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신문에 ‘신앙단상’이 실리면 대모님께 온라인 링크를 보내드린다. “감동으로 읽고 있어요. 신문 나오면 또 보내줘요.”
바로 읽고 답을 보내주신다. 대녀의 글이므로 따뜻하게 읽어주시는 것이다. 신앙의 후견인으로서. 내가 견진성사를 받기로 했을 때 누구에게 대모가 되어달라고 부탁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 역할을 이미 해주고 계신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아동문학인인 선배님을 안 지는 몇 십 년 된다. 그런데 진면목을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선배님 계신 동네 가까이 이사하게 되면서다. 댁으로 초대하여 밥상을 차려주신 것을 시작으로, 텃밭에서 갓 수확한 채소를 수시로 나눠주셨다. 그때마다 김치며 밑반찬도 챙겨 주어 늘 가슴 뭉클했다.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음식을 싸주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보니 선배님은 신앙생활도 남달랐다. 틈만 나면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물론, 여행을 갈 때마다 성지에서 묵주 팔찌를 사와 만나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선물했다. 받았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본인은 준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묵주 팔찌뿐 아니라 묵주 반지와 십자고상까지 선물 받았다. 주신 성물을 지니고 다니며 자연스레 기도를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되었다. 견진성사 때 대모님이 되어 주십사 청하자, 선배님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기꺼이 응낙하셨다.
“어려운 일이지만, 안나씨 부탁이니 그렇게 할게요.”
문단 선후배이자 동네 이웃으로도 좋지만, 신앙 안에서 대모와 대녀로 맺어지니 더욱 소중한 관계가 되었다. 신앙인에게 기도만큼 고마운 선물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서로를 영적으로 후원하고 지지해주는 대부모·자녀 제도가 새삼 감사하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작년에 친구를 만났을 때였다. 식사 전후에 성호를 긋자 개신교인인 친구가 말하길 교회 목사님이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했다는 거였다. ‘가지가 뿌리를 나무라는 격이네’라고 생각하며 이유를 물어보았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성모 마리아를 우상화한다고 했다. 신으로 우상화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어머니이자 인류 구원의 협력자로서 공경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종교 이야기를 이어가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은 이러하다. ‘성모님과 천국의 뒷문’이라는 유머가 있다. 베드로 성인이 천국의 앞문을 철통같이 지키는데, 성모님이 죄인들을 자꾸 뒷문으로 들여보내신다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헤아릴 때마다 눈물이 난다. 한 인간으로서, 또 어머니로서 지극한 자비와 연민으로 우리의 변호인이 되어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라는 기도문처럼 머리이신 주님을 중심으로 모든 이가 서로의 구원에 기여할 수 있다는 교리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성인 성녀들 또한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친구들이다. 나는 가톨릭교회의 다양하고 풍성한 영적 후원자들과 열린 구원의 가능성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