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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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과 ‘공동체’, 청년 자립의 든든한 울타리 된다

[자립준비청년의 빈칸을 찾아서] 2 회복-회복의 여정 ‘공동체적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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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인천시청소년자립지원관 ‘별바라기’ 관장으로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고 있는 송원섭 신부. 그가 까페를 찾아 일하고 있는 자립준비청년들을 격려해주고 있다.

 


인천교구 부평1동성당 ‘카페 숨’
공동체 안에서 사회성 키우며
독립 역량 강화·경제 교육 병행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쌍화차 다섯 잔, 생강차 세 잔도 가져가세요!”

인천교구 부평1동성당에 위치한 ‘카페 숨’. 평일 오전 미사가 끝나자 신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카페로 모여든다. 밀려드는 주문 쪽지가 쌓여갈수록 앞치마를 두른 두 청년의 손길도 분주해진다. 자립준비청년 박세진(요셉, 26)씨와 이신재(20)씨다.

40여 개의 좌석이 금세 찬 카페는 활기가 넘친다.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지만, 이곳 메뉴판에는 가격표가 없다. 대부분 신자인 손님들은 카페를 이용한 뒤 ‘사랑나눔함’에 원하는 만큼 기부금을 넣는다. 바쁜 주문이 몰아치고 난 뒤, 손님이 뜸해진 시간. 두 사람은 둘도 없는 다정한 형제로 돌아간다.

‘카페 숨’은 이들과 같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직업 능력과 자활 역량을 키워가는 일종의 ‘훈련소’다. 청년들이 지역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천광역시 지원을 받아 (재)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과 인천시청소년자립지원관 ‘별바라기’가 운영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이곳에서 손님을 응대하며 이들은 사회생활을 미리 체험한다.

근무 시간이 길지 않아 월급이 넉넉지는 않지만, 이들에겐 이 돈을 쪼개어 쓰는 과정 자체가 소중한 배움이다. 아동복지시설이나 쉼터 시절에는 한 달에 3~8만 원 남짓한 용돈을 받는 게 전부였기에,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큰 단위의 돈을 관리해보는 것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경제 교육’이 된다.

두 청년의 손길이 한창 바쁠 무렵, ‘별바라기’ 관장 송원섭 신부가 카페를 찾았다. 송 신부는 능숙하게 쟁반을 들고 음료 서빙을 돕는가 하면, 비품이 부족하진 않은지 수납장을 열어보며 청년들의 일터를 살뜰히 살핀다. 두 청년은 ‘별바라기’를 통해 이곳에서 새로운 내일을 꿈꿀 기회를 얻었다.


 

 

이신재씨는 별바라기가 운영하는 ‘카페 숨’에서 자활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여덟 살 때부터 아우구스티노 수도회가 운영하는 그룹홈에서 생활한 박세진씨. 그는 자립준비청년이지만 스스로 자립준비청년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의 꿈은 까페를 창업해 바리스타가 되는 것이다.

 

 

 


믿어주는 어른 한 명만이라도···

“저를 믿어주고 신뢰해주는 어른을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학교도 잘 다니고 더 행복했을 거 같아요.”

이신재씨의 고백 뒤에는 아픈 과거가 숨어 있다. 그는 알코올 의존증과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며 지속적인 학대를 견뎌야 했다. 중학생 때 가출도 여러 번 했던 그는 고등학교마저 자퇴하며 세상과 멀어졌다.

그가 지난해 12월 ‘별바라기’의 품에 안기게 된 과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긴박했다. 알고 지내던 송 신부의 권유로 별바라기 입소를 결심하고 캐리어에 짐까지 싸뒀던 날 밤이었다. 어머니가 아들이 잠든 사이 거실에 번개탄을 피웠고, 매캐한 연기를 감지한 이웃의 신고로 소방관과 경찰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생사의 기로에서 이씨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송 신부였다.

“신부님, 엄마가 저를 죽이려고 해요. 제발 구해주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절박한 구조 요청에 송 신부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날 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주한 사제의 품에서 그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유년 시절 상처는 이씨가 마음을 굳게 닫게 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밥은 제때 챙겨 먹었는지 물어봐 주는 이 하나 없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별바라기’에 입소한 뒤 그의 일상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친구랑 놀고 있는데 신부님한테서 전화가 온 거예요. 어디에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몇 시쯤 들어올 건지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랑 놀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신부님이 그러셨어요. ‘그래, 잘 놀고 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타인에게는 지극히 일상적 안부 전화가 그에겐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나를 걱정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작은 관심이 그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행복한 선물이었다. 이씨는 카페의 아늑한 온기와 든든한 버팀목에서 조금씩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올 용기를 내고 있다. 여전히 가끔 파도처럼 우울함이 밀려오고 약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이젠 그 파도를 함께 넘을 이들이 곁에 있다.



자립, ‘홀로서기’ 아닌 ‘함께 서기’

흔히 자립(自立)을 ‘홀로서기’라 부르지만, 현장 전문가와 학자들은 자립을 단순히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상태로만 보지 않는다. ‘주변 자원을 적절히 활용해 지역 사회 안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까지를 자립의 범주에 포함한다.

전문가들이 정의하는 자립의 핵심은 세 가지다. △경제적 독립을 넘어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심리·사회적 독립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대인관계 및 지역사회 자원 활용 능력 △다양한 영역 안에서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생존해나가는 사회적 통합 상태다. 나아가 사회학자들은 완성도 높은 자립의 최종 단계를 ‘생계와 주거를 스스로 책임지는 가정을 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혼자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기술 교육이 아니라, 언제든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의 어른’을 만나는 일인 셈이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그들을 믿어주는 어른입니다. 함께 걸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19세에서 24세는 인생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자 황금기입니다.”

10여 년 동안 청소년 자립을 위해 청소년지도사·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한 청소년복지 실천가이기도 한 송원섭 신부는 “자립지원금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 곁을 지키는 사람”이라며 “실패해도 격려해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며, 따뜻하고 좋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신부는 특히 ‘공동체적 자립’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소속감과 사회성, 관계 형성은 자립의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입니다.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있어야만 사회적 고립과 은둔을 막을 수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결핍으로 늘 외로운 아이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는 일은 곧 아이들의 자존감 및 자신감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그가 청년들과 땀 흘리며 운동하고, 청년들이 일하는 편의점을 아예 인수해 직접 ‘아르바이트 대타’를 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당의 한 공간을 카페로 만들어 자립 훈련장으로 활용하고, 때로는 사제관에 청년을 데리고 살며 중학생 문제집을 함께 푸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저는 자립준비청년이라 생각지 않아요”

카페 ‘숨’에는 이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든든한 형 박세진씨가 있다. 박씨의 삶 역시 순탄치 않았다. 네 살 때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여읜 후 아버지는 가혹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 두 아들을 쉼터로 보내야 했다.

여덟 살 때부터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가 운영하는 그룹홈 ‘너랑나랑의 집’에서 23살까지 수도자들과 함께 생활한 박씨는 2023년 3월, 마침내 부평역 인근에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해 독립했다. 생전 처음 홀로 집을 구하러 다니던 막막한 순간, 그의 곁을 지킨 건 그룹홈에서 친부모처럼 함께 살았던 수사였다.

어린 시절 ‘엄마 없는 아이’라는 친구들의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원망 대신 이해를 배웠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어요. 커서 생각해보니 아버지 혼자 두 아들을 키우기엔 상황이 너무 힘들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의 담담한 고백에서 단단한 내면이 묻어났다.

그를 지탱한 가장 큰 울타리는 성당이었다. 열 살 때 형과 함께 세례를 받은 후 단 한 번도 주일학교를 떠난 적이 없다. 지금은 본당에서 4년째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중이다. 아이들 특유의 해맑은 웃음과 구김살 없는 긍정의 에너지는 또 다른 선물이다.

“주변에 항상 누군가가 있었기에 저는 스스로를 ‘자립준비청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바르고 곧게 자랄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할 뿐이죠. 제가 교사로 활동하는 건,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1급 바리스타 자격증과 커피지도사 자격증을 딴 그는 카페를 창업하는 게 꿈이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인천교구 빈첸시오회, 자립준비청년 가정 방문 봉사
청소부터 냉장고 반찬까지··· “가족의 온기가 느껴져요”

 

 

 

 

인천교구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들이 자립준비청년의 집을 청소해주고 있다.

 

 


“이 옷 빨 거예요? 이건 버려도 되나? 학생, 우리 있을 때 버릴 거 다 꺼내줘요. 우리 가고 나면 혼자 치우는 게 얼마나 귀찮아.”(노한기 다윗)

지난해 11월, 인천의 한 자립준비청년의 집. 고요하던 집안이 모처럼 북적였다. 인천교구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들이 자립준비청년들의 홀로서기를 돕고자 팔을 걷어 붙인 것이다.

방 바닥에는 입었던 옷가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식탁 위에는 약 봉투와 과자 봉지, 먹다 남은 음료 캔이 뒹굴었다. 지인에게 받은 책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놓여있고, 현관 앞에는 뜯지 않은 신발 상자와 고가의 명품 가방 상자들이 덩그러니 쌓여 있었다. 고교 시절부터 일시청소년쉼터에서 생활하다 지난해 5월 독립한 박강수(가명, 23)씨 집 풍경이다. 시설을 떠나 ‘나만의 집’을 가졌지만, 짐 정리는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빈첸시오회 회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집안 곳곳의 쓰레기를 치우고 거실부터 화장실까지 구석구석 닦아냈다. 텅 비어있던 냉장고는 회원들이 정성껏 준비해온 멸치볶음·계란말이·귤 등 밑반찬과 과일들로 금세 채워졌다.

홀로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집은 때로 ‘쉼터’가 아닌 ‘고립의 공간’이 된다. 보호 체계를 벗어나 막막한 홀로서기를 시작하지만, 당장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도 없는 세상’에 발을 내딛기 때문이다.

박씨처럼 빈첸시오회 회원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정재엽(24)씨 역시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한 후 쉼터를 전전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한때 극단적 선택을 고민할 만큼 절망에 빠졌던 그에게 회원들의 방문은 큰 위로였다. 정씨는 “깔끔해진 집을 보니 사람이 사는 집으로 바뀐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다”며 “많은 손님이 오시니 마치 가족과 함께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미소 지었다.

봉사자 노한기(다윗)씨는 “나 역시 혼자 지내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청년들의 심정을 잘 안다”며 “아들 같다는 생각으로, 내 집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봉사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엄미란(로사리아)씨 역시 “아이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며 “가까이서 돌보며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빈첸시오회 회원들의 활동은 단순한 가사 지원을 넘어 사회적 고립 위험에 처한 청년들에게 ‘함께하는 이웃이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고 있었다.

김정아 기자 junga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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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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