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축일은 성탄절이 아니라 부활절이다. 이는 가톨릭·정교회·개신교·성공회를 가리지 않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다. 십자가 죽음이 정의롭지만 실패한 비극이라면, 부활은 죽음을 뛰어넘은 구원의 약속이다. 주님께서 부활을 보여주지 않으셨다면 영악하고 어리석으며 이익에 밝은 인간이 굳이 주님의 길을 따를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주님의 뜻을 좇아 사는 삶에 대한 보상이 부활이라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은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그저 감사하며 받을 뿐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라고 말했다. 죽음의 권세를 물리친 주님을 증언하기 위해 교회 공동체가 생겨났고, 미사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반복해 증언하는 참여형 드라마다.
예수님께서 기적으로 되살려 낸 라자로의 부활과 주님의 부활을 혼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라자로는 주님의 권능에 의해 다시 이전의 육체로 돌아온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영속하는 생명을 스스로 지니시고 영원한 삶으로 승화하셨다. 라자로의 되살아남은 죄의 속죄나 영혼의 구원과는 연결되지 않지만, 주님의 부활은 죄와 죽음을 결정적으로 넘어선 사건이다.
부활절을 소재로 한 클래식 음악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중세 시대 대다수 작곡가는 교회에 속해 있었고, 그들에게 부활 음악을 작곡하는 일은 신앙 고백이자 자신의 음악적 성취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군계일학은 단연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다.
바흐의 ‘부활절 오라토리오(Easter Oratorio, BWV 249)’는 주간 첫날 아침 빈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과 제자들의 기쁨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밝고 힘찬 관현악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부활에 대한 놀라움과 환희를 음악으로 드러낸다. 바흐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밝고 기쁨에 찬 곡으로 꼽히며, 부활의 기쁨 - 무덤을 향한 긴장과 고뇌 - 부활 인식의 놀라움 - 찬미의 환희를 서사적으로 풀어낸다.
바흐의 ‘부활절 오라토리오’
//youtu.be/a5ICH1gK5fQ?si=45ZEpaJYWLxf46Mo
바흐와 동갑내기인 헨델에게도 부활절 음악이 없을 리 없다. 그의 걸작 ‘메시아’에서도 주님의 부활이 언급되지만, 부활과 죽음의 패배를 직접적인 주제로 삼은 ‘부활(La Resurrezione, HWV 47)’은 극적이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헨델은 부활을 죽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사건으로 그렸고, 화려한 콜로라투라적인 아리아들과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이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헨델의 ‘부활’
//youtu.be/07X4u7S2wyo?si=4c59I2U_G3fI1O9H
현대 작곡가 펜데레츠키는 2001년 뉴욕에서 9·11테러를 겪은 뒤 피아노 협주곡 ‘부활(Resurrection)’을 작곡했다.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이자 억울한 죽음을 부활의 희망으로 위로하려는 작곡가의 마음이 음악 전반에 담겨 있다. 심장의 박동처럼 반복되는 피아노의 리듬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애정이다.
펜데레츠키의 ‘부활’ 1악장
//youtu.be/cD0kV0q-0ww?si=VsH69rnASyoAzMlX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