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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담아낸 전쟁 속 이웃의 고통, 인간 존엄과 평화의 신호탄으로

[삶의 자리에서] 분쟁지역 전문 언론인 김영미(오메드) PD - 다큐앤드뉴스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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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지역 전문 언론인 김영미 PD가 5월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인터뷰하며, 그가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30여 년째 분쟁지역 발로 뛰며 현장 소식 전달 
내전 희생자 소식 듣고 동티모르 직접 향한 게 시작
러-우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북한군 등 영상에 담아


영적 목마름 해답 찾기 위해 신앙인으로 거듭나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이라크에서 세례받아
하느님 뜻 실현 노력·고통받는 이웃 위해 손 내밀어 



“어른은 청년들의 생명과 꿈을 지켜줘야 하잖아요. 북한군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청춘이 빼앗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전쟁은 사람을 국적과 진영으로 나눈다. 그러나 국제 분쟁지역 전문 언론인 김영미(오메드, 56) PD에게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북한군 포로들은 군인이기 전에 ‘사람’이자 그저 ‘꽃다운 청년’이었다.

올해 1월 20·27일 방영된 MBC PD수첩 ‘러우 전쟁과 북한군’ 편에서 김영미 PD는 포로가 된 젊은 북한군 2명을 만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됐다 붙잡힌 북한군을 직접 인터뷰한 것이다. “보내고 싶지 않네. 엄마 같아.” 처음엔 남한에서 온 김 PD를 극도로 경계하던 그들은 5시간에 걸친 대화 끝에 마음을 열고 눈물을 보였다. 김 PD는 고통의 눈빛과 상처로 얼룩진 채 “살아있는 게 역적 같아 불편하다”는 젊은 북한군 병사들을 끝내 따뜻하게 안아줬다.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그는 ‘인간 존엄’을 기록했고, 생명의 가치를 교류했다.

그는 서른 살에 동티모르 여대생이 내전으로 희생당한 소식을 접하고 무작정 카메라를 든 채 현지로 향했다. 이후 30여 년째 분쟁지역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오고 있다. 2000년 SBS 특집 다큐멘터리 ‘동티모르 푸른 천사’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과 레바논, 아프리카 내전 지역 등 세계 방방곡곡을 다녔다. 2002년 KBS 일요스페셜 ‘부르카를 벗은 여인들’에서는 부르카 속 여인 모습을 최초로 영상에 담아 화제가 됐다.

본지는 지난 5월 (재)바보의나눔이 우크라이나에 있는 고려인을 돕는 기부금 전달식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교회가 자신이 만든 리포트를 통해 고려인을 돕는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한 것이다. 분쟁의 고통 속 사람들을 영상에 담고 품에 안아온 김영미 PD를 다시 만나 전쟁의 최전선에서도 지켜져야 할 인간 존엄, 그리고 진정한 평화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김영미 PD가 ‘러-우전쟁’ 현장서 우크라이나 군인을 촬영하고 있다. 본인 제공


위협 무릅쓰고 전쟁 현장 향하는 이유는

그의 관심은 북한군 포로들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해당 방송을 촬영하는 동안에도 짬이 나면 우크라이나에 사는 고려인들을 찾아갔다. 고려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간 ‘우리 동포’다. 김 PD가 만났을 때는 대를 이어 농사짓던 땅을 러시아에 빼앗겨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피란 온 이들이 많았다. 전쟁은 그렇게 평범한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었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를 해마다 영상으로 기록해온 그는 참혹한 현실 속 인간상을 전해왔다. 김 PD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은 여전히 치열하게 민간인 시설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서는 커다란 이란제 드론이 주거지에 매일 100대 이상 날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인들은 드론이 날아오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전쟁은 민간인들에게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안기는 악”이라고 했다. 전쟁 발발 후 5년째 우크라이나인들은 매일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툭하면 울리는 공습경보로 아이들은 공포 속에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다. 김 PD는 “우크라이나에서만 하루 평균 전사자가 5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김영미 PD가 지난해 겨울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들을 만나고 있다. 한국에서 온 김 PD를 극도로 경계했던 이들은 5시간에 걸친 대화와 북향민단체들이 마련해준 북한음식을 나누며 고통 속에도 짧게나마 마음을 열었다. 본인 제공


북한군 포로 인터뷰는 준비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부 설득 작업 등 6개월 넘는 섭외 노력 끝에 겨우 성사됐지만, 현지에 도착해서도 모든 게 불확실했다. 분쟁지역 취재라 외교부 승인에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특히 취재 대상이 북한군이라 어려움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이런 수고에 생명까지 위협받는 전쟁터로 왜 거듭 향하는지 물었다.

김 PD는 “안 보여주면 모른다”면서 쉽게 잊히는 지구촌 참상을 모두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가 없으면 전쟁이 일어나도 타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발생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언론인이 현장을 전해야만 하는 이유죠. 예를 들어, 우리 사회 속 아동학대를 당해 죽은 아이들도 다 이웃이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몰랐기에 신고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래서 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렇게 그는 전쟁 속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인간 삶의 고귀한 가치를 알렸다.

김 PD는 “분쟁지역에 누군가는 꼭 가야 하기에 제가 몇 번이고 찾는 것”이라며 “언론인이라면 국민이 ‘알 수 있도록’ 뉴스를 제공하는 것이 의무”라고 거듭 말했다.

또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도 분명했다. 분쟁을 제대로 바라보고 알면 평화와 생명을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PD는 “전쟁은 한 번 일어나면 종전하기가 무척 힘들다”며 “전쟁 상황을 생생히 접하면서 국민들은 평화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고, 나아가 누군가 개입하지 않으면 잘 끝나지도 않는 싸움을 어떻게든 ‘말려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이라면 사람이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게 보편적”이라며 “그 보편적 마음에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 제 마음”이라고 했다.

 
김영미 PD가 우크라이나에서 ‘러-우전쟁’을 취재하는 모습. 본인 제공


“죽고 죽이는 전쟁터… 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김 PD가 말한 ‘보편적 마음’은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공동선’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 사람의 생명이 희생되는 현장을 수없이 마주하면서도 그는 냉소 대신 희망을 택했다. 그의 세례명 ‘오메드’는 이라크 쿠르드어로 ‘희망’을 뜻한다.

“2023년 이라크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았어요. 미국과 전쟁 중이던 이라크에서는 폭력이 난무했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 인간적 고민이 더 깊어졌어요. ‘왜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는지’ ‘사람이 죽고 나면 그저 고기 토막에 불과한 건지’ 고뇌했던 제게 영적 가르침이 너무나 간절했어요.”

이라크 주민들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 도움을 받고 싶다는 그의 요청에 그를 이라크 시아파 최고 지도자 알리 알시스타니 앞으로 데려갔다. 알시스타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가는데 신은 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김 PD의 원망부터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까지 모두 차분히 들어주며 조언을 건넸다.

알시스타니는 김 PD에게 “자매가 사는 나라의 가장 대중적인 종교 안에서 ‘신과 계속 대화하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이라크 동방 가톨릭교회를 직접 소개해줬고, 그가 세례받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현지에서 반 년 동안 모든 교리교육을 아람어로 받은 뒤 주님의 자녀가 됐다. 김 PD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람어로는 ‘주님의 기도’를 외우지만, 한국어로는 아직 잘 외우지 못한다”고 웃었다.

 
‘러-우 전쟁’ 취재 당시 김영미 PD(맨 왼쪽)가 현지 주민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평화는 끊임없는 노력 통해 얻어지는 가치

김 PD가 처음부터 희망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너무 힘든 일을 많이 주시니까요. 그런데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잖아요. 독재자가 아닌 거예요. 그저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지, 하느님이 원하는 선택을 하든 그렇지 않든 늘 지켜보고 계신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됐죠. 그래서 이제는 ‘나의 선택이 내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주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인지’ 고민하게 됐어요.”

그리곤 톨스토이의 「두 노인」을 소개했다. “고려인 가정의 냉장고를 열어봤는데, 텅텅 비어있더라고요. 이 책은 하느님 나라가 멀리 있다고 하지 않아요. 가난한 이웃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손을 뻗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분이 보기 좋으신 일이 아닐까요?”

김 PD는 그렇게 미디어를 통해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 “자폭하지 않아 후회한다”는 북한군 포로들을 살리기 위해 지난 4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제7차 전원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해 그들의 송환 지원의 필요성을 알렸다. 전쟁의 참상을 가장 가까이서 봐온 그가 끝내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전쟁의 가장 무서운 점은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거예요. 국가는 전쟁하기 바쁘고, 서로 기댈 처지가 못 되는 상황 속에 인간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너무 어려워지죠. 가까이 있는 폭력을 막지 못하면 더 큰 폭력이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최후의 수단이 전쟁이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인간 삶과 존엄을 기록해온 그는 “결국 평화 역시 누군가의 끊임없는 선택과 노력으로 지켜지는 가치”라고 말했다. “평화는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절대 저절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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