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신자였던 열두 살 소년은 첫 미사에서 경험한 평화의 인사를 잊지 못했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한국 가톨릭 평화운동의 한 축을 맡게 됐다.
지난 2월 28일 국제 가톨릭 평화운동 단체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PCK) 제4기 상임대표에 선출된 조재선(베드로)씨 이야기다. 중학교 영어 교사이자 도서출판 다시문학 편집주간인 그는 통역가, 작가, 사회복지법인 이사, 떼제 공동체 준비위원 등 다채로운 이력을 거쳐 PCK 상임대표에 선출됐다.
개신교에서 신앙을 접한 그는 천주교 집안이었던 외가를 따라 처음 참여한 미사에서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조 대표는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는 개신교와 달리, 전례 한가운데에서 서로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모습이 무척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어쩌면 지금의 제 모습은 그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고 회상했다.
입교 후 성당은 그의 일상이 됐다. 성인이 된 뒤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20년을 활동했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데서 활력을 얻은 그는 자연스레 교직을 택했다. 임용 시험에 합격하곤 전국 가톨릭계 학교에 지원해 성소의 요람 서울 동성중학교 교사가 됐다. 현재는 서울 노곡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좋았던 과거와 달리,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새로운 고민이 깊어졌다. 게임 문화에서 유입된 혐오 표현들이 일상 언어와 문화가 됐기 때문이다. “당위적인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평화를 이루려는 사람들 속으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조 대표는 “그런 점에서 가난한 사람을 우선시하고 연대하는 가톨릭교회의 탁월함을 발견한다”며 “실천으로 신앙을 전파하는 전통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표의 지나온 삶은 ‘신앙’과 ‘실천’의 조화라는 스스로의 신념에 힘을 실어준다. 그는 20년의 주일학교 교사 중 절반을 장애인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귓속말로 ‘선생님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묻더라고요. 그 긴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도 제 직업도, 학벌도 묻지 않았던 겁니다. 모든 껍데기가 벗겨진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게 사랑 아닐까요.”
이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동시에 내면 깊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평화를 향한 그의 시선도 같은 맥락에 있다. “내적 평화와 사회적 평화는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상처 입은 과거의 나와 화해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을 향한 미움과 증오도 줄어들 테니까요.”
그 말에는 개인사의 무게도 실려 있다. 조 대표는 “제 조부는 1950년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돼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다”며 “우리 주변에는 분단과 대립, 혐오와 학살의 상처가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PCK 상임대표로서 정전협정 기념 세미나, 평화 기원 미사, 평화 순례 등 연례행사와 함께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문 60주년 행사 등 굵직한 일정을 준비 중이다. 특히 1997년 파리 세계청년대회(WYD) 국제 청년포럼 한국 대표를 시작으로 총 세 차례 WYD 참가한 경험이 있는 그는 내년 서울 WYD에 대한 기대도 남다르다.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평화를 세계 교회에 알릴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판문점처럼 분단의 아픔이 깃든 곳을 세계 청년들이 직접 방문해 몸으로 느끼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조 대표는 “PCK는 평화와 인권 운동을 통해 보편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며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평화와 화해의 불을 놓으셨듯, 저도 그 불빛을 받아 작은 불씨 한 점이 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