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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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다시, 봄을 위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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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만 느껴졌던 겨울이 서서히 가고 있다. 추위를 잘 타다 보니, 유독 봄이 더디 오는 것처럼 느껴져서 춥다 춥다 하며 지내는데 어느 행사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작년 봄보다 훨씬 낫잖아요.” ‘불의’했던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이제는 희망이 있지 않느냐는 말에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며칠 전 미국이 이란의 초등학교를 공습해서 170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희생되었다.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정권이 바뀌었다고, 그것도 반 년 전에 바뀐 정권에 희망이 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지 욱하는 마음이 드는 한편, 혹시 나만 과한 생각을 하는 건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봄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정의(대통령 탄핵)를 위해,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길바닥에서 보냈던 시간이었다. 그 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참 다행이고 기뻤던 시간이었고, 사회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내 주변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세종보의 동료들은 600일 넘게 천막 농성을 하고, 새만금과 가덕도를 지키기 위해 활동가들이 이를 악물고 싸우고 있다. 곳곳에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주민들이 일어나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막겠다고 도보 순례와 미사가 이어졌다. 이런 것들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정의가 아닌 걸까?

어떤 이는 신규핵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이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이번 정부가 잘하고 있으니 광화문에서 이어지는 탈핵 시국미사에 ‘시국’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한다. 반도체 산단 건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 경제가 살아났는지 아느냐며, 왜 미래 산업을 발목 잡느냐고도 한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계속되는 지금, 언론은 한국의 무기가 성능을 인정받아 수출 호재라며 기술의 쾌거를 기뻐한다. 지난해 길바닥에서 함께 봄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공동의 적(?)’이 사라지고 각자 그 다음의 정의를 위해 갈라졌다.

선명한 적이나 악당을 무찌르는 것으로 정의가 완성되지 않는다. 일상 안에서의 정의는 더욱 복잡하다. 많은 변수를 생각하며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고민해야 한다. 그럴 때 어떤 ‘가치’에 기준을 두고 있느냐, 어떤 정의를 지향하느냐가 우리의 다음 발걸음을 이끈다. 반도체 산단을 예로 들어보자. 산단 건설 덕분에 경제가 살아난다고 해도 완성된 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전기와 물은 어떻게 끌어올까. 이를 위해 삶의 터전이 망가진다면 그야말로 미래를 담보로 현생의 복을 누리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제와 지구와 미래를 생각해서 어떤 경제를 지향해야 할까. 눈을 우리나라 바깥으로 돌려보자. K-방산의 쾌거로 무기수출이 호황이라는 말은 어딘가에서 그 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누군가 그 무기의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경제발전이 괜찮은 건가. 경제발전을 앞세운 이 모든 일이 괜찮다고, 어쩔 수 없다고 계속 진행되도록 묵인 혹은 옹호해도 되는 걸까.

우리가 큰 정의에 관심을 두고 우리의 ‘가치’에 대해 점검하는 것은 우리 일상의 작은 정의를 위한 선택에도 영향을 준다. 나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정의에 부디 관심을 거두지 말고 다시, 진정한 봄을 위한 긴 걸음을 함께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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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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