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초골공소 앞에 나란히 앉은 송영오 신부와 관리장 이건환씨. 이로써 이민식의 7대손인 이건환씨는 180년째 사제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한동안 냉담하다 신부 한마디에 고초골공소 관리장 맡아
집안서 보관해온 선조 초상화 경당 제대 뒤에 함께 자리
‘왕과 사는 남자’가 아니라 ‘신부와 사는 남자’다. 영화 속 엄흥도가 끝까지 단종을 모신 것처럼, 성인 사제의 시신을 모신 선조의 정신을 따라 대를 이어 사제와 함께 사는 남자가 있다. 1846년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수습해 150리 길을 걸어 미리내에 모신 이민식(빈첸시오) 선조의 7대손으로, 현재 수원교구 고초골공소 관리장으로 있는 이건환(바오로, 56)씨다.
이씨는 고초골공소 회장을 지냈던 부친 이선행(요아킴)옹 선종 이듬해인 2024년부터 고초골공소 관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인 이순교옹도 고초골공소 회장을 지냈다. 이씨의 집안과 사제와의 동행이 180년 넘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용인특례시 처인구 원삼면에 위치한 고초골공소는 수원교구 원삼본당(주임 송영오 신부) 관할로, 이 지역은 19세기 초 박해를 피해 교우들이 숨어 살던 곳이다. 남쪽으로 산을 넘으면 김대건 신부와 이민식이 묻혀 있는 안성 미리내성지로 연결된다.
이씨가 관리장을 맡게 된 건 송영오 신부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2023년 12월 27일 이선행옹이 선종하셨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새해가 되어 관리장을 새로 뽑아야 했는데, 어느 날 아침 꿈을 꾸듯 갑자기 건환씨가 생각났습니다. 장례 때 마주한 것이 전부였지만, 자꾸 생각났죠. 급하게 연락이 닿았고 이렇게 저와 함께 살게 됐습니다.”(송영오 신부)
갑작스러운 제안에 이씨는 적잖이 당황했다. “2남 1녀 중 막내입니다. 군에서 꽤 오래 복무하다 제대 후 사업을 했는데, 잘 안 풀려 서울에서 건설회사에 다녔습니다. 일에 묻혀 살다 냉담도 했죠. 그런 상황에서 관리장을 맡아달라고 하니 부담스럽고, 내심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도 컸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너희 집안이 어떤 일을 한 집안인데?’라고 하셨고, 받아들이게 됐죠.”
이씨는 “모든 상황이 운명 같다”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산길을 한 시간 걸어 형과 함께 미리내성당을 다녔습니다. 동네에서 성당 다니는 아이는 우리뿐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잘 다니다가 이후 신앙에서 좀 멀어졌죠. 여기 오니 새롭게 정착한다는 느낌, 고향에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씨의 할아버지인 이민식 선조는 독실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고, 17살 때 한강에서 모래사장을 맨손으로 파 생전 존경하고 따랐던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후 그는 지금의 흑석동 고개를 넘어 밤중에도 남태령과 하우고개를 지나 애덕(오두재)고개 앞에 이르렀다. 이후 선산인 미리내 묘지에 김대건 신부를 모셨다.
“고등학생 때 어느 날 아버지가 ‘이분이 원선시오 할아버지’라고 하시면서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옛날 시골에서는 빈첸시오를 원선시오라고 했거든요. 이후 할아버지 초상화를 액자에 넣어 보관해왔습니다.”
초상화는 1921년 오기선(요셉, 1907~1990) 신부가 미리내성당에서 이민식을 만났을 때 기억을 되살려 그린 것이다. 이민식은 당시 사제의 꿈을 가졌으나 이루지 못하고 1921년 94세로 선종했다. 이후 미리내성지가 성역화되면서 후손들이 선산을 교회에 봉헌했고, 이민식 선조도 김대건 신부 곁에 묻혔다.
송 신부는 이씨 집안이 보관해온 초상화를 고초골공소 경당에 모셨다. 이로써 135년 된 고초골공소 경당 제대 뒤에 105년 전 그려진 이민식의 초상화가 자리 잡으면서 믿음의 선조들이 신앙을 지키며 살아왔음을 다시 알리게 됐다. 이씨는 “선대의 투철한 신앙심을 이어받아 작은 일이지만, 교회와 공소를 위해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송 신부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면서 김대건 신부와 이민식 선조의 모습이 곧장 겹쳐졌다”며 “고종이 엄흥도에게 500년 만에 충의공이란 시호를 내린 만큼 이민식 선조의 훌륭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한국 교회 차원에서도 감사를 표하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가 많은 순교자를 시복시성으로 기리고 있지만, 그 뒤에는 그들을 뒷받침했던 이름 없는 의인들이 많았습니다. 참혹했던 박해 시기 김대건 신부님을 모셔온 이민식 선조는 한국 교회의 의인이기에 그를 기릴 수 있는 자리나 계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