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봉헌회 사순 심화 순례 참가자들이 피에르 퀴비르 수도원 성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봉헌회 종신 봉헌자와 일행 40명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부활의 희망을 준비하기 위해 사순 시기 순례를 다녀왔다. 이들은 봉헌회 책임 수도자들의 지도로 3월 6일부터 12일간 프랑스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을 순례했다. 순례 기간 봉헌자들은 혼돈의 세상에서 벗어나 깊은 침묵 속에 하느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수도자들의 ‘광야의 삶’에 침잠해 주님 현존을 체험했다. 하느님과 단둘이 마주하는 ‘고요’ 속에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느님의 참 평화’를 전인격적으로 경험했다.
왜관 수도원 봉헌회는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과 영적으로 결합해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토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평신도들이 세상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직업이나 사도직 직분을 다하면서 봉헌 생활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종의 재속회다. 사순 시기 프랑스 수도원 체험을 성주간을 지내는 독자들과 함께 나누려 한다.
프랑스의 엄률 시토회 수도원들은 철저한 완덕 추구를 위해 스스로 세상과 격리하기 위해 높은 담장을 설치하거나 숲속 깊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방문자들을 진심으로 그리스도처럼 환대한다. 모르방 숲속 깊은 곳에 자리한 생 마리 드 라 피에르 퀴비르 수도원 담장.
비를 머금은 봄, 죽음을 이기고 생명으로
세상 권력자들의 죽음의 광기가 사그라질 줄 모르고 더욱 기승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덧없이 죽어 나가고 있다. 군사 강대국들이 주변 약소국들에 죽음의 굿판으로 뛰어들라 다그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로마 황제의 이름으로 시간 속에 자리매김했듯 2026년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준비하는 거룩한 절기의 시간도 특정 권력자들의 이름으로 세계사의 맥락 안에 제시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파리로 향한 14시간의 비행은 즐겁지 않았다. 모니터에서 비행기가 지금 중동 지역을 지나고 있음을 알려줄 때 갑자기 답답하고 가슴이 옥죄어 왔다. 일어나 좁은 통로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해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눈치도 보여 자리에 앉아 주머니 속에 있는 1단 묵주를 잡았다.
프랑스의 이른 봄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줬다. 햇살 잔뜩 머금은 봄기운이 흩뿌리는 비를 타고 땅속 깊숙이 스며들어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으로 데워진 대지가 숨구멍을 내고 눅진해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성큼한 놈들이 푸른 싹을 틔우고, 벚꽃들은 꽃망울 터뜨렸다. 대지가 온통 새 생명이다. 모처럼 제대로 물오른 ‘연두’를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가장 거룩한 날들인 ‘파스카 성삼일’이 유다력으로 정월에 해당하는 니산달(3~4월) 14일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묵상해본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파스카 축제’. ‘무교절’을 시작하는 니산달 14일에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만찬에서 성체성사와 사제직을 설정하시는 일을 시작으로 안식일 다음날까지 수난과 죽음, 부활이라는 놀라운 일을 완성하신다. 자연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는 ‘우주적 표징’의 파스카 절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표징’으로 모든 것을 내맡기고 죽으시고 되살아나셨다. 이 결정적 전환점에서 그리스도인이 취할 태도는 무엇일까?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열리게 된 구원의 삶에 따라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시작이 이번 수도원 순례를 통해 ‘환대’임을 깨달았다.
시간경과 함께 봉헌하는 미사에서 ‘흰옷의 관상가들’인 엄률 시토회 수도자들은 한 호흡으로 주님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날숨과 들숨으로 기도 드리는 솔렘 수도원
왜관 수도원 봉헌회의 프랑스 수도원 심화 순례는 로마 제국 시대 이시스 신전이 있던 자리에 558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생 제르망 데프레 수도원 방문으로 시작했다. 프랑스는 초세기부터 복음이 전해졌다.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 막달레나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지금의 프랑스 남부 생 마리 드 라 메르 지역으로 건너와 처음 주님의 복음을 선포했다고 한다. 또 2세기와 3세기에 걸쳐 활동했던 교부 리옹의 이레네우스 주교와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 한 분으로 4세기에 활동했던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등이 초기 프랑스 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특히 마르티노 주교는 군인으로 수도자로 주교로 그의 삶을 옮아갔지만 늘 수도자로서 신원을 버리지 않아 프랑스 수도회의 아버지로 공경받고 있다.
프랑스의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유럽의 여느 수도원들과 마찬가지로 왕과 제후들의 세속화 정책과 혁명의 결과로 수차례 폐쇄됐다가 다시 문을 열었다. 시련과 재건 과정을 통해 프랑스의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은 「수도 규칙」과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이끄는 수도원장 아빠스의 카리스마에 따라 클뤼니·시토·엄률 시토(트라피스트)라는 새 모습으로 쇄신해왔다.
본격적인 순례는 솔렘부터였다. 솔렘 수도원은 1010년 르망의 성 베드로 수도원 분원으로 시작했다. 14세기 백년 전쟁 동안 영국군에 파괴됐으나 재건됐고,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다시 폐쇄됐다. 1833년 게랑제 신부는 폐허가 된 수도원 건물을 사들여 소수의 동료와 함께 수도 생활을 재개했다. 조선대목구를 설정했던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1837년 솔렘을 정식 수도원으로 승격시키고 게랑제 신부를 초대 아빠스로 임명해 ‘프랑스 베네딕도 연합회’(현 솔렘 연합회)를 설립했다. 게랑제 아빠스는 사라진 교회 전례음악을 되찾기 위해 유럽 전역의 도서관에서 고대 성가 필사본을 조사 연구해 오늘날 보편 교회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표준 악보와 창법을 완성했다.
시간경과 함께 봉헌하는 미사에서 솔렘의 수도자들은 정성을 다해 한 호흡으로 시편과 전례 기도문을 노래했다. 들릴 듯 말 듯한 선창자의 첫 음을 절대 음으로 하여 한 소리를 내는 수도자들의 찬가에서 날숨과 들숨의 조화가 얼마나 심오한지 감탄했다. ‘호흡’은 들숨 날숨이 아니라 날숨 들숨이라 해야 맞다. 하느님의 날숨으로 생명을 얻은 인간이 내 숨을 내뱉는 게 아니라, 들이마신 하느님의 숨을 내쉬는 것이다. 솔렘의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날숨을 자신의 들숨으로, 또 다른 이를 향한 날숨으로 내쉬고 주고받았다. 이 호흡의 조화는 거룩한 찬가로 성당을 가득 채웠고 돌처럼 굳어있던 내 심장을 하느님의 입김으로 눅진하게 했다.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노트르담 드 셉트 퐁스 수도원의 한 수도자가 엎드려 기도하고 있다. 셉트 퐁스 수도원 자료사진
손님을 예수님처럼 환대하는 성 베네딕도회
부르고뉴 지방 요누 주 모르방 숲속 깊은 곳에 자리한 생 마리 드 라 피에르 퀴비르 수도원은 수비아코 카시네즈 연합회 소속이지만 설립자 무아르 신부의 영성에 따라 수도자들은 완덕을 위해 극도의 가난과 철저한 은수, 엄격한 고행을 택했다. 이들은 일반적인 수도복조차 입지 않고 작업에 효율적인 간편한 노동복을 수도복으로 대신하고 있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의 기도와 관상, 자급자족을 위해 극한 노동과 철저한 가난의 삶을 추구하는 엄률 시토회는 스스로 세상과 격리되기 위해 높고 긴 담장을 쌓거나 아예 숲속 깊이 들어갔다. 엄률 시토회 수도자들은 마리아께 모든 것을 의탁하기에 수호성인도 성모님이시다.
친환경 농식품 ‘제르말린’으로 유명한 노트르담 드 셉트 퐁스 수도원 역시 엄률 시토회로서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문자 그대로 지키며 기도와 노동뿐인 극단적 삶을 살고 있다. 바쁜 여름철에만 하루 두 끼를 먹고, 9월 15일부터 이듬해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 하루 한 끼가 전부다. 그것도 대부분 양배추·콩·기장 죽·마른 빵이 전부이고, 고기·생선·달걀·흰 빵·버터·치즈 등은 절대 먹지 않는다.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엄격한 관상과 노동, 가난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봉헌자들을 놀라울 정도로 ‘환대’했다. 손님을 예수님처럼 환대하는 것은 베네딕토의 정신이며 성 베네딕도회의 전통이다. 그들의 환대는 요란하지도 과하지도 않았다. 정성으로 맞이하고 겸손하게 성당 자리를 내어주며, 수줍게 전례서를 펴주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봉헌회 사순 심화 순례는 ‘삶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줬다. 기도와 노동 사이 균형을 잡아야 영성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듯 넘치지 않게 조화를 이루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게 인생에, 특히 신앙생활에 있어 참으로 중요함을 알게 됐다.
언뜻 “힘차게 머무르라. 그리고 모두를 환대하라”는 소리가 내면 깊이 울렸다. 성주간 동안 주님 안에 그리고 교회 전례 안에 힘차게 머무르리라. 그리고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는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말씀처럼 그분 사랑의 완성을 성취하기 위해 모두를 환대하는 조화로운 호흡의 인생을 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