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선교수녀회에서 만난 이미자 총장 수녀는 “모든 수녀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세대 리더 양성·대륙별 지부 통합 구상이 임기 핵심 과제
“어머니처럼 모든 수녀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고 싶어”
이미자(미리암) 수녀는 1987년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선교수녀회에 입회했다. 만 서른의 나이였다. 그를 알던 이들은 모두 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수녀는 스스로 “날라리였다”고 할 만큼 화려한 20대를 보냈다.
“수녀가 되겠다고 성소 모임에 나가던 친구들을 꾀어서 모임에 못 가게 하던 사람이 바로 저였어요. 직장 생활하면서 쇼핑을 즐기던 사람이었고요. 성당에서 수녀님들을 보면서 ‘나는 다른 건 다 해도 수녀는 안 해’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답답해 보였거든요.”
수녀만은 아니라고 했던 그는 현재 전 세계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선교수녀회를 이끄는 총장이다. 2025년 7월 아시시에서 열린 총회에서 6년 임기의 총장으로 선출됐다. 한국 공동체를 공식 방문하기 위해 고국을 찾은 이 수녀를 8일 경기도 화성 수녀원에서 만났다.
1994년 종신서원을 한 이 수녀는 이탈리아 교황청립 살레시오대학에서 유학했다. 석사 과정을 마친 후엔 수녀회 총평의원으로 선출됐고, 이후 총재정 책임자, 부총장 등을 거치며 30년 넘게 아씨시 총본부에서 봉사했다. 특히 21년 동안 종신서원자 양성을 동반하며 전 세계 회원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수도회와 각 공동체, 회원들에 대한 깊은 이해는 그가 총장으로 선출된 배경이다.
“각 관구와 공동체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공동체가 어떤 곳인지, 그 수녀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어 바로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가 수도자 양성에서 가장 강조하는 건 ‘함께 사는 능력’이다. 수도자는 공동 생활을 선택한 사람이고, 프란치스칸에게 형제애는 선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수녀는 “함께 사는 건 결코 저절로 되지 않는다”면서 “의식적으로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자들끼리 수도회 내에서도 잘 살아야 하겠지만, 수도자는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세상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세상 물정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종종 수도자들에게 우유 한 통, 쌀 한 팩이 얼마인지 물어봅니다. 알아야 진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데요.”
1702년 설립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선교수녀회는 현재 잠비아·루마니아·한국·이탈리아 관구를 중심으로 17개 나라에서 5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는 1980년 진출했다. 오랜 세월 중심 역할을 해 온 유럽 공동체는 고령화와 성소 감소를 겪고 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공동체는 새로운 성소와 활력을 품고 성장 중이다. 이 수녀는 임기 중에 리더 양성과 수녀회 구조 재편에 주력할 계획이다.
“앞으로 10년 뒤면 수녀회를 이끌 주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수녀들이 될 것입니다. 지금 제 역할은 그들이 차세대 리더로 설 수 있도록 부지런히 공부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끊어지게 됩니다. 또 장기적으로는 대륙별로 여러 지부를 통합할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이 수녀가 총장으로 선출됐을 때 한 사제는 “어머니가 되면 된다”며 ‘어머니의 마음’을 당부했다. 총장을 칭하는 이탈리아어 ‘마드레’는 어머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수녀는 “잘난 자녀든 부족한 자녀든 아픈 자녀든 똑같이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모든 수녀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녀회는 총장 선출 직후 그에게 ‘희망의 장인’이 되기를 기도한다는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 수녀에게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었다. 그는 “희망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고통과 갈등, 쇠퇴라는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 나오는 것”이라며 “그 안에서 가능성을 읽어내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희망을 빚어내는 장인의 태도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 수녀는 아씨시 수녀원에 걸려있는 선교 지도 그림 이야기를 꺼냈다. 한 독일인 수녀가 1936년 그린 지도에는 한국만 ‘코리아’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럽에선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는 때였다.
“처음 그 그림을 마주했을 때 전율을 느꼈습니다. 1930년대 그 수녀님은 한국을 어떻게 알고 있었고, 왜 지도에 코리아만 써 놨을까 하고요. 하느님께선 이미 오래전 한국에 대해, 한국 수녀들에게 어떤 뜻을 갖고 계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총장이 된 것도 그 뜻을 되새기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