니다.

이곳은 삶의 십자가를 억지로 들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빚어내는 침묵 중에 나의 고독을 이해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고통과 마주하게 할 뿐입니다. 비스 성당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그 모든 찬란함이 고난받는 그리스도에게로 수렴하며, 그 과정에서 삶의 무게를 견디는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줍니다.
 
<순례 팁>

※ 뮌헨에서 자동차로 1시간 20분, 퓌센에서 비스 성당까지 자동차로 20분. 퓌센역에서 노선버스 73번이 운행 중이다.

※ 미사 전례: 주일 및 대축일 8:30·11:00, 평일 10:00(화·수·금·토) 19:00(금). 수시로 순례자 그룹의 미사가 봉헌된다.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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