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바르디아 평원의 카라바조 산타 마리아 델 폰테 성지. 1432년 성모 발현 전승에서 시작된 북이탈리아 크레모나 교구 소속 성지. 넓은 평원에 자리한 붉은 벽돌의 바실리카와 돔, 넓은 광장, 회랑, 긴 가로수길이 하나의 순례 공간을 이룬다. 1906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준 대성전으로 승격되었다. 출처=카라바조 성지
‘카라바조(Caravaggio)’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섭니다. 이탈리아 미술에 매료된 분이라면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대비시킨 바로크의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를 먼저 떠올릴 테지요. 하지만 카라바조는 화가의 이름이기 이전에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의 고즈넉한 도시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 화가의 가문이 이곳에서 뿌리를 내렸지요.
인구 1만 6000여 명의 호젓한 작은 도시인 카라바조에는 북이탈리아 신자들이 대를 이어 찾아오는 영성의 안식처가 있습니다. 바로 ‘샘의 성모님’을 모신 산타 마리아 델 폰테(Santa Maria del Fonte) 성지입니다.
카라바조 산타 마리아 델 폰테 바실리카 내부. 단일 본랑 끝에 주 제대와 돔이 있으며, 양쪽에는 강론대와 대형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주 제대는 필리포 유바라가 구상하고 카를로 주세페 메를로가 1735~1750년에 완성한 대리석 제대이며, 천장과 벽면 프레스코화는 19세기 중반에 조반니 모리지아가 그렸고, 전체 궁륭 장식은 루이지 카베나기가 작업했다.
지평선 끝에 솟아오른 은총의 돔
롬바르디아 평원은 이탈리아 북부의 심장부입니다. 북쪽으로는 알프스의 만년설과 푸른 호수 지대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남쪽으로는 포(Po)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가 이어집니다. 밀라노를 중심으로 산업과 금융이 발달한 지역이지만, 도심을 한 뼘만 벗어나면 낮게 깔린 지평선과 농경지, 붉은 벽돌 공장들이 묵묵히 교차하는 평원의 속살이 드러납니다.
카라바조 성지는 바로 이 평원 한가운데 있습니다. 밀라노에서 동쪽으로 약 40㎞, 베르가모와도 인접해 차로 30~40분이면 닿는 거리이지요. 그래서 멀리 세상과 단절된 은수처로 순례를 떠난다기보다 질병과 걱정, 가족의 문제 등 삶의 무게에 지친 이들이 언제든 찾아와 위로를 얻는 영적 쉼터에 가깝습니다.
카라바조 역에서 내려 마을과 반대편으로 곧게 뻗은 가로숫길을 걷다 보면, 길의 끝에서 바실리카의 푸른빛 돔이 서서히 시야를 채워 옵니다. 붉은 벽돌과 밝은 석재의 조화, 하늘 향해 솟은 돔, 그리고 광장과 회랑으로 이어지는 넓은 공간이 찾아오는 이를 압도하는 장중함을 선사합니다.
현재의 바실리카는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끈 성 가롤로 보로메오 대주교의 뜻을 받들어 1575년에 착공하여 18세기 초에 완공되었습니다. 넓은 광장 한가운데 들어선 바실리카, 200개의 아치로 네 면을 두른 회랑과 긴 포르티코는 이곳이 처음부터 많은 순례자를 품기 위해 설계된 장소임을 보여 줍니다.
성지 이름의 기원이 된 사크로 폰테의 지하 물 공간. 성모 발현 장소에서 솟았다고 전해지는 샘과 연결된 곳으로,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물을 받고 성호를 그으며 기도한다. 바실리카 외부 출입구에서 지하 통로를 따라 들어갈 수 있다.
불의의 세상에 건넨 성모님의 위로와 당부
바실리카 앞뒤에 커다란 수조와 분수가 있습니다. 이 물의 근원은 주 제대 아래, 성지의 기원이 된 신비로운 샘터입니다. 1432년 5월 26일 오후 5시 무렵, 마을 밖 초원 이곳에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프란체스코 바로리의 아내인 서른두 살의 잔네타였습니다. 그녀의 삶은 고단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홀로 생계를 꾸려가던 잔네타는 그날도 가축에게 먹일 풀을 베고 있었습니다.
해가 기울어 들판이 주홍빛으로 물들 무렵, 무거운 풀더미를 어떻게 집까지 옮겨갈까 걱정하던 그녀의 눈앞에 푸른 옷에 흰 베일을 두른 기품 있는 여인이 소리 없이 나타났습니다. 잔네타는 본능적으로 그 여인이 성모 마리아임을 깨닫고 성모님이라고 외쳤습니다.
성모님은 겁에 질린 잔네타를 다독이며 위로를 건네셨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회개와 기도를 청하라는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세상의 불의로 심판이 다가오고 있으나, 당신이 아드님께 자비를 간청하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도 금요일에는 보속의 단식을, 토요일 저녁에는 전구에 감사하는 기도를 바치라는 당부였습니다. 잔네타가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않을 거라고 걱정하자, 성모님은 표징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시고는 사라지셨습니다.
잔네타가 마을로 돌아가 자신이 보고 들은 일을 전한 뒤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그 장소로 돌아왔을 때, 메말랐던 땅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이 샘의 자리에 지금 산타 마리아 델 폰테, 즉 ‘샘의 성모 마리아’ 성지가 들어선 겁니다.
바실리카 주 제대 아래의 거룩한 공간 ‘사크로 스페코’(Sacro Speco). 1432년 성모님이 잔네타에게 나타났다는 발현 장면을 조각으로 재현한 기도 공간. 장엄한 주 제대와 돔 아래에 발현의 기억을 둔 구조로 이 성지가 ‘샘의 성모’ 전승 위에 세워졌음을 보여 준다.
고요한 성전에서 솟아오르는 샘의 영성
바실리카 내부로 들어서면 고딕 성당의 수직적 긴장감 대신, 이오니아식 기둥들이 만드는 바로크 특유의 질서 정연한 장엄함이 느껴집니다. 측랑이 따로 발달한 바실리카식 구조라기보다 하나의 큰 본랑을 중심으로 한 라틴 십자형 평면 구조인데요. 중앙의 정방형 공간 위로 돔이 솟고, 서쪽으로 뻗은 본랑 좌우로는 화려한 장식의 소성당들이 이어집니다.
주 제대 아래에는 성모님이 잔네타에게 나타난 순간을 재현한 목조 조각군 ‘거룩한 동굴(Sacro Speco)’이 자리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성모님의 표징인 샘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흐르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샘터에서 자신의 고통을 봉헌하고 영적 씻김을 경험합니다. 성모님은 폭력과 두려움으로 삶을 살아가던 잔네타에게 나타나 평화와 위로의 말을 건네셨습니다. 그러나 그 위로는 개인의 상처에 머물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회개와 기도, 공동체의 변화를 향했습니다.
잔네타가 감내해야 했던 고단한 삶의 굴레는 6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인류의 지워지지 않는 아픈 단면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이 국경을 넘고 민족을 가르며 전쟁을 일으키는 지금, 오히려 더 심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샘은 여전히 솟아오릅니다.
그날 성모님은 잔네타에게 절망이 아닌 ‘나아갈 방향’을 건네셨습니다. 회개하고 기도하며, 서로의 아픔을 짊어지는 보속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할퀴고 간 상처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온전히 봉합되지 않습니다. 탐욕이 세상을 굳게 닫아걸 때,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순례 팁>
※ 밀라노 Milano Porta Garibaldi 역 → 카라바조 역(Trenord 지역열차 약 50분) 하차 후 버스(K505) 이동 또는 도보로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