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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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멈춰선 100년 신앙의 숨결, 상괴공소

[리길재 기자의 공소(公所)를 가다] 22. 안동교구 가은본당 상괴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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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가은본당 상괴공소 전경. 1910년께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괴공소는 1980년 수해로 전파됐다가 안동교구민과 전국 여러 교우의 도움으로 새로 지어졌다.
문경시 가은읍 상괴리 마을 어귀에 자리한 가은본당 상괴공소.

안동교구 가은본당 상괴공소는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용유골길 18-8(상괴리 55)에 자리하고 있다. 용유(龍遊)골은 가은읍 상괴리와 하괴리, 대야산 일대에 형성된 자연 마을로 산과 계곡의 형세가 흡사 ‘용이 노닐다 누워있는 모습’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괴리(上槐里)는 ‘느티나무가 많은 윗마을’이란 뜻이다. 이 마을은 또 ‘함박골’ ‘작동’(芍洞)으로도 불렸다. 5월이면 마을 주변과 뒷산에 산작약이 크고 탐스럽게 피어 붙여진 이름이다.

가은읍에는 병인박해의 기세가 아직 꺾이지 않을 때인 1869년에 형성된 교우촌이 있다. 바로 가은본당의 모태가 되는 왕릉리 ‘먹뱅이 교우촌’이다. 1886년 조불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먹뱅이 교우촌은 대구본당이 관할하는 공소가 됐다. 이후 가은에는 1893년 농암면 내서리에 쌍용공소, 1902년 갈동공소, 1905년 저음리 돈마래미공소가 잇따라 설립됐다.


먹뱅이 교우촌에서 이어진 신앙의 뿌리

상괴공소는 1910년께 설립한 것으로 추정한다.(안동교회사연구소, 「안동가톨릭사학-공소 교회와 교구 사제단」 307쪽) 1907년 먹뱅이공소가 도탄리로 이전하는 바람에 이 무렵 상괴리에 살던 정행철(베네딕토)씨가 자기 집에서 공소 예절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곧 공소 설립으로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1911년 4월 8일 대구대목구가 설정되고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드망즈 주교가 1938년까지 재임하면서 사목 일기를 썼는데, 「드망즈 주교 일기」 어디에도 상괴공소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드망즈 주교는 1915년 11월, 1921년 11월, 1926년 11월 세 차례 경상도 북부 지방 사목 방문을 했다. 그는 1차 사목 방문 때 문경에서 호계리 신영공소와 점촌동본당의 모태가 되는 표석골공소를 방문했다. 2차 때에는 가은에 와서 먹뱅이공소의 후신인 왕릉공소를 축복하고, 쌍용공소를 들렀다. 3차 때에도 마찬가지이다.(「드망즈 주교 일기」 278~280쪽, 427~479쪽, 567~568쪽 참조)

「가은읍지」를 비롯한 몇몇 자료는 1910년께 먹뱅이공소 일대가 은성광업소에 매도돼 광산이 개발됐고, 공소는 도탄리로 옮겼다고 하는데 이 내용 또한 정확하지 않다. 먹뱅이공소가 도탄리로 이전한 때는 1907년이고, 가은 왕릉리에 광산이 들어선 건 1938년 12월 일본 일산화학공업주식회사가 은성무연탄광을 개발하면서다. 그리고 일산화학이 1943년 4월 일본광업주식회사로 합병하면서 ‘은성탄광’으로 불렸다. 이런 이유로 상괴공소 설립연도는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괴공소 제단. 제대와 독서대, 십자가로 단순하게 꾸며져 있다.

교우들의 정성과 기도로 다시 세운 공소

아무튼 세월이 한참 흐른 뒤인 1973년 상괴공소가 신축됐다. 상괴리는 장마 때면 냇물이 넘쳐 자주 물난리를 겪었다. 1980년 7월 22일 집중호우로 가은읍과 농암면·마성면 일대가 큰 피해를 보았다. 당시 공식 피해 집계 자료에 따르면 인명 피해 12명, 재산 피해 60억여 원, 이재민 3200여 명이 발생했다.

상괴공소는 이 물난리로 전파됐다. 당시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는 피해 복구를 위해 교구 모든 본당이 구호 활동에 적극 동참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두봉 주교는 전국의 모든 교우에게도 이재민 대다수가 가난한 농민들이라며 빠른 피해 복구를 위해 정성 어린 기도와 물질적 도움,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두봉 주교는 피해 지역을 돌며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이에 안동교구 본당들은 사순 시기에 모은 본당 인성회비와 자선기금으로 이재민들을 도왔다. 당시 가은본당 주임 유재준(타대오) 신부는 잔해만 남아있는 상괴공소 마당에서 공소 교우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복구와 재건의 의지를 다졌다.

두봉 주교와 상괴공소 교우들의 간구가 닿았는지 상괴공소는 이듬해인 1981년 10월 3일 새 건물을 지어 두봉 주교 주례로 봉헌했다. 수해복구비 100만 원, 상주 서문동본당 성금 30만 원, 안동교구 인성회 성금 400만 원, 교구 사업비 300만 원 등 총 공사비 800여 만원을 들여 대지 128평에 건평 30평 크기의 아담하고 튼튼한 콘크리트벽돌집을 지었다.
십자가의 길 14처와 자비의 예수 성화가 걸려 있는 벽면. 달력이 2020년 10월에 멈춰 있는 것으로 보아 이후 크게 쇠퇴한 듯하다.
마당 성모상. 관리가 안 된 탓인지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성모상도 뒤덮인 먼지로 얼룩덜룩하다.

빛바랜 ‘자비의 예수님’ 성화와 2020년 달력

상괴공소는 몇 해 전 집중호우보다 더 무서운 재난을 겪었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이 엄청난 재난으로 한때 70명 가까이 되던 교우수가 현재 겨우 10명을 채울까 말까 한다. 그래서 지금은 상괴공소 교우들은 공소를 거의 비워둔 채 가은성당이나 가까운 성유공소에서 미사와 공소 예절에 참여하고 있다.

상괴공소는 마을 어귀에 자리하고 있다. 공소 건물치고는 제법 규모가 크다. 강당식 일자형으로 지어졌고 긴 벽면 옆쪽으로 출입구가 나 있고 그 위로 종탑이 눈에 띈다.

공소 마당 끝자락에는 성모상이 외로이 서 있다. 성모상과 좌대가 먼지로 얼룩덜룩하다. 관리가 안 돼 마당에는 잡초가, 공소 안에는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져 있다. 2020년도 10월 달력이 벽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후로 공소 기능을 다한 듯하다. 공소 교우들이 간간이 개인 기도를 하러 방문하는지 그나마 공소 문은 열려 있다. 한 줄로 나란히 줄지어 있는 긴 회중석이 교우들이 많았던 것을 웅변한다.

한 단 높이의 나무 마루로 제단과 회중석을 나눠놓았다. 제단에는 나무 제대와 독서대, 십자가가 있고, 오른쪽 모퉁이에 성모상이 놓여있다. 또 제단 옆에는 낡은 풍금이 있다. 양측 벽면에는 십자가의 길 14처와 빛바랜 ‘자비의 예수님’ 성화가 걸려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국의 많은 공소가 급속히 쇠퇴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100년이 넘고 교우들의 사랑의 성금으로 지어진 상괴공소가 하루빨리 제모습을 회복하길 기도한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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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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