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외국인 등 천주교 성지로 착각
2027 서울 WYD 앞두고 대응 요구돼
광주대교구장 명의 교령 발표할 예정
1985년 전남 나주에서 한 미용실을 운영하던 윤홍선(개명 전 이름)은 자신의 집 안에 놓인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흘렀다고 주장했다. ‘나주 윤 율리아’ 현상의 시작이다. 윤홍선은 “성모상의 피눈물뿐만 아니라 다른 성모상에서도 향유가 흘렀고, 꿈에서 성모님이 점지해준 지역을 따라가 보니 기적수가 흘렀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으로 추종자를 끌어모았고, 기적을 맹신한 이들은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후 동남아시아 등 해외 각지로 이러한 주장을 유포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나주 일대에 조성된 ‘성모 경당’ ‘성모 동산’ 등 그들의 근거지에서 오랫동안 지내고 있다. 신고된 재산 내역만 52억여 원에 이른다.
교회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기적이 아니다”라고 수차례 발표했다. 교회는 이들의 주장이 가톨릭 신앙과 양립할 수 없으며, 허위·조작된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추종 세력 역시 파문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오래전에 밝힌 판단이며 가르침이다. 교회는 공동체 신앙의 일치와 개인 체험의 오류를 판단하고, 계시의 완결성을 도모하기 위해 교도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교회가 조사를 통해 윤 율리아 측의 사적 계시를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고 밝혔음에도 그릇된 개인 체험을 교회의 판단과 권위보다 앞서는 것으로 여기며 주장해오고 있다.
추종자들은 “교회의 파문이 두렵지 않다”며 교도권을 따르지 않았다. 심지어 2007년, 2018년 이어진 언론사들의 탐사보도들도 한결같이 이들의 행위가 사실이 아님을 검증했음에도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만 ‘진실’이라고 말한다. 교회를 향해 현상의 인정 여부에만 목매고, 교회가 말하는 신앙의 원리들은 무시하고 있다.
40여 년이 흐른 현재, 다시 나주 윤 율리아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과거 기적이 아니라고 지침을 내린 교회는 다시 한 번 나주 성모 발현 추종 움직임에 강경 대응하기로 했다. cpbc 특별취재팀은 나주 윤 율리아의 실태를 파악하고 나주 성모 경당과 성모 동산을 취재해 이들이 주장해온 초자연적 현상의 실체를 추적했다. 이름을 바꾼 윤홍선의 행적, 농지 위에 세워진 불법 건축물, 재단법인과 농업법인 설립을 통한 재산 이동, 국가 보조금이 투입된 신앙촌 조성 등 논란을 차례로 살펴본다.
나주 성모 동산 인근에 한 표지판이 성모동산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름까지 바꾸고 행적은 묘연
나주 성모 발현을 주장한 윤홍선은 사라졌다. 대신 ‘윤정혜’라는 이름만 남았다. 윤홍선은 2011년 법원으로부터 개명 허가를 받고 윤정혜로 탈바꿈했다. 나주본당(주임 노성기 신부) 측이 제공한 교적을 확인한 결과 윤정혜(율리아)와 김만복(율리오), 그리고 두 자녀의 이름이 기재된 것이 파악됐다.
2018년 한 언론사의 보도 이후 윤정혜는 해당 언론사와 제보자를 고소했다. 제보자 이만실씨는 “고소장이 전혀 모르는 이름의 사람한테서 날아왔다”며 “가톨릭 성인 이름으로 바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 성녀 ‘정혜 엘리사벳’과 같은데, 알고 보면 한자가 다르다. 본지가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원고는 출생 때 부친이 ‘정혜’로 이름 지었는데, 조부가 ‘홍선’으로 신고하도록 했다”며 “부친이 당초 정한 이름이 정혜였음을 듣고 정혜로 개명했다”고 기재돼있다. 김재석 (재)마리아의구원방주회 운영본부장은 취재진이 개명 이유를 질의하자 “6·25 전후로 일어난 사건들이기 때문에 설명이 길다”며 회피했다.
현재 그의 행적은 묘연하다. 취재진은 수차례 윤정혜와의 만남을 요청했다. 성모 동산 관계자는 “그분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정신없이 바쁘다”고만 했다. 성모 경당에서 만난 나주 윤 율리아 소속 자칭 수도자는 “워낙 바쁜 분이라 기도회 때 오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증언이 나온다. 윤정혜의 남편 김만복은 지난해 12월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윤정혜도 올해 80세의 고령이다. 제보자 김홍섭씨는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없다”며 “남편이 사망했을 때도 나타나지 않고 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윤 율리아 측이 게시한 기도회 영상에는 윤정혜가 휠체어에 앉아 부축을 받으며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제보자 김홍섭씨가 1985년 촬영해 취재진에 공개한 나주 윤 율리아 성모상 촬영본.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은 어디에
나주 성모발현 주장의 시작점은 피눈물을 흘리는 성모상이다. 윤정혜를 비롯한 추종자들은 이를 근거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사진관을 운영하던 김홍섭씨를 한밤중에 전화로 불러내 기적이 일어난 성모상을 촬영하게까지 했다. 하지만 이 성모상의 행방 역시 현재 묘연하다.
최근 (재)마리아의구원방주회 측의 기도회에서조차 성모상이 공개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성모동산 인근 나주 신광리 한옥마을인 행복마을 준공식에 참여했던 A씨는 “5, 6년 전에 도난당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취재진은 과거 윤정혜 측 관계자와 김홍섭씨 간 통화내역을 확보했다. 40년가량 윤정혜의 측근으로 일하다 최근 퇴직한 이 관계자는 “(성모상을) 누가 가져가 버렸고 잃어버렸다”면서 “다른 성모상은 향유를 흘린다. 신비롭다”고 주장했다.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은 증명할 수 없게 됐다.
윤정혜는 이후 다른 성모상이 향유를 흘린다고 주장했다. 이런 방식으로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 이외에 ‘기적’ 발현을 끊임없이 전파하고 있다. 윤정혜는 자신이 꿈을 꿨다면서 자비의 예수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 역시 신심 도구로 둔갑해 성물로 판매되고 있다.
윤정혜는 자칭 수도회를 구성, 운영하고 있다. 나주 시내 경당을 잠입 취재한 결과, 일부 사람들이 수도자 복장을 하고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은 “교회의 인준을 받지 못했다. 수도회 인준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교도권 자체를 따르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수도회 인준 이야기를 또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로를 ‘수녀’ 혹은 ‘수사’라고 불렀다. 해당 자칭 수도회에는 50여 명이 함께 생활 중이다.
(재)마리아의구원방주회 김재석 운영본부장이 나주 윤 율리아 성모 경당에서 책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혹 방지 위해 교회 역할 시급
나주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광주대교구는 오래전부터 이 현상이 기적이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2008년 당시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는 교령을 통해 “임의적인 ‘경당’과 ‘성모 동산’에서 본인이 금지한 성사집행과 준성사 의식을 주관하거나 참여하는 성직자·수도자·평신도는 자동처벌의 파문제재에 해당된다는 것을 선언한다”(교회법 제1336조, 1364조 참조)고 발표했다.
하지만 본지가 나주에서 만난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성모 동산과 성모 경당을 천주교 성지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교회가 계속 신자들을 현혹하는 나주 윤 율리아에 대해 더욱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당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시민은 나주 성모 경당을 아느냐고 묻자 “신자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천주교 성지 아닌가. 수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다른 나주 시민도 “천주교인들이 많이 왔다 갔다 했다”며 “천주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대부분 잘 모르거나 가짜로 인식하고, 도리어 이곳을 방문한 천주교인들은 그걸 믿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화관광해설사 김 아무개씨는 “요즘엔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들, 주로 필리핀에서 많이 온다”며 “생명수 같은 물을 받아서 들고 간다”고 했다.
주교회의는 올해 춘계 정기총회에서 나주 윤 율리아의 주장을 조작된 허위 정보라고 다시금 규정했다. 나주를 관할하는 광주대교구를 비롯해 각 교구는 그동안 나주 윤 율리아의 신앙 이탈행위를 지적하며 주의를 당부했다. 성모 동산이나 성모 경당 등을 방문할 경우 자동 파문된다는 사실을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측에도 알렸다. 광주대교구는 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명의의 교령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많은 신자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맞아 세계 각지에서 방한하는데, 자칫 추종자들에 현혹돼 나주를 방문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