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간 약국을 운영하며 이웃의 아픔을 돌보던 약사가 이제는 버려진 쓰레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가로 변신했다. 최근 서울대교구 길음동성당에서 생애 첫 전시회를 연 김영훈(요한 세례자, 83)씨의 이야기다. 5월 9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길음동성당에서 김씨를 만났다.
김씨가 만든 작품의 재료는 다름 아닌 ‘쓰레기’다. 이삿짐 속에 버려진 선반 틀, 다 쓴 휴지심과 케이크 상자, 길가에 떨어진 솔방울과 누군가 먹고 버린 바지락 껍데기까지 주변의 버려지는 것들이 그에겐 영감의 원천이다. 그의 손을 통해 칼국숫집에서 발견한 바지락 껍데기는 나비가 되었고, 녹슨 못은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운 십자가로 바뀌었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70여 점에 달한다.
김씨가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70대 후반이었던 2020년 무렵. 첫 시작은 수십 년간 지켜온 약국 문을 닫은 뒤 찾아온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평생 약사라는 긍지로 살았는데, 일을 그만두니 제 자신이 자꾸만 잊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철사 안내판을 보다가 ‘이걸로 뭔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철사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게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김씨에게 예술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자신의 작업 방식이 ‘콜라주 기법’이라는 것도 최근 지인의 귀띔을 듣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는 “한번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니 영감이 계속 샘솟았다”고 설명했다.
성당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 것도 우연한 기회 덕분이었다. 작품이 집 안에만 쌓여있는 것을 안타까워한 가족들이 전시회를 권유한 것이다. 여기에 본당이 공간을 흔쾌히 내어주면서 그의 첫 전시회가 성사됐다. 이렇게 그의 작품들은 5월 한 달간 전시되며 교우들을 만났다.
“남들이 제 작품을 어떻게 볼지 몰라 겁도 났지만, 작품을 보며 교우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통해 친교와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도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수익금이 생기면 그 돈은 모두 본당에 봉헌할 계획입니다.”
그는 작품 활동으로 새 활력을 찾으면서 여든이 넘은 나이에 다시 한 병원의 약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이 자신을 새롭게 일깨웠다고 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 가슴 한편에 두었던 열정을 꺼내본다면 인생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