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성탄 대축일 다음 날인 12월 26일은 ‘성 스테파노(+36년경) 첫 순교자 축일’이다. 그의 순교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의 증거와 순교를 통해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것으로 생각해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4세기 말부터, 서방교회에서는 5세기 초부터 주님 성탄 대축일 다음 날인 12월 26일을 축일로 기념하게 되었다.
아기 예수 탄생과, 첫 순교자 축일이 하루 차이인 것은 여러모로 의미를 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12월 26일 삼종기도 메시지에서 “성탄의 기쁨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신앙을 위해 처음으로 죽임을 당한 성인을 기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일 수 있다”며 “하지만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은 성탄의 진정한 의미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2022년에는 “성탄 팔일 축제는 순교 성인들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며 “순교자들은 예수와 가장 닮은 자들이며, 실제로 순교자는 ‘증인’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저서 「설교」 314장에서 “우리는 어제 주님의 탄생을 기념했고 오늘은 종의 탄생을 기념한다”며 “그리스도께서 스테파노에게서 태어나셨듯이, 스테파노는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고 말했다. 성 풀젠시오(467~533)도 “어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누더기에 싸여 계셨지만, 오늘 성 스테파노는 그분에 의해 영생의 옷을 입었다”며 “어제 아기 그리스도는 좁은 구유에 모셔져 있었지만, 오늘 스테파노는 하늘의 드넓은 공간에서 승리롭게 맞이했다”고 칭송했다. 이어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게 한 사랑이 스테파노를 땅에서 하늘로 올렸다”고 전했다.
성 스테파노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뽑은 일곱 봉사자 중 한 명으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사도 6,5)이었다. 성인은 성경에 순교 장면이 가장 먼저, 자세하게 기록된 사람이다. 특히 박해자들에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예수님께 그들에 대한 용서를 청하며 원수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사도 7,54-60 참조) 성 스테파노에 대한 공경은 전통 속에서 이어져 내려와 자연스럽게 성인 추대까지 연결됐다.
넓은 의미의 ‘순교’는 구약의 마카베오 형제들과 같은 인물들을 포함할 수 있지만,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는 성인이 처음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73항에서는 순교에 대해 “순교란 죽음에까지 이르는 증거를 가리킨다. 순교자는 자신과 사랑으로 결합된 그리스도,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한다”고 정의한다.
415년 8월 3일 예루살렘 근처 카파르 가말라에서 성인의 유해가 발견된 것을 기념해, 서방교회는 9세기경부터 1955년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제외될 때까지 8월 3일을 ‘성 스테파노의 유해 발견 축일’로 기념했다.
스테파노는 돌에 맞아 순교했다는 이유로 벽돌공 또는 석공의 수호성인 되었고, 지혜와 유창한 언변으로 학생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로마의 성 라우렌시오(Laurentius, 8월 10일)와 함께 부제들의 주보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