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대전의 한 생산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1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쳤다. 공교롭게도 본인은 2년 전까지 5년 동안 외부 전문가로서 그 업체 노동자들의 건강관리 업무를 했다. 금속을 가공하는 작업의 특성상 절삭유 등 여러 유해 물질이 사용되고 청력을 손상시킬 수 있는 수준의 소음이 상시로 발생하며, 뇌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교대 근무가 이뤄지는 곳이었다
비슷한 업체는 많지만 위 업체는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공기 중에 유증기가 가득하고, 사방에 묻은 기름 때문에 난간을 붙들지 않고선 걷는 게 위험할 정도로 미끄러웠으며 바닥 곳곳에는 그때그때 기름을 닦아낸 폐헝겊들이 쌓여있었다. 고위험 업종이기 때문에 노동청과 소방청이 다른 업종에 비해 더 자주 현장을 방문해 점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5년 동안 작업환경은 변함이 없었다. 화재 속보를 맞닥뜨렸을 때 놀라기보다는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싶었다.
이후 며칠간 참사를 다룬 뉴스를 통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할 책임이 있는 임원들의 허울뿐인 사과, 담당 노동 관계부처의 침묵, 책임을 회피하던 소방 관계자의 인터뷰 등을 보며 분노하는 동시에 자책감에 시달렸다. “그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던 당신은 참사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지만, 양심이 내게 묻고 있었다. 유증기와 각종 분진 등으로부터 노동자의 호흡기를 보호하는 마스크와 소음으로부터 청력을 보호하는 귀마개를 착용하도록 지도하고 교대 근무로 몸이 상하지 않도록 건강검진 결과를 상세히 설명하며 질환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진료와 교육에 나름대로 정성을 다했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화재 위험은 따로 위촉된 안전관리 전문가가 담당할 사안이라 생각하여 개입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명이 있어야 건강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바, 업무의 경계를 넘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책감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35년 전인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은 회칙 「새로운 사태」를 통해 노동자들을 이윤 추구를 위한 물건처럼 다루는 것은 부당하며, 부적절한 작업 환경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건강이 위협받는다면 법이 힘과 권위로써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요청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도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자들이 일하다 병들거나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 법은 사용자와 국가에 그 책임을 지우고 있으나 현실에서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이번 참사이고, 이전에도 유사한 참사는 많았다. 앞의 법 제52조 제1항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작업중지권’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이 권리를 행사하여 본인의 생명을 지키라는 것은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문화를 간과한 것이며, 위험한데 왜 계속 일했느냐며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하다가 죽는 사람이 없게 할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확실히 책임을 묻는 것이 유일하게 효과적이라는 것이 영국 등의 사례로 증명되었다. 향을 피우고 곡을 할 게 아니라 사업주부터 공무원까지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정확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고인의 명복을 비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