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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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시작된 나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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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유은총입니다. 두 살 터울 남동생 이름은 충만입니다.”

자기소개를 마치면 늘 같은 반응이 돌아옵니다. “참 좋은 이름이네요. 누가 지어주셨어요?”

‘은총’과 ‘충만’. 신자든 비신자든 한 번 들으면 쉬이 잊히지 않는 이름입니다. 우리 형제의 이름을 지어주신 분은 아버지입니다. 작명소도, 항렬 돌림자도 아닌,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골라 두 아들의 이름에 담아주셨습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 밤샘 기도를 다니시던 말 그대로 ‘열혈 신자’셨던 아버지는 세상에 곧 나올 자녀들을 하느님께서 굽어 돌봐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으셨다고 훗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형제 이름에 가려졌지만, 사실 아버지 성함도 범상치 않습니다. ‘경사로울 경(慶)’에 ‘북돋울 배(培)’, 이름 하여 ‘경배’. 어쩌면 할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셨던 걸까요. 어릴 적 온 가족이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면, 아버지는 미사 중에 자신의 이름이 들릴 때마다 괜히 엉덩이를 들썩이곤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뜨거운 신앙은 이름 속으로, 그리고 우리 형제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 역시 제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랜 세월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신 어머니는 일상 속에서 늘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익숙했던 풍경은 방 한 켠 작은 기도 공간에서 촛불을 밝히고 고요히 묵주기도를 바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일까요. 저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어색하거나 주저되는 일이 아닙니다. 어느새 신앙을 삶처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가방 안에는 기사를 작성할 때 쓰는 노트북과 취재수첩 사이에 5단 나무 묵주가 늘 함께합니다. 취재 현장으로 향하는 길, 차 안에서 조용히 묵주 알을 굴리며 기도합니다.

‘주님,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제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잘못이 없도록 이끌어 주소서.’

제 부모님은 성모님이나 요셉 성인 같은 특별한 분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어느 성당에서나 만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다만 교회 가르침에 따라 자녀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고, 충분한 양분과 물을 주며 싹이 트길 기도하신 분들입니다. 부모님의 기도 안에서 자라며, 저 역시 복사와 레지오 마리애 단원,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자녀의 얼굴에서 부모의 얼굴이 보이듯, 신앙도 그렇게 닮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요즘 저는 황혼을 바라보는 주름진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기도드립니다.

“저희 부모는 저희를 낳아 기르며 갖은 어려움을 기쁘게 이겨 냈으니 이제는 그 보람을 느끼며 편히 지내게 하소서.” (「부모를 위한 기도」 중)

그러면 어머니는 혼기를 넘긴 아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며, 오늘도 아들을 대신해 주님께 기도를 올리십니다.

“은총의 빛을 비추어 주시고, 겸손하고 진실된 마음을 간직하여 새로운 만남이 당신의 부르심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 되도록 이끌어 주소서.”(「미래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 중)

그 기도를 마음에 새기며, 저도 조용히 두 손을 모읍니다. “주님, 모두 이뤄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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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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