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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 역사를 밝히는 일에 힘 쓰고 싶습니다”

[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한국 평신도 사도직 활동의 모범, 류홍렬 라우렌시오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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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 재직 시절.


조선사편수회·창씨개명 단호히 거절

동성상업학교 역사지리 교사로 부임

몰래 한국사 가르치고 학생들 보호



라리보 주교가 건넨 달레 한국 교회사

프랑스어 독학해 읽고 연구 이어가



류홍렬 선생은 3년간 이어왔던 대학 조수직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조수는 계약직이었고, 당시 경성제국대학은 조선인에게 교수직을 주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대학에 머물 수 없었던 것이다.

“류 선생, 조선총독부가 운영하는 조선사편수회는 어떠한가? 조선의 역사도 계속 연구할 수 있고, 무엇보다 그곳에 가면 박사 학위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네.”

“교수님, 저의 처지를 헤아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그곳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그의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한 일본인 교수들이 그에게 ‘조선사편수회’의 편수관 자리를 제안했다.

조선사편수회는 일제가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하여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어용 단체였다. 만약 그가 그곳에 취업한다면, 그는 일제하에서 사회적 성공을 얻을 것이 자명했다. 교수들은 그곳에 가면 몇 년 안에 박사학위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달콤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조선총독부의 어용학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후일담이지만, 그의 투철한 민족의식은 일제가 민족말살 정책을 강화하던 1940년대에 더욱 빛났다. 일제의 강압에 모두가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던 그 엄혹한 순간에도 그는 창씨개명을 단호히 거절했다.


교육자의 길

일본인 교수들의 제안을 거절하니 그의 마음은 뿌듯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면 헛헛하기만 했다. 보장된 길이 아닌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안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하느님의 섭리가 활동하시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마침 그에게 동성상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 학교는 1922년 천주교 경성대목구(현 서울대교구)가 인수하여 운영하던 학교였다. 그곳에는 그의 대부 장면 박사가 1936년 11월부터 교장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류홍렬 선생이 일자리를 알아보던 차에 그 학교에서 근무하던 역사지리 교사가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일이 생겼다. 바로 그때 장면 박사가 그를 학교에 초대했고, 그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는 1938년 4월부터 동성상업학교에서 역사지리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성상업학교 교사가 된 류 선생은 갑조(상업과)와 을조(소신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학생들의 응석을 받아주는 자비로운 교육자로서의 면모도 드러냈다. 그의 제자 신태민(동성 19회)은 「동성 100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그를 기억했다.

“역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정열적인 강의와 억양에 특색이 있었어요. 최영정이란 친구는 류 선생의 강의 내용보다 강의, 그 특색을 연구하여 레크리에이션 때는 항상 류 선생 강의를 재연(흉내)하여 어리광을 부렸는데 그런 때도 응석으로 받아주시는 자비가 있으셨습니다. ‘장미 전쟁’이니 ‘희랍 문화’니 서양사도 배웠지만 사실은 일본 국사를 가르치시는 체하면서 간간이 한국 국사를 말씀해주신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훈육 주임을 맡았던 그는 학생들을 괴롭히던 일본인 교사의 행패를 막고, 일본인 교무 주임으로 하여금 학교를 그만두게 만드는 등 학생들을 보호하는 일에도 거침이 없었다.

“동성상업학교 교사 시절에는 학생들의 풍기를 바로잡는 훈육 주임의 일을 맡아봄으로써 교무 주임이던 일본인 교사의 행패를 막아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을 마구 때리던 일본인 교무 주임이 결국 그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있었지요.”

한편 그는 광복 직후인 1945년에 모교(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1966년까지 후학을 양성했다. 그리고 1966년부터 1967년까지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1968년부터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연구와 가르치는 일을 이어나갔다. 정년퇴임 이후에는 인하대학교와 세무대학의 초빙교수로 활동하는 등 교육자로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나아가 그는 광복 직후부터 중등 역사 교과서 등 한국사와 관련된 저서를 계속 집필하고, 문교부 중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 심사위원, 국사편찬위원 등의 활동을 이어나감으로써 모든 한국인이 자주적인 민족의식을 함양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조선독립사상사고(1948) 표지.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의 시작

류 선생은 주일마다 명동대성당 미사에 참여하고, 대부였던 장면 박사와 성직자들을 자주 찾아다니며 신앙을 두터이 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1938년 2월 3일 그는 경성대목구장 라리보 주교를 만나기 위해 경성대목구 주교관을 찾아갔다.

“라우렌시오 형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신다는 말씀을 익히 듣고 있었어요.”

“이 모든 것이 주교님을 통해 내려주시는 하느님의 은덕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밝히는 일에 힘을 쓰고 싶습니다.”

“아, 그래요? 정말 귀하고 장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라리보 주교는 바로 옆에 있던 책꽂이에서 푸른 빛깔 표지의 두꺼운 책 두 권을 꺼내 류 선생에게 건네주었다.

“이 책을 받으세요. 이 책은 우리 파리외방전교회의 달레(Claude Charles Dallet, 1829~1878) 신부님이 쓰신 「한국천주교회사」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조선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의 편지와 자료들을 모아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정리하셨습니다. 그것도 박해가 다 끝나지 않는 1874년에 책을 내셨어요. 이걸 보시면 어떻게 한국 천주교회가 세워졌는지, 박해 속에서도 어떻게 우리 신자들이 신앙을 지켜왔는지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을 보시고, 꼭 훌륭한 한국 천주교회사를 정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책을 받아든 류 선생은 그 순간부터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일과 연구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성상업학교에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병행하는 것은 두세 배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뜻을 세우고 틈틈이 교회사 연구를 진행해 나갔다. 우선 라리보 주교가 건네준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를 읽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책은 프랑스어로 쓰여 있었다. 때문에 그는 프랑스어를 독학으로 익히고 책을 떠듬떠듬 읽어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을 일으킨 일제가 전시 총동원령을 내리면서,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마저 시시때때로 강제 근로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광복과 더불어 많이 해소되었다. 류 선생은 광복과 함께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막 빛을 되찾은 한국 사회에서 한국사에 대한 그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았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국사 강습회를 열고, 학생들을 가르칠 국사 교과서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나아가 그는 1948년 10월에 「조선독립사상사고」(朝鮮獨立思想史攷)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그가 출간한 최초의 단행본이었는데, 한국사에 등장하는 역대 국가들이 지녔던 자주 독립 사상을 정리한 책이었다. 여기서 그는 우리나라가 예부터 자주 독립 사상을 지니고 있었음을 밝히고자 했다. <계속>

 


김선필(베드로,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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