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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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가 품은 ‘복음의 심장’, 베네치아 산 마르코 바실리카

[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73.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바실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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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광장의 산 마르코 바실리카와 캄파닐레(종탑). 석호 위에 세워진 베네치아는 바다를 길로 삼아 번영을 일궈낸 해상 공화국이었다. 두칼레 궁전과 나란히 자리한 바실리카는 과거 공화국의 정치·종교의 구심점이었으며, 복음사가 성 마르코의 성해를 모신 도시의 영적 중심지다. 98.6m 높이의 종탑은 1902년 갑작스러운 붕괴를 겪었으나, “있던 곳에, 있던 모습 그대로”라는 슬로건 아래 1912년 재건되었다.

크고 작은 백여 개의 인공섬과 수많은 운하와 다리 사이로 오가는 곤돌라와 수상버스. 베네치아는 다른 유럽 도시에서 보기 힘든 이국적 풍경을 지닌 ‘물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중심에는 오래전부터 한 성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복음사가 성 마르코입니다. 광장의 이름도, 도시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도 모두 그 이름에서 출발합니다.

베네치아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왜 이 도시가 한 복음사가의 기억을 소중히 품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일 겁니다. 성 마르코의 성해를 모신 산 마르코 바실리카는 바로 그 의문에 답하는 순례지입니다. 
산 마르코 바실리카의 정면. 상부에 도시의 수호 성인 성 마르코와 성인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가 광장을 굽어보고 있다. 마르코 복음서의 시작이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자 요한의 소리가 사자의 포효를 연상시킨다는 전승에 따라 사자는 성인의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800여 년간 도제의 개인 소성당이자 공화국의 상징이었으며, 1807년 나폴레옹 시대에 이르러 베네치아총대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됐다.

바다를 길로 삼아 발전한 베네치아

둑길을 따라 베네치아로 들어서는 순간 이국적인 여정이 시작됩니다. 산타루치아역 밖으로 나서면 자동차 대신 수상버스가 기다립니다. 보통 산 마르코 바실리카로 갈 때는 대운하를 따라 리알토 다리까지 이동한 뒤 골목길을 가로질러 갑니다만, 베네치아의 참모습을 보려면 본섬을 돌아 먼바다의 정취를 느껴보길 권합니다.

베네치아는 서로마 제국 멸망 후 롬바르드족의 침입을 피해 석호로 숨어든 사람들의 정착지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들은 척박한 개펄에 4m가 넘는 오리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 건물을 세우며 도시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물이 늘 완벽한 방어막은 아니었습니다. 9세기 말 마자르족의 침입이 시작되었고, 900년 리도디알비올라 전투에서는 사투를 펼쳐야 했습니다. 아드리아해 해적의 위협도 만만찮았습니다. 리알토 주변에 방어벽을 쌓고, 대운하에 거대한 쇠사슬을 설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넓은 육상 배후지가 없던 베네치아인들은 바다를 길로 삼을 수밖에 없었고, 바다를 통해 강해졌습니다. 중세에 동지중해와 서유럽을 잇는 중계무역의 거점으로 거듭나며 해상강국으로 부상했지요. 하지만 이들을 지탱한 것은 물질적 번영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다의 위협과 기회를 동시에 견뎌야 했던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과거와 미래를 결속할 정신적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그 자리를 채워준 것이 성 마르코였습니다.
산 마르코 바실리카 주 제대와 본랑. 금빛 모자이크로 뒤덮인 반구형 돔과 아치들은 신비로운 비잔틴 전례 공간의 특징을 드러낸다. 제단과 신자석을 엄격히 구분한 대리석 스크린 상단은 열두 사도와 성모 마리아, 성 마르코 성상이 배치되어 있다.

도시 행정과 신앙의 중심이었던 바실리카

배가 주데카섬을 벗어나면, 산 마르코 종탑과 두칼레궁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옵니다. 산 마르코 바실리카는 그 옆에 있습니다. 현재 성당은 11세기부터 수세기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높은 첨탑이 하늘을 찌르는 서유럽식 대성당과 다른 모습입니다. 둥글게 솟은 다섯 개의 돔, 황금빛 모자이크, 대리석과 부조가 겹겹이 포개진 정면은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건너편에 우뚝 솟은 종탑은 과거 지진과 붕괴를 거치며 별도로 세워졌습니다.

바실리카의 역사는 829년 성 마르코의 유해를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옮겨온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832년 첫 성당 봉헌과 함께 성해를 모셨고, 기존 성 테오도로를 대신해 성 마르코를 새로운 수호 성인으로 세웁니다. 이는 복음사가의 권위를 빌려 베네치아를 단순한 해상도시가 아닌 특별한 도시로 격상시키려는 포부의 산물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성인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는 공화국 문장(紋章)이자 도시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됐습니다.

당시 주교좌 성당은 외곽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었지만, 도심의 바실리카는 도제의 소성당이자 국가 의례의 무대로서 사실상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바실리카에서 공식 행사가 치러졌고, 성 마르코는 베네치아인이 하나로 뭉치는 구심점이 됐습니다.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날개 달린 사자는 이 도시가 바다를 통해 번영을 이루면서도 삶의 중심에는 늘 성인에 대한 공경심이 있었음을 잘 보여 줍니다.
현관 아치 ‘포르타 산탈리피오’. 서쪽 정면에서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13세기 모자이크다. 829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수습한 성 마르코의 유해를 주교와 도제의 영접을 받으며 바실리카로 운구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모자이크 배경에서 당시 바실리카 모습을 볼 수 있다.
주 제대 뒤편의 제단화 팔라 도로. 금박을 입힌 은판 위에 화려한 비잔틴 칠보와 수천 개의 보석·진주를 촘촘히 박아 완성했다. 중앙의 ‘축복하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상단에는 비잔틴 교회의 주요 축일 장면들, 하단 좌우에는 성 마르코의 생애와 순교, 베네치아로 성해 운구 장면이 펼쳐진다.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황금 성전

현재 바실리카는 11세기에 비잔틴 전통을 반영한 기본 구조를 갖춘 뒤, 외관이 점차 덧입혀졌습니다. 13세기에 벽돌 돔 위에 납판을 씌운 돌출 돔이 얹혔고, 서쪽 정면은 14~15세기에 더해진 고딕 장식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마감됐습니다. 특히 1204년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가져온 대리석과 네 마리 청동 말 조각은 동·서방을 넘나든 베네치아의 역사를 선명히 드러냅니다.

‘창세기 돔’ 아래로 들어서면 찬란한 금빛 모자이크가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웁니다. 비잔틴 특유의 공간감은 고딕 위주의 서유럽 대성당과는 전혀 다른 경이로움을 선사합니다. 이 모자이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성경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벽면의 언어’이며, 석호의 물결을 닮은 듯 일렁이는 바닥의 대리석 무늬는 도시 밖의 이국적 풍경을 성전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입니다.

주 제대에는 베네치아인 신앙심의 구심점인 성 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제대 뒤편의 제단화인 ‘팔라 도로(Pala d’Oro)’는 성인의 삶을 담은 정교한 금세공 패널입니다. 베네치아 최고의 보물인 동시에, 성 마르코 순례의 서사를 눈앞에 펼쳐 보이는 성화이지요.

로지아에 서면, 베네치아 번영과 성쇠를 함께한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실리카는 도시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려 세운 공간이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 베네치아의 현재와 미래를 봉헌하던 간절한 자리였습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의 바닷길을 둘러싸고 세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해관계의 셈법이 아니라,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주십사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간절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순례 팁>

※ 대운하 코스: Rialto(ACTV 1, 2번) 하차 후 도보 이동하거나 배편(1번)으로 계속 이동(총 25~45분) / 우회 코스: P.le Roma ‘E’에서 승선(ACTV 4, 1, 5.1번, 총 25~35분)

※ 바실리카 미사 : 주일 및 대축일 8:00· 10:00·12:00·18:45, 평일 8:00·10:00·18:45. 미사 참례는 북쪽 ‘포르타 데이 피오리’ 문으로 입장. 그 외 관람 목적은 유료.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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