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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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첫 사목지 은이에 되살아난 김가항성당

[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16. 수원교구 은이공소(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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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로 조성된 은이공소는 김대건 신부가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이며, 사제로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곳이다. 은이성지 전경.

180년 전 오늘 파스카 성야 미사 봉헌

올해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순교 180주년이 되는 해이다. 180년 전 오늘. 곧 1846년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인 이날 김대건 신부는 경기도 용인 은이공소에서 파스카 성야 미사를 봉헌했다. 김 신부가 주례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에는 그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와 은이공소와 주변 교우촌 교우들이 참여했다.

주님 부활 대축일 다음날, 곧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인 1846년 4월 13일 김대건 신부는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가 머물고 있는 한양으로 올라왔다. 1836년 모방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선발돼 헤어진 지 10년 만에 신부가 되어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 고 우르술라는 집에 며칠 더 머물다 떠나라고 간곡히 붙잡았다. 이것이 마지막이란 걸 직감한 모성은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더 먹이고, 버선 한 켤레, 노자 한 닢 더 챙겨주고 싶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눈물로 아들을 붙잡았다. 하루만이라도 이 어미와 머물다 가라고.

김대건 신부는 어머니의 청을 뿌리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페레올 주교의 지시에 따라 성직자 영입을 위한 해로를 개척하러 백령도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어머니와 배웅나온 교우들에게 다음과 같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어머니를 당부했다. “험난한 때에 우리는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믿어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할 용맹을 주시길 간구하십시오. 지금 우리 주위에 마귀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의 삶을 모르는 위급한 처지에 있습니다. 마음과 몸을 온전히 하느님의 안배에 맡기고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걸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다행히 우리가 살아 있게 된다면 또다시 반가이 만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천국에서 즐거운 재회를 합시다. 마지막으로 홀로 남으신 불쌍한 제 어머니를 교우 여러분이 잘 돌보아 주시길 청합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이 순교한 이후 어머니 고 우르술라 홀로 살았던 골배마실 집터.

1839년 기해년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이 순교한 후 은이 상뜸이 골배마실에서 넋을 놓고 홀로 사는 어머니는 김 신부가 짊어진 큰 십자가였다. 어릴 적부터 효심 깊던 아들 김대건 신부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혈육의 정을 모질게 끊으려 했지만 차마 홀로 계신 어머니의 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은이를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순교 22일 전, 1846년 8월 26일 옥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제 어머니 우르술라를 주교님께 맡깁니다”라는 편지를 썼다. 김 신부는 이 편지에 앞서 그해 6월 8일 스승 신부들에게 쓴 편지 끝에 벗인 최양업 부제에게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토마스, 잘 있게.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 나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도록 부탁하네!”라고 썼다.

아마도 김대건 신부는 벗인 최양업에게 어머니를 맡기면서 은이공소에서 어머니와 함께 봉헌했던 마지막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골배마실 집에서 안아주시던 어머니 품을 그리워하며 그 온기를 다시 느꼈을 것이다.

아들의 효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어머니 고 우르술라는 김대건 신부 순교 소식을 듣고는 교우들에게 “아들 신부가 군문효수형으로 치명했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고 한다.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을 만큼 모든 걸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어느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 있는 김대건 성상. 성인의 두개골을 실측해 조각했다.
‘숨겨진 동네’ 은이공소는 1810년 이후 형성된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은이를 표기한 고지도.

김대건 신부가 신학생으로 선발된 장소

은이공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은이로 182에 자리한다. 지금은 수원교구가 성지로 조성해 놓았다. 은이(隱里)는 ‘숨겨진 동네’ 또는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대 은이는 교우들 사이에서 ‘응이’, ‘어니’, ‘어은이’라고도 불렸다. 「좌포도청등록」에는 ‘언리’(彦里)로 나온다. 또 「대동여지도」에는 ‘어은산’(御隱山), ‘어은리’(御隱里)로 표기돼 있다.

은이가 한국 천주교회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810년부터다. 북경 밀사로 활동하던 이여진(요한)이 은이에 살았다. 또 1824년 이전 이미 은이 교우촌이 형성돼 있었다. 현석문(가롤로) 성인은 해마다 가을이면 은이로 와서 몇 달간 머물면서 교우들을 가르쳤다. 1830년대 은이 교우촌은 지역 신앙 공동체의 중심지였다.

은이는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주요 사목 거점이었다. 김대건 신부는 1836년 4~7월 어느 날 은이에서 모방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고 신학생 후보로 선발됐다. 김대건 신부의 세례 장소에 대해서도 학자 간의 이견이 있다. 「일성록」 1839년 8월 7일 김제준 공초와 「추안급국안」 1839년 8월 13일 김제준 공초에는 김대건 신부가 은이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통설과 달리, 용인 굴암의 자기 집에서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나온다.

김제준은 서울 청파에 살다가 용인 땅으로 이주했고, 1년에 몇 차례 서울의 정하상 집을 왕래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정하상 성인으로부터 서양 신부가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와 모방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았다. 이후 모방 신부가 용인 지역 사목을 왔을 때 자신의 집을 방문해 아들 김대건에게 세례를 주고 신학생 후보로 뽑았다고 진술했다. 제2대 조선대목구장 성 앵베르 주교도 1839년 1월 은이공소(교우촌)를 사목 방문해 1819년께 충청도 덕산에서 이주해와 살고 있던 한이형(라우렌시오) 성인을 공소 회장으로 임명하고 교우촌을 관리하게 했다.
2016년 복원된 김가항성당.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한국인 첫 신부가 됐다.
은이 김가항성당 내부. 2001년 도시 개발로 철거된 김가항성당 자재 일부를 이용해 실측 그대로 복원했다.

사제품 받은 상해 김가항성당 옮겨와 복원

은이는 김대건 신부의 사목지였다. 김대건 신부는 귀국 후 페레올 주교와 함께 한양을 중심으로 사목했고, 용인 일대를 방문해 교우들에게 성사를 줬다. “1845년 말 김대건 신부가 은이 상뜸이로 내려와 1846년 부활절 전까지 주변 지역 공소를 방문하고 성사를 집전했는데, 이때 방문한 공소는 양지 터골·응다라니·용인 굴암이다”(「수원교구사」 1권 93쪽)

수원교구는 2013년 옛 은이공소 터를 매입해 본격적으로 성지로 조성했다. 그리고 2016년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을 복원해 그해 9월 성전 봉헌식을 했다. 김대건 신부가 신학생으로 선발된 장소에 그가 사제품을 받았던 성당을 옮겨와 복원한 것이다.

2001년 도시 개발로 철거된 김가항성당을 실측 그대로 복원한 이 성당은 건축면적 540㎡, 지상 1층 규모로 250여 명이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복원된 성당 기둥과 들보, 동자기둥 중 일부는 김가항성당 철거 당시 수습한 기둥을 가져와 재활용했다. 성당 옆 ‘김대건 신부 기념관’도 마련돼 있다.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는 성인의 삶과 영성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출생과 어린 시절(1821~1836년) △유학과 사제서품(1836~1845년) △귀국 후 사목 활동과 순교(1845~1846년) △시복 시성(1846~1984년) 등 네 패널로 전시 공간이 구성돼 있다. 또 김대건 신부의 친필 서한과 박해 시대 유물, 김가항성당 설계도면, 김대건 신부를 주제로 한 성상과 성화 등이 전시돼 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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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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