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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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길거리 본당’에서 배운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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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 제작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산골에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오던 광경이 기억날 만큼, 문명의 혜택을 늦게 받은 지역이었다. 길도 좋지 않았고, 버스도 한참 뒤에야 들어왔다.

그런 환경에서 유아 세례는 받았지만, 성당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 주일이면 식구들끼리 공소예절을 지키긴 했으나, 사제가 안 계셔서 성체를 모실 수 없었고 강론 말씀도 들을 수 없었다. 부활절이나 성탄 때 어른들은 이삼십 리 길을 걸어 성당에 다녀왔지만, 어린 우리까지 데려가기에는 길이 멀고 험했다.

농번기를 피해 신부님이 드물게 가정방문을 오시면, 어른들은 환대하며 정갈한 밥상을 차렸다. 내향적이던 나는 인사만 겨우 하고 이내 숨어버리곤 했다. 로만 칼라에 검은 수단을 입은 신부님은 온화하게 미소 띤 얼굴이었지만, 내게는 어쩐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청소년기 이후 집을 떠나면서 냉담이 이어졌다. 유아 세례를 받고 공소예절을 지켜온 것 외에는 교리를 제대로 배운 적도, 성당에 꾸준히 다닌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하고 공부하고 결혼해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신앙에 대해 무지했다.
마음속 나침반은 늘 성당을 향했던지라, 훗날 스스로 찾아가 교리를 배웠다. 주일마다 성당에 가긴 했으나, 여전히 뜨뜻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길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부님과 수녀님들도 계셨는데, 길가에 상을 펴고 제대를 차리는 듯했다.

‘미사를 드린다고? 이런 곳에서?’ 집에 와서도 마음이 자꾸 그곳으로 향했다. 얼마 뒤 다시 가보니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뒤쪽에 서서 조용히 미사에 참여했고 성체를 모셨다. 알고 보니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생명·평화 기원 미사였다. 평화운동을 하던 사제들까지 구속되자, 공사 시행사 앞에서 사순 시기 동안 길거리 미사를 봉헌하게 된 것이었다.

강론을 맡은 신부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자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평화로이 살아온 삶 터를 하루아침에 뺏긴 사람들과 구럼비를 비롯하여 파괴될 운명에 놓인 하느님의 피조물들을 ‘강도당한 이웃’이라고 했다. 로마서 12장 15절에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하였는데, 우는 이들의 곁에 서는 길거리 미사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밤 그 미사에 참여했다. 천주교 신자들뿐 아니라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이 함께한 미사는 늘 은혜로웠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도 길 위에서 이렇게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말씀하셨겠구나 싶기도 했다.

삼월의 밤, 빌딩 사이로 부는 바람은 차가웠다. 집이 가까웠던 나는 생강차·커피 등을 보온병에 담아 미사가 끝나면 함께 마셨다. 그렇게 신부님, 수녀님, 신자분들과 인사하고 얘기도 나누었다. 소속감 없는 신자였던 내가, ‘길거리 본당’에서 비로소 미사의 기쁨과 형제자매애를 알게 되었다. 날마다 모신 성체의 축복 덕분이었다.

그때 이후 성당 가는 마음이 진실로 기쁘고 미사 시간이 더욱 좋아졌다. 부활절을 앞두고 그 은총을 다시 새기며, 앞으로 성체를 더 자주 모셔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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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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