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랄로 시가지를 굽어보는 해발 600m 언덕에 자리한 사크로 몬테 디 바랄로. 1491년 성묘 소성당 조성에서 출발해 바실리카와 45개 소성당으로 확장된 ‘새 예루살렘’이다. 노바라교구 소속 ‘성 가우덴치오와 성 카를로 오블라티 공동체’가 순례 사목과 전례를 맡고 있다.
중세의 순례 상상력이 빚은 ‘거룩한 산’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환호가 채 가시기 전, 우리는 곧바로 주님 수난의 짙은 어둠으로 들어갑니다. 종려가지를 흔들던 손은 어느새 군중의 광기에 합세해 비난의 손가락질로 변모합니다. 일상에서 적잖게 보이는 이런 나약함은 자괴감을 낳고 영혼에 깊은 얼룩을 남깁니다.
오늘 가볼 순례지는 주님 수난을 체험하며 그 얼룩진 내면을 성찰하고 치유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입성의 환희가 조롱과 모독, 십자가의 참혹한 침묵으로 치달아 가는 과정을 한편의 성극으로 구현한 곳, 이탈리아 북서부 바랄로의 거룩한 산, 사크로 몬테 디 바랄로입니다.
바랄로는 피에몬테주 세시아 계곡에 자리한 중세 신심의 정수가 서린 알프스의 작은 마을입니다. 열차로 가기엔 다소 까다롭지만, 밀라노를 오가는 정기 버스가 순례자의 발이 되어줍니다.
15세기 말, 작은형제회의 베르나르디노 카이미 신부는 예루살렘의 성묘를 관리하다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 이곳 언덕에 거룩한 산, 즉 사크로 몬테(Sacro monte)를 조성합니다. 지리적·정치적 이유로 성지를 찾지 못하는 유럽인들이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체험하며 묵상할 대체 순례지를 만든 것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대도시가 아니라, 이 불편한 알프스 산골이었을까요?
카이미 신부의 선택은 치밀했습니다. 바랄로의 가파른 비탈과 넓은 정상부가 있는 지형은 예루살렘 성지를 단계적으로 재현하기에 최적이었습니다. 중세의 순례는 오늘날 관광지처럼 접근성이 좋은 목적지를 효율적으로 찾아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먼 길을 걸어와서 오르막길을 오르는 고단함을 감수하는 과정이 순례 신심의 일부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예루살렘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힘들게 올라가며 주님의 수난을 체득하는 공간을 지향한 겁니다. 바랄로의 언덕은 오래전부터 북이탈리아 성모 신심과 관련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후 이곳은 트리엔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신심 고양 차원에서 이탈리아 북서부 알프스 지역에 조성된 여러 사크로 몬테의 모태가 됩니다. 지난번 소개한 바레세의 사크로 몬테도 그렇게 생겨났지요.
바랄로 성모 승천 바실리카의 주제대. 17세기 후반 디오니지 부솔라와 몬탈티 형제가 만든 입체 조각과 프레스코화로 하늘의 영광을 구현했다. 검은 대리석 기둥의 주 제대와 스쿠롤로는 1740년 무렵 베네데토 알피에리의 설계에 따라 정비되었으며, 수난의 길 끝에서 순례자를 맞는 희망을 심어준다. 지하 소성당에는 가우덴치오 페라리가 만든 목조 성모상이 있다.
제29 소성당의 빌라도 법정. 16세기 초 가우덴치오 페라리가 회화와 입체 조각을 결합한 장면들을 구성했고, 이후로 여러 예술가가 합류해 오늘의 복합 성지 풍경을 완성했다. 800개가 넘는 실물 크기 조각상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스도 삶을 체험하며 걷는 오름길
밀라노 외곽을 벗어난 버스는 피에몬테 평야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 북서쪽으로 달립니다. 논과 들판, 마을의 종탑이 이어지는 창밖 풍경은 티치노강을 건너 세시아 골짜기로 접어드는 순간부터는 사라집니다. 산그늘을 따라 한 시간 남짓 강을 거슬러 오르면, 가파른 암벽 위 요새처럼 솟은 사크로 몬테를 품은 바랄로에 다다릅니다.
버스에서 내려 도심으로 들어가면 카이미 신부가 사크로 몬테 조성과 함께 지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이 나옵니다. 허름한 외관이라고 지나치기 쉽습니다만, 꼭 들러야 합니다. 제대와 회중석 사이를 가르는 거대한 벽에 주님 탄생 예고부터 수난과 부활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대하 서사시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이죠. 글을 모르는 순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가난한 이들의 성경’이자, 본격적인 사크로 몬테 순례에 앞선 오리엔테이션 공간이었습니다.
성당을 나와 길 건너 오르막길을 오르면 하나둘씩 소성당들이 나타납니다. 좀 전에 본 그림 속 장면들이 숲속의 무대에서 다시 펼쳐집니다. 사크로 몬테는 언덕 위에 자리한 성당 하나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성모 승천 바실리카를 포함해 45개의 소성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소성당 안에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부터 주님 탄생 예고, 베들레헴 탄생, 그리고 그리스도 삶과 수난의 장면들이 800개의 실물 크기 조각상과 프레스코화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마치 2000년 전 그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사크로 몬테 정상부의 성모 승천 바실리카. 성벽으로 둘러싸인 정상부는 웅장한 입구와 두 개의 광장, 회랑 건물과 열주가 어우러져 고대 예루살렘의 성곽 도시를 떠올린다. 광장 중앙의 바실리카는 1614년에 착공됐으며, 1932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바랄로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가우덴치오의 벽’. 가우덴치오 페라리가 1513년에 그린 폭 약 10.4m, 높이 약 8m의 대형 프레스코화. 주님 탄생 예고부터 부활까지 그리스도의 생애를 21개 장면에 담은 프레스코 연작으로 사크로 몬테 순례의 서막을 알린다.
수난의 목격자에서 신앙의 삶 증거자로
사크로 몬테의 상부 구역인 정상의 황금문을 지나 광장에 들어선 순간, 수난의 목격자로 ‘새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됩니다. 두 광장을 둘러싼 회랑과 소성당들은 수난의 핵심 장면을 보여줍니다. 군중에 둘러싸인 빌라도 법정의 팽팽한 긴장감, 골고타 언덕의 묵직한 무게, 성묘의 서늘한 침묵이 차례로 영혼을 파고듭니다.
수난의 현장들 끝으로 성모 승천 바실리카가 서 있습니다. 1614년부터 증축된 성당으로 여러 시대의 신심이 층층이 쌓인 바랄로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성당 내부는 극적인 긴장감보다 차분하고 응축된 분위기가 감돕니다.
주제대를 가득 채운 성모 승천의 찬란한 도상은 이곳이 단순히 과거의 고통을 복기하는 수난극 무대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위한 순례지임을 보여줍니다. 아들의 수난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십자가 아래 끝까지 머물며 그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최초의 그리스도인’. 고통의 심연을 지나서 맞이하는 성모님의 영광은 지금 이 길을 걷는 우리에게 수난의 길이 찬란한 부활의 빛으로 나아가는 필연적인 통로임을 일깨워 줍니다. 성모님이라는 희망의 거울을 통해 저마다의 십자가 너머에 약속된 빛나는 미래가 보입니다.
바랄로의 순례가 가슴 깊이 남는 까닭은, 이곳이 아름다운 풍광을 넘어, 주님의 수난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 속에서 묵묵히 따라갈 용기를 건네는 장소이기 때문일 겁니다. 환호는 짧고 십자가는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그 좁고 가파른 길 끝에는 반드시 영광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례 팁>
※ 밀라노 람푸냐노 터미널 ↔ 바랄로 정기 버스.(9:40분 출발, 2시간 소요, 시즌·요일별 운행 확인할 것) 사크로몬테 입구에서 정상까지 도보로 20분, 마을에서 정상부까지 케이블카가 있다. 유네스코 등재 9개 성지 통합 가이드 공식 앱 ‘Sacri Monti’.
※ 성모 승천 바실리카 미사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9:30·11:30·17:00, 평일 17:00(동절기 16:00), 바실리카 개방 시간: 8:30~12:20·14:15~18:30. 정상부에 순례자를 위한 숙소 및 레스토랑이 있다.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