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자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의 시복을 위한 교황청 시성부의 기적 심사가 최근 첫 관문을 통과하며, 최양업 신부의 시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최 신부의 영성과 삶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원주교구가 제작해온 새 초상화도 곧 공식 봉헌되며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최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한 한국 교회·원주교구의 노력과 초상화 제작 과정을 살펴봤다.
가경자 선포 10주년, 한마음으로 바쳐온 시복을 위한 기도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이자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가경자 최양업 신부. 그는 성 김대건 신부와 함께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849년 사제품을 받았다. 귀국 후 12년간 전국 팔도 험준한 산간 교우촌을 찾아 매년 7000리(약 2800㎞) 이상을 걸어 다니며 성사를 집전했다. 그리고 1861년 과로와 장티푸스가 겹쳐 길 위에서 선종하기까지 오로지 양 떼를 위해 헌신했다.
올해로 최양업 신부가 2016년 4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된 지 꼭 10주년이 됐다. 가경자는 교회가 공경할 만한 덕행을 갖춘 이에게 공식 부여하는 칭호다. 그의 거룩한 삶을 기리는 절차는 2001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시복시성 추진을 결정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한국 교회는 철저한 현장 조사와 자료 수집을 거쳐 2009년 교황청 시성성(현 시성부)에 성덕과 평판에 관한 최종 문서를 제출했고, 2016년 3월 성덕·평판에 관한 심사가 통과됐다는 교령이 발표되면서 가경자로 선포됐다.
이후 한국 교회는 지난 10년간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바라며 전국 교구민이 한마음으로 기도를 바쳐왔다. 특히 2021년 최양업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희망의 순례’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운동을 전국 교구에서 활성화시킨 1등 공신이다. 순례자들은 전국 30곳에 달하는 최양업 신부 관련 성지를 순례하며 전구를 청했다. 거동이 불편해 순례에 참여할 수 없는 이들 역시 3650㎞의 순례길을 묵주기도 3650단으로 대신하며 마음을 보태고 있다. 희망의 순례 완주자만 2300여 명에 달한다.
시복운동 새 기점 될 ‘실제 얼굴’ 초상화
원주교구는 최양업 신부의 사제품 177주년을 맞는 15일 새로운 초상화를 공개하는 봉헌식을 거행한다. 이미 최양업 신부의 초상화가 존재하지만 그의 실제 얼굴이 그려진 새 초상화를 보며 시복을 위한 전국 교구민의 기도를 더욱 봉헌하고자 함이다. 새 초상화 제작은 최 신부의 사제로서 면모를 더욱 부각하는 초상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최 신부 초상화 제작 작업을 총괄해온 신우식(원주교구 배론 주교대리 겸 문화영성연구소 소장) 신부는 “최 신부님의 초상·동상이 여럿 존재하지만, 신부님 영성과 삶을 충분히 드러내기엔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특히 신부님 서한이나 구전을 들어보면 신부님은 양 떼를 위하는 매우 사목적인 분이셨음을 알 수 있는데, 기존 초상화에서는 영대를 하지 않고 있거나 양반집 대감과 같은 복장을 하고 계셔서 이번에 사제로서 모습을 잘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2019년 6월 11일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 묘소에서 인부들이 묘소 개장 작업을 하고 있다. 원주교구 제공
최양업 신부 개장 작업을 통해 드러난 최 신부의 유해. 유해 위로 ‘學生慶州崔公之柩’(학생경주최공지구)라 적힌 명정이 보인다. 원주교구 제공
최 신부의 실제 얼굴은 2019년 6월 11일 ''가경자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 유해의 진정성’ 조사를 위해 배론성지에 있는 최양업 신부 묘소 개장 작업을 통해 알아냈다. 개묘 당시 원주교구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 응용해부연구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중앙법의학센터와 공동연구를 진행해 실제 유해를 바탕으로 전신과 얼굴에 대한 정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와 함께 ‘學生慶州崔公之柩’(학생경주최공지구)라는 명정과 삭은 녹색 제의, 영대·수대·띠 등의 유물도 확인했다. 원주교구는 2019년 6월 17~21일 최 신부의 유해를 다시 배론성지 무덤에 모시는 예식을 거행했고, 모든 조사 결과를 종합해 2023년 3월 교구장 조규만 주교가 유해의 진정성에 대한 교령을 발표했다.
최양업 신부의 실제 얼굴이 표현된 초상화 작업은 현실주의 회화 기법의 권위자인 김세중(빈첸시오) 작가가 맡았다. 신 신부는 “초상화에는 신부님의 실제 모습을 담을 예정이었기에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주실 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구축된 정보들을 활용해 6개월여 작업을 거쳐 최양업 신부 모습과 매우 흡사한 흉상 초상화를 완성했다. 초상화 곳곳에는 ‘사제’ 최양업의 면모를 담기 위한 노력이 가득하다. 초상화 속 최양업 신부는 묘소 개장 당시 발견된 녹색 영대를 두르고 있다. 앞에는 그가 신자들을 위해 쓴 「천주가사」 위에 걸을 때마다 묵주 기도를 했다는 구전에 따라 묵주를 올렸다. 배경에는 박해 시대 밤길을 걸어 새벽녘 공소 신자들에게 도착했을 때를 재현한 ‘여명의 배론’이 그려졌다. 그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신자들을 축복하고 있다.
새 초상화는 원주교구의 공식 표준 영정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타 교구와 수도회 역시 필요할 경우 사목적 목적으로 공유할 계획이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신우식 신부 배론 주교대리 겸 문화영성연구소 소장
“새 초상화, 최양업 신부의 성덕 본받는 계기가 되길”
“최양업 신부님께서는 생전 서한에서 ‘하느님은 우리의 위로시요, 우리의 희망이시며, 우리의 원의이시니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죽습니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새 초상화가 원주교구가 소장하고 있는 두 점의 초상화와 함께, 최 신부님의 성덕과 그분 신앙을 본받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최 신부의 첫 기적 심사가 통과된 기쁨이 막 전해진 지난 1일. 원주교구 배론성지 문화영성연구소에서 만난 신우식(배론 주교대리 겸 문화영성연구소 소장) 신부는 “성주간의 시작에 더해 연이어 기쁜 소식이 찾아와 무척 반갑다”고 했다. 여기에 신 신부가 제작 전반을 담당하며 준비해온 새 초상화 역시 작업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봉헌식을 눈앞에 둔 것이다. 신 신부는 “이 모든 것이 한국 교회 구성원 모두의 성원에 힘입은 결과”라고 말했다.
“주교회의에 근무할 당시, 최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수많은 노력과 땀이 있었음을 더 잘 체험했고, 주교님들께서도 최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간절히 원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알게 됐습니다. 시복을 향해 한 단계 더 진척된 상황에서 최 신부님의 실제 모습을 구현한 초상화를 봉헌하게 돼 매우 기쁩니다.”
어린 시절을 제천에서 보낸 신 신부는 “신학생 시절 방학이면 배론성지의 최양업 신부님 묘소를 찾아 제 성소를 지켜달라고 기도하곤 했다”며 “제 성소를 지켜주고 사제가 되게 해주신 분 또한 최양업 신부님이라 여긴다”고 전했다.
신 신부는 이번 초상화 제작에 있어 ‘양 냄새 나는 목자’로서 최양업 신부의 면모를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 교회 사제들의 모범으로 누구보다도 하느님 백성을 아꼈던 최 신부의 모습이 담기길 바란 것이다.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를 보면, 신부님은 참 따뜻한 분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어려움 속에 살아가는 신자들이 신부님을 찾을 때마다 언제나 반겨주시는 분으로 기억하길 바랍니다. 또 신부님의 손동작에서 드러나듯 하느님 축복을 전해주시는 분임을 떠올리게 하고 싶습니다.”
신 신부는 새 초상화가 시복을 향한 현양운동에 더욱 불을 붙이고, 하느님 백성을 위해 온 힘을 다한 그의 정신이 현대 신앙인들에게도 전해지길 기도했다.
“최양업 신부님의 전구를 청하는 많은 이가 초상화 앞에서 기도할 것입니다. 새 초상화를 봉헌하면서 신부님의 시복시성 운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모두가 희망의 순례자가 되어 그분의 신앙과 삶이 더욱 자리해 나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