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긴 수명과 더 높은 지능을 가지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과 돌봄 로봇이 인간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는 가운데, 슈테판 캄포스키 교수(사진)는 “이러한 ‘개선’이 인간을 완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등이 공동 주최한 제22회 정기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한 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혼인과 가정 신학대학원의 캄포스키 교수는 1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인간 존엄의 큰 부분은 사고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학원에서 철학적 인간학을 가르치며, 인격성과 덕·기술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생명윤리 문제를 연구해온 그는 “인간은 사고를 통해 자신을 넘어 의미를 묻고, 하느님과 타인, 세계와 관계 맺는 존재”라며 인간다움의 핵심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존재’에서 찾았다.
캄포스키 교수는 “인공지능은 본래 의미에서의 ‘지능’이 아니며, 이를 인간 지능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는 ‘끔찍한 환원’”이라며 “AI가 생성하는 언어는 문법 규칙에 따른 정교한 구문에 불과하지, AI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AI는 인간의 입력에 응답해 결과를 산출할 뿐이며, 그 의미를 성찰하는 일은 인간 고유의 몫이라는 것이다.
캄포스키 교수는 “더 강한 신체, 더 높은 지능, 더 긴 수명은 인간 삶의 일부를 향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좋은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 인간 가치를 기술적인 능력의 향상으로만 판단하는 시각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타인에게 잔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병약하고 짧은 생을 살았지만 덕을 실천하며 타인의 모범이 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어 프랑스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를 언급하면서 “진정으로 인간을 ‘넘어서는’ 것은 기술적 개선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덕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캄포스키 교수는 이러한 논의를 인간의 ‘유한성’ 문제로 확장했다. 그는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죽음을 인식하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묻고, 선한 삶을 추구하며, 삶을 ‘주어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기술이 이러한 한계와 죽음을 극복하려 할 때, 오히려 인간다움의 기반이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기술의 발전 속에서 돌봄 영역을 로봇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기계는 공감할 수 없으며, 오직 생명만이 생명을 이해할 수 있다”며 “이러한 기술이 오히려 외로움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계는 혈압을 재고 약 복용 시간을 알릴 수는 있지만, 인간의 손길과 미소, 말 한마디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돌봄을 기계의 돌봄으로 대체할 때 인간성 일부를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캄포스키 교수는 “사고하고, 관계 맺고, 돌보는 능력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특성”이라며 “이를 기술에 위임하는 순간 인간다움은 점차 약화할 수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