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참조)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마르타에게 하신 이 말씀은 주님이 부활 그 자체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심을 선언한 구절이다.
이 말씀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가져온다거나 가르친다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심으로써 부활과 생명이 주님의 본질임을 드러내셨다. 이 말씀은 주님를 믿는 사람은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지만, 육신의 완전한 부활은 미래에 완성된다는 점에서 종말론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또 ‘나를 믿는 사람은’이라고 분명한 조건을 제시하심으로써 구원이 인간이 성취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자유의지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지는 은총임을 명확히 하셨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자연 요소들에도 영원한 삶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번성했던 문명이라 할지라도 시간 앞에서는 끝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는 소네트 「오지만디아스」에서 이를 날카롭게 표현한다.
“나의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라. 강하다는 자들아,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사막을 헤매던 여행자는 부서진 거대한 석상에 새겨진 이 문구를 발견하지만, 그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끝없는 모래만 펼쳐져 있을 뿐이다. 참고로 퍼시 비시 셸리의 아내 메리 셸리는 인간이 생명을 소유하려 할 때의 비극을 다룬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다. 문학과 신화 속에서 불사자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끝없는 시간 속에서 모든 상실을 겪고, 사랑하는 이들을 반복해서 떠나보내며, 기억만 남고 삶의 의미는 점점 마모되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래서 우리는 불사자와 부활자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불사자는 죽음을 원칙적으로 회피하며 시간이 끝없이 연장되는, 변화 없는 상태를 뜻한다. 반면 부활자는 죽음을 실제로 통과하여 새로운 질서 안으로 편입된 근본적으로 변형된 존재다. 죽음은 분명 실재이며 인간에게 적대적인 현실이지만, 죽음이 최종은 아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지는 부활을 통해 존재가 새롭게 창조된다는 것은 주님께서 시간과 차원을 넘어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물이다.
영국 오페라 ‘디도와 아에네아스’로 잘 알려진 작곡가 헨리 퍼셀(1659~1695)은 주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음악으로 옮겼다. 퍼셀은 ‘영국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며,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세계 음악사의 흐름을 다시 썼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퍼셀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는 주님 말씀을 장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음악으로 선포한다.
//youtu.be/7TrpdaSTXHE?si=dILRiy4KICnh8XcQ
20세기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이 퍼셀의 주제를 바탕으로 작곡한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퍼셀이 남긴 주제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작품이기도 하다.
//youtu.be/4vbvhU22uAM?si=JoUAXzVsdzu_oSOz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