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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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엄마와 함께하는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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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엄마의 요양원에 방문하는 날!

 

아침부터 분주하다. 기차 안에서 요기하며 대전에 계시는 엄마를 보러 간다. 적막이 감돈다. 절로 나오는 한숨, 머리에는 가시관이 얹혀있다. 변해가는 엄마 모습을 떠올리니 가시 하나가 박힌다. 자식의 도리에 못 미치니 괴로움의 가시가 또 하나. 두 시간 넘게 달려가 만난 엄마를 보고 또 하나. 이렇게 엄마와 나는 수 년을 함께했다.

 

엄마의 목소리와 눈빛은 여전히 젊다. 당당하시다. 그럴 땐 나도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간다. 땅 한 평도 놀리지 않는 엄마 세대, 집 마당에 마늘을 심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는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드리고 집으로 오는 차 안의 공기는 항상 무겁다. 가시로 콕콕 찔린 상처에 눈을 감는다. 3일 후 엄마가 또다시 나를 부르신다. 4월 16일 요양원으로 달려가 보니 엄마 얼굴이 심상치 않다. 온몸에 얼굴까지 요독으로 괴로워하신다. 서둘러 병원으로 모시고 심전도·신장·엑스레이·소변 검사. 대학병원 병원 의자에 지쳐 누우신 엄마, 신장내과 교수님은 말없이 컴퓨터만 바라보신다. 

 

순간 각오를 하고 들을 자세를 취한다. 신부전 말기.

 

투석을 하지 않으면 2주 안에 돌아가실 거라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투석을 해도 올해를 넘기지 못한다는 말씀?. 가족들과 투석으로 연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뜻을 모은다. 통증을 줄이며 평화롭게 가시는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엄마의 통증은 나도 누른다. 어쩔 수 없이 투석 요양병원으로 모신다. 일주일에 3번, 한 번 할 때마다 4시간.

 

투석을 시작한 후 엄마는 안정의 길로 돌아온다. 나도 기쁘다. 오늘은 사랑의 기쁜 관이 앉혀 있다. 엄마의 밝아진 목소리에 더해 가족들의 지원으로 지난여름부터 준비해온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10일간의 순례행을 결정한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엄마에게 성지순례 갔다 오겠다고 인사하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밥을 제대로 드시고 있는지 묻는다. 다시 또 하나의 가시가 박히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4월 21일 순례길에 오른다.

 

이틀 뒤 프란치스코 성인이 계시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발칸의 넓은 광야를 버스로 이동하던 중 핸드폰에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연속된 부재 전화가 뜬다. 순간 묵주 한 알에 엄마의 길을 봉헌한다. 3시간 후 호텔에 돌아와 가족에게 건 전화. 엄마의 죽음이 전해진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요한 20,11)

 

마리아의 울음은 빈 무덤의 통곡의 울음, 나의 통곡이 시작. 영혼이 나간 눈빛, 손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듯 물건을 들었다 놨다, 발을 동동거리며 방 곳곳을 돌아다닌다. 타 본당 성지순례에 끼어 온 터라 조용히 홀로 한국행을 결정했다. 가이드님께 비행기 표를 알아봐 달라 하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가이드님은 크로아티아에서 직항은 없고, 두 번의 환승 끝에 돌아간다고 해도 발인 날짜를 넘길 것이라 한다. 내게 얹혀있는 가시관에서 피가 흐른다.

 

룸메이트에게 미안함도 잊은 채 꼬박 주님을 향해 분노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가시관 가시로 저를 찌르시는지. 다음 날 신부님과 가이드님께 남은 일정을 따를 수밖에 없음을 말해야 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어라.”(마태 8,22)

 

성경 말씀이 살아서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동시에 정종순 마리아를 위한 순례 미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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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내가 몸담아 온 본당 식구와 재속 가르멜회에는 엄마의 부고를 알릴 수 없었다. 하지만 성인들의 행적이 깃든 순례 성당에서 엄마를 위한 미사가 매일 봉헌되었다. 발인 전날, 크로아티아에서 영정을 컴퓨터 전면에 띄운 채 장례미사를 올렸다.

 

주님! 이거였군요. 엠마오 제자들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한 그 순간처럼 나의 가시관에서 깊숙이 못 박힌 가시가 아지랑이로 변하여 엄마와 나의 순례를 이끌고 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번 순례 여정은 당신께서 준비하신 것. 보이지 않는 당신을 깊은 내면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인이 된 정종순 마리아를 위하여 주모경을 바쳐주시는 감사로 고인의 부고를 알려드립니다.

 

십자가 성 요한의 딸.

 

황규순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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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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