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꼭 7년이 된 4월 11일. 관련 입법 공백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날 전국 곳곳에서는 낙태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집회들이 동시에 열렸다.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생명운동 ‘생명대행진’이 열린 서울 보신각 광장 집회 참가자들은 어김없이 “태아 생명 존중”을 외쳤다. 생명윤리 분야를 맡아 몇 년째 이 현장을 찾고 있는 기자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늘 비슷한 얼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제는 그 익숙함이다. 생명을 외치는 자리가 점차 ‘오는 사람만 오는’ 의례적 행사로 굳어지고 있었다. 규모는 해마다 줄고, 외침은 점점 더 좁은 울타리 안에 머무는 듯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한 외국인 청년의 물음이 또렷이 남는다. “왜 이렇게 사람이 적어요?”
외신을 통해서도 세계 각국의 생명대행진 소식을 접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매년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생명의 가치를 외친다. 생명 문제에 둔감하던 이들조차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었나”하고 놀라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단순한 집회를 넘어 사회 인식을 흔드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교회는 생명 보호를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라고 말해왔지만, 정작 그 현장에서 이런 절박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지 발표 당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WYD가 일회성 행사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교회의 가치가 청년들의 삶 안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요청일 것이다.
WYD를 불과 1년 앞두고 스스로 그 요청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지 성찰하게 된다. 교회의 핵심 가치인 생명을 외치는 자리에서조차 청년들의 참여와 공감은 좀처럼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생명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메시지가 과연 청년들에게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지, 이제는 자문해야 할 때다.
더 이상 청년을 ‘모으는 데’만 집중해선 안 된다. 교회를 이루는 우리는 진정으로 생명을 외치고 있는가. 과연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