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에서 ‘자비’는 매우 신학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다. 라틴어로는 ‘Misericordia’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매우 아름다운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Miseri’는 ‘비참한·가난한·고통받는 이’를 말하며, ‘cor/cordis’는 ‘마음·심장’을 의미한다.
가톨릭에서의 자비는 비참한 이에게 마음이 움직인, 즉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단순하게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구약에서 자비는 히브리어로 ‘라하임(????????)’과 ‘헤세드(?????)’가 결합된 말로, ‘라하임’은 어머니의 뱃속, 즉 자식을 향한 본능적이고 깊은 연민을, ‘헤세드’는 끝까지 버리지 않는 사랑을 뜻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의 ‘자비’는 죄의 비참함 속에 있는 인간을 보고 하느님의 마음이 움직여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사랑이다. 우리가 회개하면 용서해주시고 믿으면 구원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은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폴란드의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신심이 깊었다. 19세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받는 환시를 체험한 뒤 수도 생활을 결심했다. 1925년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해 ‘성체의 마리아 파우스티나’라는 수도명을 받고 첫 서원을 했고, 1931년 예수님이 흰 옷을 입고 가슴에서 붉은색과 흰색의 두 빛줄기를 발하는 환시를 체험했다. 주님은 성심 공경과 자비 신심을 세상에 전하라고 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체험을 ‘내 영혼 안에 계신 하느님의 자비(Divine Mercy in My Soul)’라는 일기로 기록했다. 이 일기에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 인간의 신뢰, 자비 실천의 중요성이 담겨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녀의 시성식에서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제정했으며, 성인이 안치된 크라쿠프의 하느님 자비 성지는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크라쿠프에서 유학했을 때 학교 옆에 위치한 이 성지에 자주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쿠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받지 않은 몇몇 도시 중 하나로, 유다인 게토, 바벨 대성당 등이 있다.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바이올린 콩쿠르로 유명한 비에니아프스키(Henryk Wieniawski)는 폴란드 민속 선율과 화려한 바이올린 기교로 유명한 ‘크라쿠프의 추억(Souvenir de Cracovie, Op. 6)’을 작곡하였다. 19세기 크라쿠프의 살롱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발랄하고 품위 있는 음악이다.
//youtu.be/lFX_EQic6kA?si=MIDvG1nL_wW37lj7
쇼팽의 제자인 카롤 미쿨리(Karol Mikuli)는 폴란드의 민속 선율과 춤곡을 클래식 음악으로 한 차원 더 승화했다고 평가받는다. 쇼팽의 교습 방법을 전통으로 계승한 첫 번째 주자이기도 하다. 폴란드 쇼팽 콩쿠르의 심사 기준을 이들 학파에서 정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가 작곡한 장중하면서도 힘찬 ‘크라쿠프의 찬가’를 들어보자.
//youtu.be/aDDbC_2sDxI?si=eM5uTUvTd4nu3wrZ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