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 여성이 일본 남성들과 위안부 문제로 토론하는 1999년도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결국 돈이잖아?”와 같은 표현들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도 그녀는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토론을 지배했다. 사과를 요구하기도 하고, 잘못된 부분은 분명히 짚었다.
“인간에게는 존엄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명예회복도 필요할 거고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무수히 많습니다. ‘결국 돈이잖아’라는 말은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모욕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인권 감각도 없는 것이죠. 사죄해달라는 사람에겐 진심으로 사죄해드려야 합니다. 각각의 피해 사실은 개별적인 거니까요.”
영상 속 여성은 지난 4일 김복동상을 수상한 재일교포 3세 신숙옥씨다. 27년이 지난 지금, 걸음걸이나 목소리 톤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지만, 인터뷰 내내 보여준 또렷한 눈빛과 부드러운 어조는 그가 살아온 삶을 말해줬다.
‘재일조선인’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당시에도,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약자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정면 돌파했다. 외국인과 여성의 접근이 어려운 도쿄 긴자에 10년을 기다려 사무실을 얻었고, 방송사의 혐오 발언에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 대법원 승소를 이끌어냈다. 그의 인생 자체가 약자와 소수자였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 곁에 머물면서 힘을 모았다.
그는‘약자들의 눈물’이 원동력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거대한 권력의 거짓을 꿰뚫어보는 양심을 발견하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억압받은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양심이다. 인터뷰 말미 그는 “종교는 힘없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동체, 눈물이 모여 힘이 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러나 약자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았고, 거짓에 굴복하지 않는 양심을 붙들고 살아왔다. 신앙은 때로 신앙을 말하는 사람보다 삶으로 증언하는 이에게서 먼저 발견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