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맹의 노트르담 드 레스페랑스 바실리카. 성모 발현 공인 직후인 1873년에 초석을 놓아 1890년에 완공된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약 65m 높이의 거대한 두 첨탑은 10km 밖에서도 보인다. 1905년, 비오 10세 교황에 의해 준 대성전으로 지정됐다. 발현 당시 영적 지도자였던 미셸 게렝 본당 신부가 1872년 선종한 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오블라띠 선교수도회가 파견되어 오늘날까지 순례 사목을 맡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움에 잠긴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첫인사를 건네십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주님의 부활이 늘 확신에 찬 희망으로만 다가오진 않습니다. 우리 역시 나약한 인간이기에 고단한 현실 앞에 마음이 움츠러들곤 합니다. 특히 전운이 걷히지 않은 서아시아 상황에 과연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을지 막막한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할 성지는 바로 그런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곳입니다. 전쟁 한복판에서 따뜻한 한 말씀으로 평화를 심어준 프랑스의 성모 성지 퐁맹입니다.
퐁맹 성모 발현 목격자와 증언자들(위)과 성지 안내도(아래). 1871년 발현 뒤 시현자들의 삶도 각기 신앙의 길로 이어졌다. 바르베데트 외젠은 라발 교구 사제, 동생 조제프는 오블라띠 선교수도회 사제가 되었고, 잔 마리는 보르도 성가정 수녀회에 입회했다.
전쟁 중 들려온 하늘의 응답
퐁맹은 노르망디와 브르타뉴의 경계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몽생미셸에서 약 45㎞ 거리에 있어, 몽생미셸을 가는 길이라면 꼭 들러보길 권합니다. 4월이면 유채꽃이 만발한 들판 너머로 평화로운 시골 풍경 속에 우뚝 솟은 바실리카의 첨탑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 작은 마을에 네오고딕 양식의 큰 성당이?’ 하고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9세기 이곳 있었던 성모 발현이 성당 건축의 계기였습니다.
1871년 1월, 퐁맹에는 전쟁의 공포가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전을 거듭하며 국토의 3분의 2를 내어준 상태였습니다. 고작 수백 명의 주민이 사는 마을이었지만, 이미 청년 수십 명이 전쟁에 끌려갔습니다. 프로이센군이 인근 라발까지 진격해오자, 마을 사람들은 미셸 게랭 본당 신부와 함께 성모님께 전쟁 종식을 간절히 청하며 묵주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던 1월 17일 저녁이었습니다. 바르베데트 집안의 두 형제 외젠과 조제프는 헛간에서 아버지의 일을 돕던 중 별이 총총한 하늘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을 목격합니다. 어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혹시 아이들에게만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 다른 두 소녀를 데려왔는데, 소년들이 묘사한 것과 똑같이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까. 이 소식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다 함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성가가 이어지는 세 시간 동안 여인의 모습 주위로 푸른 타원과 네 개의 촛불, 가슴의 붉은 십자가가 나타났습니다. 특히 신자들이 성모 찬송을 부를 때, 여인의 발치에 “얘들아, 기도하여라. 하느님이 곧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야. 내 아들도 너희 기도에 감동했단다”라는 문장이 새겨졌습니다. ‘내 아들’이란 말로 분명해졌습니다!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성모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위로와 희망을 전한 것이죠. 놀랍게도 바로 그날 밤, 프로이센군은 철수 명령을 받고 진군을 멈춥니다. 열흘 뒤 휴전 협정이 체결되고, 마을 청년들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지요.
퐁맹 바실리카 스테인드글라스. 1874~1887년 제작된 후진 창은 성모 발현과 그리스도의 생애를 구상적으로 표현했고, 익랑의 대형 창은 1955년 아르데코 양식으로 공간에 20세기적 리듬을 더했다. 본랑의 창은 1966~1978년 완성된 비구상 작품으로, 37가지 푸른색으로 발현 때 아이들이 묘사한 성모의 푸른 옷과 겨울 저녁 하늘의 기억을 담았다.
푸른 빛의 은총이 머무는 ‘희망의 성모’ 바실리카
성모 발현 후 전쟁이 멈췄다는 소식이 퍼지자 ‘희망의 성모’를 찾는 순례자들은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봄이 되자 하루에 3000~4000명이 찾아왔습니다. 이듬해 라발교구는 공식적으로 성모 발현을 인정했고, 오블라띠 선교수도회에 순례 사목을 맡으며 성지 조성이 시작됐습니다.
퐁맹 성지는 희망의 성모 바실리카, 발현의 장소인 바르베데트 집의 헛간, 선교수도회 소성당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화강암으로 지어진 네오고딕 양식의 바실리카 두 첨탑은 10㎞ 밖에서 보일 만큼 웅장합니다. 특이한 점은 성당의 방향입니다. 보통 동서축을 따르는 다른 성당과 달리, 발현의 현장인 약 150m 떨어진 헛간 쪽으로 향해 있습니다. 성지 전체가 1871년 겨울밤의 기적을 기억하는 셈입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을 가득 채운 37가지의 각기 다른 푸른 빛에서 이곳이 성모님에게 봉헌한 성당임을 단번에 느낍니다. 본래 습지였던 지형 특성상 건물을 가볍게 하려고 창을 넓게 냈는데, 덕분에 성당은 묵중한 느낌 대신 빛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은총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여러 시기에 걸쳐 제작된 가대석과 측면 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쭉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파란색을 사용한 이유는 아이들이 목격한 신비로운 푸른 빛을 하나의 색으로만 재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바르베데트 가족의 헛간 내부. 성모 발현이 시작된 자리를 기도의 공간으로 꾸몄다. 그날의 밤하늘을 묘사한 정면 벽화 양옆으로 성모 발현의 전개를 단계별로 보여 주는 성모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일 밤 9시에 끝기도를 봉헌한다.
평화로 가는 가교 “기도하여라”
성당을 나와 발현지인 헛간으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거대한 바실리카가 은총의 기적에 대한 교회의 감사라면, 소박한 헛간은 그 기적이 시작된 일상의 자리입니다. 두 장소 사이를 걷다 보면, 이곳에서는 ‘하늘의 표징’과 ‘땅의 일상’이 결코 떨어져 있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퐁맹 성지는 교황청이 공인한 세계 16대 성모 발현지 중 하나입니다. 1871년 1월의 발현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기적이 아닙니다. 1836년 미셸 게랭 신부가 부임한 이래, 각 가정에 뿌리내린 매일의 묵주 기도가 있었기에 공동체는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기도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퐁맹은 ‘큰 다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19세기 발현을 기념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하느님께 이어주는 가교입니다. 교만과 탐욕이 빚어낸 전쟁의 비극은 시대를 달리하며 반복됩니다. 정치 논리와 힘의 원리가 평화를 가져다줄 것 같지만, 퐁맹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어둠의 사슬을 끊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자비이며, 그 자비를 이끌어내는 힘은 기도에 있다는 것. 여행자는 건물의 아름다움을 보러 오지만, 순례자는 여전히 그 따뜻하고도 명료한 음성을 들으러 옵니다. “얘들아, 기도하여라. 하느님이 들어주실 거야.”
<순례 팁>
※ 몽생미셸에서 약 45㎞, 파리에서 약 285㎞ 거리.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는 힘들다. 바실리카 건너편에 순례자 숙소와 레스토랑이 있다. //sanctuaire-pontmain.fr
※ 바실리카 미사 전례: 주일 및 대축일 10:30·17:00, 평일 11:00 (11/1~성지주일: 10:30 미사를 제외한 미사는 생시몽에생쥬드 성당) / 묵주 기도 매일 16:00.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