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호주를 뒤덮었던 시드니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WYD)는 한 주간의 축제로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제가 됐고, 누군가는 교회 안의 핵심 실무자가 됐으며, 또 누군가는 본당과 사회복지 현장에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사회복지사가 됐다. 시드니 세계청년대회가 남긴 가장 깊은 열매는 결국 ‘사람’이었다.
당시 순례자와 자원봉사자, 본당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던 청년들은 이제 호주 교회의 허리를 이루는 세대로 성장했다. 시드니 WYD는 청년들을 교회 안의 ‘손님’이 아니라 ‘주체’로 세웠고, 그 안에서 자란 이들은 오늘날 하나의 ‘WYD 세대’를 이루고 있었다.
시드니대교구의 사무처장 모니카 두밋씨가 2025년 12월 5일 교구청에서 2008 시드니 WYD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있다.
“그때가 아닌, 지금을 위한 여정이었다”
올해 초 시드니대교구 사무처장으로 임명된 모니카 두밋(44)씨는 ‘WYD 세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당시 그녀는 본당과 지구를 담당한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변호사로 일하던 두밋씨는 “어쩌면 WYD에 참가하는 무료 티켓을 얻을 방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자원봉사를 신청했다”고 회상했다. 그 가벼운 시작이 자신의 삶을 바꿔놓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그가 기억하는 시드니 WYD는 2008년 7월 본대회보다 훨씬 앞서 시작됐다. WYD를 앞두고 각 본당은 자원봉사자 한 명을 ‘WYD 코디네이터’로 세웠고, 이들은 지구 단위로 모여 함께 준비했다. 단순히 행사를 준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청년대회가 지역 본당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했다.
본당 코디네이터들은 약 15주 동안 리더십과 신앙교육을 함께 받았고, 그 과정에는 성체조배도 포함됐다. 두밋씨는 “우리는 물류만 준비한 것이 아니라 신앙 면에서도 양성됐다”고 말했다. 등록과 안내, 홈스테이 등 현실적인 준비도 적지 않았지만, WYD가 끝난 뒤에도 본당 안에 청년들의 존재감과 참여가 계속 남도록 하는 것이 더 큰 목표였다.
그 분위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장면은 본대회 1년 전 진행된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순례’였다. 본당마다 하루씩 맡아 WYD 상징물을 맞이했다. 두밋씨는 당시 새벽 미사를 준비하며 ‘100명 정도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에는 수백 명이 몰려왔다. 어떤 본당에서는 준비했던 프로그램을 다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다. 두밋씨는 “사람들이 얼마나 신앙을 갈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며 “WYD를 향한 여정과 대회 자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일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본대회까지 1년이나 남아 있었지만, 호주 교회 안에서는 이미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WYD는 본대회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열기가 아니라, 그 전부터 청년들을 모으고 리더로 세우며 기대를 쌓아올린 긴 형성의 시간이 있었다.
두밋씨(가운데)가 시드니 WYD에서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그가 당시 함께 준비했던 이들은 지금 교회 안의 여러 사목 현장에서 각자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두밋씨 역시 변호사의 길을 걷다 이후 교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됐다. 그는 기업 변호사로 일하던 중 시드니대교구의 제안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교회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두밋씨는 WYD 때 함께했던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하며 고민을 이어갔다. 결국 그녀는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했고, 직장을 관둔 뒤 2014년부터 교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 그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장 아름다운 점 하나는,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아주 친한 친구이고, 서로를 지지하고,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성장하도록 서로 돕고 있다는 겁니다.”
두밋씨는 WYD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저는 하느님께서 그때 우리를 모아주신 게 ‘그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금’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해요. 성인이 되어 교회에서 해야 할 사명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켜 주신 거죠.”
그는 세계청년대회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교회를 이끌 한 세대를 형성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시드니 WYD는 한 번의 행사가 아니라, 호주 교회를 이끌 ‘WYD 세대’를 길러낸 시간이었다. 한때 청년 순례자였던 이들은 이제 사제와 수도자, 청년 리더가 돼 다음 세대를 이끌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 선교 수도회 마이클 라스트 신부가 시드니대교구 세인트 데클란 성당에서 2008 시드니 WYD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있다.
플루트 연주자에서 사제로
2008 시드니 WYD에서 심어진 성소의 씨앗은 17년 뒤 한 사제의 삶으로 열매를 맺었다. 2025년 12월 4일 cpbc와 만난 마이클 라스트 신부는 시드니 WYD를 자신의 성소 여정이 시작된 ‘첫 번째 디딤돌’로 기억했다. 지난해 사제품을 받은 그는 당시만 해도 클래식 음악가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그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음악대학 중 하나인 시드니 콘서바토리(Sydney Conservatorium of Music)에서 공부했다. 전문 클래식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던 그는 시드니 WYD 개막 미사 오케스트라에서 플루트를 연주할 기회를 얻었다. 공식 주제가 ‘Receive the Power’의 첫 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그는 신앙과 음악이 하나로 만나는 전율을 느꼈다. 세계청년대회는 그에게 자신의 재능이 교회 안에서 쓰일 수 있음을 처음으로 강렬하게 체험하게 한 자리였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이 속한 본당과 공동체를 넘어 보편 교회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음을 크게 깨달았다고 했다.
시드니 WYD 개막미사 오케스트라에 참여한 마이클 라스트 신부(왼쪽)와 연주자. 본인 제공
라스트 신부의 삶을 더 깊이 흔든 것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침묵의 순간이었다. 대회 파견 미사 전날, 랜드윅 경마장에서 열린 밤샘 기도 중 그는 우연히 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조용히 무릎을 꿇고 성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체조배가 무엇인지조차 잘 알지 못했지만, 그는 ‘저 성체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강한 확신을 느꼈다. 그는 “그 순간은 그야말로 ‘은총의 순간’이었다”고 했다.
이 경험은 한 번의 감동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08년 시드니를 시작으로 2011년 마드리드, 2013년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세 차례의 세계청년대회에 쭉 참여했다. 그는 이를 “세 개의 디딤돌”이라고 표현했다. 시드니 WYD가 교회에 대한 사랑과 소속감을 열어준 출발점이었다면, 이후의 대회들은 그 부르심을 더욱 또렷하게 해줬다. 마드리드 WYD는 그에게 특히 중요한 갈림길이었다. 대학을 막 마친 그는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마드리드 WYD에 갈 기회가 생기자, 하느님께서 자신을 그곳으로 부르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유학을 가려고 모아둔 돈으로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저는 그 여정 속에서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어디에 둘 것인지 처음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을 전공하던 시절 플루트를 연주하는 하느님의 사랑 선교 수도회 마이클 라스트 신부(왼쪽에서 세 번째). 본인 제공
그 물음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여러 해에 걸쳐 음악가의 길과 부르심 사이에서 깊이 고민했다. 호주 청소년 오케스트라 수석 플루트로 활동했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무대에도 섰다. 그러나 점차 더 큰 부르심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결국 그는 “음악만 붙들면 삶이 좁아질 것 같았고, 주님께로 방향을 돌리면 삶의 지평이 훨씬 넓어질 것 같았다”고 했다.
몇 년에 걸친 식별 끝에 그는 2015년 하느님의 사랑 선교 수도회(Missionaries of God’s Love, MGL)에 입회했고, 이듬해부터 봉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해 9월 5일 사제품을 받았다. 2008 시드니 WYD에서 시작된 성소의 씨앗이 17년에 걸친 여정을 거쳐 맺은 열매였다.
하느님의 사랑 선교 수도회 마이클 라스트 신부가 시드니대교구 세인트 데클란 성당에서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삶에서 음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성음악을 작곡하며 자신의 재능을 교회 안에서 펼치고 있다. “어떤 것도 헛되지 않았어요. 하느님께서는 아주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것을 제게 다시 돌려주셨어요. 2008년 이후 우리는 여전히 그 은총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WYD 체험, 신앙 지탱하는 단단한 주춧돌로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한 WYD
대회 후 본당·WYD·교황청으로 활동 확대
소외된 이웃과 청년 돌보는 사회복지사로
WYD로 보편 교회 안에서의 일치 경험
식사 배급 등 봉사 참여하며 겸손 배워
청년성가대 이끌며 현재도 봉사 이어가
브로큰베이교구 산하 사회복지기관 ‘가톨릭케어’에서 근무하는 애슐리 도넬리씨가 2025년 12월 8일 교구청에서 2008 시드니 WYD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있다.
작은 본당의 소녀, 세계 교회를 만나다
애슐리 도넬리(34)씨에게 2008 시드니 WYD는 신앙의 불씨가 본격적으로 타오른 출발점이었다. 2025년 12월 8일 cpbc와 만난 도넬리씨는 시드니 WYD를 ‘촛불의 바다’로 기억했다.
교회 청소년 사목을 위해 일하던 신앙심 깊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청년이 많지 않던 본당에서 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붙드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러다 본대회를 앞두고 본당에 머문 해외 순례자들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행복할까? 무엇이 저들을 그토록 기쁘게 할까?’
그 질문은 도넬리씨의 신앙 여정을 여는 계기가 됐다. 그는 “그때부터 신앙생활은 그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정말 참여하고 싶은 일’이 됐다”고 했다. 랜드윅 경마장에서 촛불을 들고 밤을 지새우던 수십만 청년들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고 했다. 그는 “교황님이 청년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중요한 존재임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애슐리 도넬리씨(오른쪽)가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에서 소그룹 리더로 참여했을 당시 모습. 본인 제공
애슐리 도넬리씨가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에서 소그룹 리더로 참여했을 당시 모습. 본인 제공
시드니 WYD 이후 도넬리씨는 본당에서 청소년 지도자로 활동했고, 2016년 크라쿠프 WYD 때에는 소그룹 리더로 참여했다. 이후 교황청이 각 교구에 청년 자문위원 추천을 요청하면서 그의 활동은 더 넓은 무대로 이어졌다. 도넬리씨는 20명 중 한 명으로 선발돼 교황청 국제청년자문기구(International Youth Advisory Body, IYAB) 1기 멤버로 활동했다. 2018년 청년 시노드 준비 과정에도 함께하며 청년들의 목소리를 교회 안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위탁가정 청소년들과 함께 일하던 그에게 IYAB 활동은 남다른 의미였다. 그는 ‘청년들은 교회의 미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회의 현재’라고 강조했다. 교회에 나오는 청년뿐 아니라 나오지 않는 청년들의 목소리도 모두 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청년들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애슐리 도넬리씨가 2025년 12월 8일 브로큰베이교구 산하 사회복지기관 ‘가톨릭케어’에서 일하고 있다.
시드니 WYD에 참여한 경험은 결국 그의 삶의 방향도 바꿔놓았다. 그는 “예수님은 주변부 사람들과 함께하셨고, 저도 그 길을 따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브로큰베이교구 산하 사회복지기관 ‘가톨릭케어’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소외된 이웃과 청년들을 돌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안 에폰듈런씨가 2025년 12월 7일 호주 시드니 켈리빌에 있는 묵주기도의 성모 성당에서 2008 시드니 세계청년대회를 회상하고 있다.
식판 들고 시작한 봉사, 신앙의 뿌리가 되다
2008 시드니 WYD 당시 대학 1학년이던 이안 에폰듈런(36)씨에게 세계청년대회는 ‘무대 위’보다 ‘무대 뒤’의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다. 2025년 12월 7일 cpbc와 만난 그는 당시 자원봉사자로 WYD에 참여한 자신을 소개하며 시드니 WYD가 자신의 신앙을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낮에는 대학 강의를 듣고, 수업이 끝나면 순례자들이 모여 있던 시드니 달링하버로 향했다. 지금의 국제컨벤션센터(ICC) 일대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식사를 데워 나눠주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그의 역할은 식사 배급에만 그치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들은 무대 뒤에서 연사와 공연자의 동선을 돕고, 랜드윅 경마장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이동과 안전을 지원하는 일도 맡았다. 밤샘 기도가 이어지던 현장에서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자리를 잡고 미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자원봉사자들의 몫이었다.
이안 에폰듈런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속한 파라마타교구 필리핀 공동체 청년성가대가 미사 중 성가를 부르고 있다.
에폰듈런씨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참 겸손해지는 경험을 했다”며 “수많은 청년이 함께 모여 기뻐하고 교회에 더 깊이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세계청년대회가 내가 신앙 안에 머물도록 도와준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독일에서 온 한 자원봉사자를 만났다. 독일어·영어·포르투갈어·스페인어를 구사하던 그는 순례자들과 각자의 언어로 소통했다. 에폰듈런씨는 그 모습을 보며 “이것이 바로 보편 교회구나”라고 느꼈다고 했다. 어떤 언어를 쓰든, 모두가 성체성사 안에서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이후 10년 넘게 펜팔로 연락을 이어오며 신앙 안에서 함께 성장해왔다.
에폰듈런씨는 “WYD 참여의 경험은 대학 진학 후에도 신앙을 붙들게 해줬다”고 했다. 그는 “많은 젊은이가 대학에 가면서 신앙을 잃기도 하지만, 저는 오히려 더 깊이 뿌리 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이안 에폰듈런씨가 속한 파라마타교구 필리핀 공동체 청년성가대가 미사 중 성가를 부르고 있다.
현재 그는 파라마타교구 필리핀 공동체에서 청년성가대를 이끌며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정확히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봉사자로서 그저 ‘네’라고 답했을 뿐이었다”며 “그 경험은 지금도 내가 교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큰 축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2008년 7월 20일 호주 시드니 랜드윅 경마장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 주례로 열린 세계청년대회 파견미사에 앞서 순례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OSV
20년 뒤, 그들은 말할 것이다
2008 시드니 WYD은 끝났지만, 그 시간을 함께했던 청년들의 신앙의 끈은 더 단단해졌다. 그들은 사제·수도자가 됐고, 본당에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지도자가 됐다. 복지 현장에서 소외된 이웃 곁에 선 이도 있고, 성가대에서 묵묵히 봉사를 이어가는 이도 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그러나 같은 뿌리에서 자라났다. 세계청년대회가 만든 것은 한 번의 감동이 아니라, 한 세대였다.
2027년 7~8월, 한국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열린다. 새로운 청년들이 그 현장에 모일 것이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음식을 나르고, 누군가는 마이크를 잡고, 누군가는 도로를 안내하며, 또 누군가는 밤새 촛불을 들 것이다. 그리고 20년 뒤 그들 중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때 우리를 모아주신 건 지금을 위해서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