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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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기술 업고 한계 넘보는 인류… “진정한 ‘구원’은 오직 하느님 통해 가능”

신학으로 다시 읽는 교황 첫 회칙 「고귀한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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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회칙 「고귀한 인류」 내용을 직접 발표하고 있다. OSV


2026년 5월 25일 반포된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는 기본적으로 사회 교리 문헌으로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회칙의 부제처럼 ‘인공지능 시대 인간 인격체의 보호’에 관한 주제를 회칙의 신학적 핵심이 담긴 3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인류를 지배하는 기술, 단호히 거부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기술 지배 패러다임의 세계화’ 문제를 생태적 관점(106~114항)에서 지적했는데, 레오 14세 교황은 「고귀한 인류」 제3장에서 같은 주제를 디지털 파워와 인공지능의 책임 문제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제기한다. 「고귀한 인류」 110항에선 이 회칙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무장해제’(disarming)라는 핵심 개념이 등장한다.

이는 군사적 맥락을 넘어 “기술의 힘이 자동으로 통치권을 부여한다는 가정에 대한 거부”를 뜻한다. 즉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류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을 독점적 통제에서 해방하고 토론과 논쟁의 장으로 개방시켜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고, 인간 문화와 생활방식의 다양성을 향해 재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윤리와 기술 차원을 넘어 오늘날 “가장 깊은 의미의 생태적 과제”가 된다.

이처럼 레오 14세 교황이 ‘무장해제’라는 독특하고도 강력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인공지능 문제의 기저에 있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과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의 위험성 때문이다.(116항) “트랜스휴머니즘은 생체의학, 신체공학, 장치 및 알고리즘 등과 같은 기술을 통해 성과와 능력을 증대시킴으로써 인간 존재의 강화를 구상”하는 흐름을 가리킨다. 그리고 “급진적 형태의 포스트휴머니즘은 더 나아가 인간중심주의에 도전하고, 인간 존재와 기계 및 환경의 혼합을 구상하며, 인류가 새로운 진화 단계에서 스스로를 넘어서는 임계점까지도 예측”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은 유전자 복제와 조작 등으로 새로운 인간형을 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는 어떤 의미에서 ‘불사불멸’의 ‘구원’을 지향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레오 14세 교황은 “과학적 기술적 발전이 도덕적 사회적 진보와 분리될 때 결국 인류에 반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경고를 상기시키며 “인간의 한계를 평가절하하고 순전히 기술적 형태의 ‘구원’을 약속하는 전망”(117항)을 단호히 거부한다.

 


하느님 닮았지만 그분과는 다른 인간

신학적으로 볼 때, 창조주 하느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는 ‘유사성’이 존재하지만 항상 그보다 더 큰 ‘비유사성’이 전제된다는 것이 교회의 신앙 교리적 가르침이다. 하지만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Homo)이 곧 신(Deus)처럼 되고자 시도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황은 바벨 탑(창세 11,1-9)을 언급한다. “그들은 온 땅으로 흩어지게 됨이 두려워 자신들의 안정과 권력을 확보하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이름을 날리고자’ 했습니다. (?) 바벨 탑 이야기는 효율성을 위해 인간 존엄성을 희생시키고 하느님의 강복 없이 하늘에 닿고자 열망하는 모든 노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줍니다.”(7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생물학적 수명의 연장은 인간의 마음속에 결코 지울 수 없이 새겨진 저 피안의 삶에 대한 갈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사목헌장」, 18항)고 선포한 바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역시 2007년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현대 사조를 따르는 이들의 오류는 인간이 과학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은 것”(25항)이라 지적하며,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랑으로 구원받습니다”(26항) 라고 역설한다. 결국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09년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서 말한 것처럼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에 “강력히 제기되는 근본 문제는 인간은 스스로 생겨난 존재인가 아니면 하느님께 속한 존재인가 하는 것”(74항)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느님을 배제한 인도주의는 비인간적 인도주의”(78항)임을 증언해야 한다.

신학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는 초월 지향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계성을 지닌 존재다. 인간의 인격적 특성은 이러한 ‘역설적 존재’로서 경험하는 통합적 체험에서 드러난다. 즉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 한계성을 없애려 하는 것은 진정한 초월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초월은 나약한 인간 실존의 한계를 인정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 5,3) 안에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은총이 주어질 때 이루어진다. 인간의 인격적 정체성은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성에서 드러난다.

 
회칙 「고귀한 인류」 단행본. OSV


한계, 하느님과의 관계 성숙시키는 자양분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는 2026년 초에 공식 문헌 「인류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Quo Vadis, Humanitas?)를 발표했다. 필자는 4년간의 집필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 문헌 3항을 「고귀한 인류」에서 직접 인용했다. “종교적 경험,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의 위대함과 한계 사이의 양면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이를 하느님과의 본래적이며 근본적인 관계 속에서 해석해 살아가도록 인도합니다.”(118항)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불사불멸은 내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인간적 한계에도 나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는 하느님과 친교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말한다. “‘한계’로 보이는 모든 것은 주로 교정되어야 할 결함으로서만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인간성이 성숙하고 관계성에 개방되게끔 하는 실재로서 여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성이 그 한계들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종종 그 한계들을 ‘통해서’ 번성하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118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에서 “영적인 사람”(56항)에 관해 말한다. 이는 육체와 분리된 영혼만의 인간이 아니라 “영적인 몸”(1코린 15,44)을 부여받은 종말론적 인격을 지향하는 인간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 인간’은 ‘여정 중의 인간(homo viator)’이며 ‘되어가는 인간(human becoming)’이다. 따라서 인간 인격성의 본질은 하느님께 부름을 받은 인간의 자유와 소명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처럼 “인간은 성령 안에서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인간성을 제대로 파악하게”(59항) 된다.

따라서 ‘영적 인간’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성장하며 현재의 한계성 속에서도 고양돼 이미 구원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다. 「고귀한 인류」에는 이처럼 전임 교황들로부터 이어지는 그리스도교 신학적 인간학의 핵심 전망이 잘 내포되어 있다.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를 인류에게 레오 14세 교황은 이처럼 가장 아름답고도 안전한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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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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