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일본군 ‘위안부’ 피해 다룬 장편소설 「간단후쿠」
피해자들 영혼 안식 빌며 집필?타인 아픔 기록하며 치유 얻어
소녀들이 기억하는 옷은 ‘원피스’가 아니었다. 일상의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그 장소와 시간을 불러오는 말, ‘간단후쿠(かんたんふく).’
김숨(모닌느·서울대교구 흑석동본당) 작가는 한 피해자의 증언에서 건져 올린 이 단어를 제목 삼아, 10년 넘게 가슴에 쌓아온 애도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 소설 「간단후쿠」가 제29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산문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수상 소식이 부활 축제에 전해진 선물 같았다”는 그는 “상을 받으면 들뜸도 가라앉혀야 하고, 함께 따라오는 기대와 부담도 있는데, 이번에는 신앙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지, ‘감사하게 받으면 되는 상’이라는 편한 마음이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상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가 또 있다. 그의 위안부 서사는 「한 명」(2016)을 시작으로 길원옥·김복동 할머니의 증언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2018) 그리고 「듣기 시간」(2021)까지 이어진 긴 여정 위에 서 있다.
「간단후쿠」는 시간 순서로 보면 이 연작 중 맨 앞에 놓여야 할 소설이지만, 가장 나중에 쓰인 작품이다. “이전 소설들을 충분히 체화되지 않은 채 썼다는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뒤를 돌아봤는데, 「간단후쿠」는 ‘이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작품입니다.” 그 말처럼, 소설은 오랜 시간 위안부 문제에 천착해 온 작업의 한고비이자 결산이다.
‘간단한 옷’이라는 뜻의 일본어 간단후쿠는 일본군 위안소 여성들이 입던 원피스형 간편복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원피스’를 제목으로 놓고 퇴고해 나가다가, 한 할머니의 증언에서 이 단어를 만났다. 그는 “너무 강렬했고, 소녀들이 기억하는 그 옷은 원피스가 아니라 간단후쿠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제목에 남겼다”고 전했다.
소설은 위안소 안의 성폭력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노골적 묘사 대신, 시에 가까운 절제와 여백을 택한다. “위안소에서의 경험은 몸에 가해진 경험인데, 그것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 김 작가는 “적나라한 게 정확한 건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타인의 몸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욕망이며, 오히려 시적인 상상력과 과감한 생략,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글쓰기로 더 근원적인 ‘정확함’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시 습작부터 시작했던 그에게 그런 글쓰기는 계획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방식이기도 하다.
“증언을 읽고 쓰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애도의 행위와 겹쳤다”는 김 작가. “누군가를 애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빌어주는 행위이며, 기도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애도는 과거를 향한 것만이 아니다. “지금도 전쟁이 계속 벌어지고 있고, 다른 피부색, 다른 세대의 같은 피해자가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를 뿐이지요.”
그의 작품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위안부를 비롯한 1930년대 디아스포라의 삶, 일본 오키나와에서의 조선인 등 ‘뿌리 뽑힌 이들’을 향한 시선이 일관되게 흐른다. 지금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뿌리 뽑힌 이들인 이주노동자들이 그 자리에 있다.
가장 최근에 그가 만난 이는 미얀마 출신 노동자다. 신혼 6개월을 보내고 한국에 온 뒤 7년 넘게 아내와 떨어져 지내고 있다. 미얀마는 내전 중이고 친척 집도 불탔다. “사람들은 그분을 갈색 피부의 외국인 노동자로만 알지만, 저는 만나면서 그분의 영혼이 우리보다 더 선하고 자비롭다는 것을 봅니다. 그 순간 치유가 돼요.” 아픈 이야기를 들으러 가지만 정작 그분들이 자신을 치유해 주기에 이 작업을 계속해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작가는 10여 년 전 세례를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유도 모른 채 성경 말씀을 좋아했고, 온 가족이 주일에 교회를 찾는 모습이 부러웠다는 그는 이후 직장에서 점심 먹을 때 성호경을 긋는 동료를 만났다. 그 자연스러운 기도 장면에 이끌리다 결국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을 찾아 세례를 받았다. 그는 ‘삶에서 정말 잘한 일’로 영세한 것을 꼽는다.
신앙은 그의 일상과 글쓰기를 조용히 받쳐준다. 이주노동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어 다행이라 느끼고, 길원옥 할머니의 부고를 주일 저녁 미사 자리에서 전해 들으며 기도드릴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헨리 나우웬의 글을 즐겨 읽는다는 그는 “나는 사랑받는 자다”라는 문장이 인터뷰 순간 떠오른다고 했다. “성경과 신학자들의 통찰이 자신의 좁은 시야를 깊게 하고 확장시켜 준다”고도 말했다.
희년을 보내며 그는 “왜 나에게 소설 쓰는 삶이 주어졌을까”라는 오랜 물음표를 내려놓았다. “‘그냥 열심히 쓰겠습니다’ 하고 그 물음표를 버렸다”는 김 작가는 “갈수록 더 깊은 통찰이 묻어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밝혔다.
◆ 김숨 작가는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 연작 「한 명」,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듣기 시간」을 비롯해, 1930년대 디아스포라의 삶을 다룬 「떠도는 땅」, 일본 오키나와 조선인의 비극을 다룬 「오키나와 스파이」, 노동자의 삶을 그린 「철」, 「제비심장」 등을 펴냈다. 소설집으로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침대」가 있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수상작 「간단후쿠」
“나는 없애고 싶은 몸에 간단후쿠를 입힌다. 나는 없애고 싶은 몸에 햇볕을 쬐어 주고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쐬어 준다.”
장편소설 「간단후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기억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만주 위안소에 끌려간 15세 소녀의 ‘몸’을 서사의 중심에 놓으며, 말로 전하지 못한 고통까지 문학의 언어로 불러낸다.
만주 위안소 ‘스즈랑’에 붙들린 15세 소녀는 원래 이름 개나리 대신 요코로 불린다. 이곳에 온 지 2년, 소녀는 임신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뒤, 만삭이 되어 가는 봄, 여름, 가을의 시간을 따라간다.
이 소설은 「한 명」(2016)을 시작으로 김복동·길원옥 증언 소설 「듣기 시간」(2021)에 이르기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말과 침묵을 문학으로 꾸준히 기록해 온 작업에서 나왔다.
스즈랑에 붙들린 열 명의 소녀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땅에 편지를 쓰는 아이, 서로를 돌보며 버티는 아이, 죽음으로 저항하는 아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이들은 두려움에 떠는 피해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도, 간단후쿠라는 옷도 휩쓸어 가지 못한 저마다의 내면이 오히려 더 선명히 빛난다.
책의 모든 단어와 문장은 일제강점기 만주 위안소에 있는 15세 소녀의 말로 쓰였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금, 소수의 위안부 피해자가 남아 있는 지금, 「간단후쿠」에서 드러나는 고통의 현장은 우리가 약속한 ‘기억’과 ‘기억의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해도, 증언할 생존자가 남아 있지 않을 미래에도, 우리가 이 고통에 공감하는 일이 가능할지를 소설은 그저 묻는다.
◆ 「간단후쿠」 심사평
차마 말하기 어려운 고통을 서사화하는 김숨의 언어는 ‘간단후쿠’로 시작한다. “간단후쿠를 입고, 나는 간단후쿠가 된다.” 일본군 위안소 위안부들이 주로 입은 간단한 원피스식의 옷을 일컫는 이 단어는 김숨의 ?간단후쿠?에 이르러 그녀들의 몸에 덧씌워진 시대적 억압과 굴레의 상징이 되었다.
‘삿쿠’, ‘조센삐’ 등 소설 곳곳에서 실제 사용되던 은어들이 직접적으로 거론되고 그녀들을 단돈 몇 푼에 팔아넘긴 우리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적시되는 등 최근 다양한 방면에서 새롭게 부각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당대의 시대적 맥락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일인칭화자 ‘나’의 서술로 되살아나는 어린 소녀의 순정한 내면과 여성들 사이의 연대와 관계의 욕망 또한 섬세하고 아프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몸의 안과 밖을 파고드는 이중의 서사라고 할 만하다.
노래가 되어버린 소설, 그 리듬이 아니면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어떤 참혹한 이야기는 이리하여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던 조선 서발턴(Subaltern, 제국·식민지 사회에서 권력의 중심에서 사회적·정치적으로 배제되고 억압받는 하위 집단을 가리키는 개념)들의 상처받은 몸을 애도하는 대속의 언어가 되었다. 김숨이 긴 시간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번 반복하는 소설적 탐구의 본질이자 애도의 길 한복판에 놓여있는 ?간단후쿠?에 제29회 한국가톨릭문학상을 헌정한다.
신수정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